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인쇄회로기판(PCB)업체간 해외 고객 가로채기 경쟁이 갈수록 심화, 국내 PCB 산업의 유일한 돌파구로 부상하고 있는 해외시장 개척 노력에 찬물을 끼얹고 있다.
국내 PCB업체들간 고객 가로채기 행위는 수년전부터 심심치 않게 제기됐던 고질적인 병폐지만 최근 들어 더욱 기승을 부리고 있다는 게 수출 일선을 담당하고 있는 PCB업계 실무자들의 지적이다.
특히 국제통화기금(IMF) 이후 내수 분야에서의 PCB 납품 가격이 갈수록 떨어지는 데다 부가가치가 높은 PCB류가 일부 특정업체에 몰리자 중견급 이상 국내 PCB업체들이 경쟁적으로 해외시장 개척에 발벗고 나서면서 해외 고객 가로채기 병폐가 다시 고개를 들고 있다는 것이다.
중견 PCB업체의 수출 담당 임원은 『수년전부터 거래해온 미국 굴지의 네트워크 시스템업체로부터 최근 수출단가 요구서를 받고 진상을 파악해보니 국내 대기업이 자사보다 낮은 가격에 제품을 공급하겠다는 제의를 했다』고 미국 거래선 측이 밝혀왔다는 것이다. 이 관계자는 그동안 쌓아온 신뢰관계를 고려, 앞으로 지속적인 거래를 유지하고 싶으니 공급 가격을 조금 내려주길 희망한다는 통보를 해와 가격을 지난 연말에 이어 추가 인하했다는 게 이 회사측의 설명이다.
또 다른 PCB업체 사장은 『최근들어 국내 PCB업체들이 수출 경쟁을 벌이면서 기존 국내 PCB업체가 거래해온 해외 고객과 접촉이 빈번해지고 있다』면서 『특히 미국내 교포 기업이나 한국과 연고가 있는 신흥 벤처기업인 경우 국내 PCB업체들이 경쟁적으로 문을 두드리고 있다』고 설명했다.
『국내 PCB업계가 해외시장 개척에 적극 나서는 것은 바람직하지만 이미 한국에 배정된 물량을 중간에서 가로채려는 시도는 국내 전체 PCB업계의 경쟁력을 약화시키는 결과를 초래한다』고 한 업체 관계자는 지적하고 『고객 홍보용으로 회사 카탈로그에 적시한 외국 바이어 명단을 최근 삭제했다』고 설명했다.
한 중견업체 사장은 『최근 회사 현관에 비치했던 해외 주요 거래선 현황표를 떼어냈다』고 밝히면서 『해외 거래선을 추가 확보하기 위해 회사의 주요 거래선을 인터넷 홈페이지에 올렸으나 이를 보고 국내 경쟁업체들이 해외 고객에 접근하고 있다는 느낌이 들어 이를 삭제해야 할 지 여부를 고민하고 있다』면서 제살깎기식 해외 거래 고객 가로채기 경쟁은 이제 지양돼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희영기자 hylee@e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