스페인 영화의 정열과 감독의 무게가 느껴지는 영화. 「뤽 베송의 택시」가 스피드에 중점을 둔 오락영화였다면 카를로스 사우라 감독의 「택시」는 남녀의 사랑이야기를 정치적 코드로 풀어가면서 또다른 질주의 속도감을 느끼게 한다.
이 이야기는 전체적으로 두가지의 구조를 지닌다. 하나는 새롭게 택시운전을 시작한 파즈와 대니의 사랑이야기이고 다른 하나는 그들을 둘러싼 「패밀리」의 폭력이다.
영화 속에서 택시는 외부세계와 철저히 차단된 채 비밀스런 음모가 시작되는 공간이며 그 안에서 운전자는 절대적 권력을 지닌 응징자로 표현된다. 외부에 대해 뿌리 깊은 적대감과 편견을 가진 운전자들이 방심한 승객을 향해 가해의 음모를 꾸미는 상황은 끔찍할 정도로 잔인하다. 그러나 뜻하지 않게 그들의 진짜 가족이 방해자가 돼 나타나면서 패밀리의 내분이 시작된다.
평화라는 이름을 가진 18세 소녀 파즈(잉그리드 루비오). 아버지 벨라스코는 파즈가 대학시험에 떨어지자 자신과 같이 택시운전을 동업해 돈을 벌어올 것을 제안한다. 반 강요로 택시운전을 하게 된 파즈는 아버지와 함께 패밀리라 불리는 비밀스런 택시운전사들의 모임에 가고 그곳에서 어린 시절 친구인 대니(카를로스 퓨엔츠)를 만난다.
어린 시절부터 서로에게 호감을 갖고 있던 둘은 서로에게 적극적으로 끌리기 시작하고 패밀리의 리더인 칼레로는 이 둘의 사랑을 위험스런 눈길로 쳐다본다. 패밀리의 목적은 사회의 악을 방치하는 경찰대신 사회의 쓰레기들을 제거하자는 것. 이들은 서로가 비밀교신을 통해 살인을 먹는 것에 비유하며 동성애자나 마약중독자, 유색인종들을 손님으로 태우고 무참히 살해한다. 그들에게는 이들이 햄버거나 생선 같은 한낱 간식거리로 취급될 뿐이다. 택시운전을 하다 마약중독자의 공격으로 전신마비가 된 아버지를 보살피던 대니는 맹목적인 적개심으로 패밀리의 행동에 동참하고 우발적으로 일어난 살인에 갈등한다.
「택시」에는 현실을 푸는 두가지 언어로 사랑과 폭력이 서로 대립하며 충돌한다. 그 이미지와 감성은 사실 우리 관객들에게는 낯설고 시기적으로 뒤처진 감이 있지만 거장다운 노련함을 엿보게 한다. 「지옥의 묵시록」과 「레즈」로 아카데미상을 두번씩이나 거머쥔 비토리오 스토라로의 촬영과 신인답지 않은 연기력을 과시한 잉그리드 루비오는 「택시」가 지닌 가장 큰 매력이다.
<자유기고가 엄용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