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래포럼> 디지털 방송과 우리의 대응자세

강성재 아이큐브 사장

 방송에서도 디지털화의 바람이 올해부터 본격적으로 불 전망이다. 올초 정보통신부와 청와대에서 디지털 방송의 조기실시 의지를 강력하게 천명한 데 이어 방송개혁위원회에서도 2001년부터 디지털 방송을 조기 방영키로 방침을 정했기 때문이다. 또 그동안 이런저런 이유로 미뤄져 왔던 통합방송법이 상반기에 통과될 전망인데 먼저 케이블TV의 숨통을 터주기 위해 종합유선방송법이 개정됐다. 여기에 정통부에서는 화답이라도 하듯 디지털TV의 실험방송을 올해 10월부터 실시한다고 한다.

 디지털 방송 수신기 등 방송 서비스의 소비자를 대상으로 하는 상품들의 경우 우리나라도 선진국에 뒤지지 않을 만큼 많은 노하우를 가지고 있으며, 반도체 이후 최대의 수출상품이 될 수 있다는 점을 감안할 때 이러한 일련의 발표는 매우 다행스러운 일이다. 디지털 방송 관련 상품들이 외국에서 그 우수성을 인정받기 위해서는 국내의 디지털 방송환경이 제대로 조성되어 끊임없는 연구개발과 상품의 개발이 가능해야만 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정치적인 논리에 의해 그동안 지지부진했던 변화를 짧은 시간에 달성하려는 욕심 때문에 무심코 지나쳐버린 부분이 없는지, 되짚어 보아야 할 문제점은 무엇인지 한번 검토해야 할 필요가 있다.

 첫째, 디지털 방송은 아날로그와는 달리 컴퓨터와 통신 및 방송기술이 융합되는 기술이라는 점에서 어느 한 분야의 개발만으로 이루어지는 것도, 또 그것으로 이 시장을 독점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여기서는 기반기술이라는 측면보다는 오히려 시장환경 및 그 변화에 따르는 다양한 기술상품의 개발이 더 중요해진다. 이러한 기술은 코드분할다중접속(CDMA) 등과 같이 대형 국책과제의 성격으로 특정 목표를 두고 개발하여 달성하는 데는 한계가 있다.

 따라서 정부에서 할 수 있는 역할은 송·수신 체계의 표준화와 디지털 방송에 활기를 불어넣는 정지작업이며 활발한 기술개발을 위해서는 유망한 중소기업의 발굴과 지원이 선행되어야 할 것이다. 이 시장은 니치 마켓의 성격을 강하게 띠고 있어 중소기업이 개발 역할을 담당해야 하며 대기업은 대량생산이 가능해 규모가 큰 소비자 시장을 담당하는 것이 효율적이다.

 둘째, 디지털 방송은 단순히 방송장비의 교체와 신기술 도입이라는 의미를 넘어 소비자에게는 좀더 다양한 방송 서비스를, 방송사에는 좀더 유연성 있는 방송체제를 갖출 수 있는 기회를 준다.

 단순히 방송 가능한 채널 수만 따져보아도 디지털 방송은 아날로그와 비교해 가히 폭발적이라 할 만큼 콘텐츠의 양이 엄청나게 불어나게 될 것이다. 수요자는 이제 마치 잡지를 고르듯이 자기가 원하는 내용만을 보고자 할 것이며 방송사가 대부분의 콘텐츠를 생산하는 현재의 체제를 바꾸지 못한다면 외국 방송물 등으로 시간을 때우기에 급급하기 십상이다. 방송이 대중문화의 창달에 기여하는 중요성을 감안할 때 비록 늦기는 했지만 지금이라도 독립 프로덕션 및 개인 스튜디오를 활성화하는 법적·사회적 장치를 마련해야 한다.

 또한 디지털화한 콘텐츠는 사용용도가 매우 다양하며 독특한 아이디어와 결합하여 부가가치를 크게 높일 수 있기 때문에 내용이 충실하다면 다량의 소규모 벤처기업들에 의해 수많은 파생상품의 개발이 가능하다는 점도 간과해서는 안될 것이다.

 한편 방송국은 이에 대응해 더욱 효율적으로 운영할 수 있는 방송체계를 마련해야 한다. 이를 위해 디지털 방송의 특성을 최대한 활용하는 시스템 차원의 방송 시스템, 즉 방송국내의 업무흐름을 개선할 수 있는 시스템의 개발이 필수적이며 이는 소프트웨어(SW) 방송 시스템에 대한 인식 및 이 부분에 대한 경영적인 측면의 이해와 분석이 함께 있어야 한다.

 셋째, 디지털 방송으로의 변이는 디지털의 속성에 따라 필수 불가결하게 SW의 비중이 절대적으로 커진다는 점이다. 이는 그동안 일본이 아날로그 방송장비 시장을 주도했지만 방송의 디지털화에 따라 점차 SW 기술력이 뛰어난 미국과 유럽의 장비들로 대체되는 것을 보아도 알 수 있다.

 이는 곧 외산 일색으로 구성된 방송장비 산업에서 방송 SW분야의 육성을 통해 외국 기술의 의존을 벗어날 수 있는 기회가 왔음을 의미한다. SW부분이라 함은 단순 기술뿐 아니라 방송운영 등의 문화적 특수성도 강조될 수 있으므로 자연스러운 진입 장벽이 형성되어 국내 방송장비산업을 창출할 수 있을 것이다.

 다만 아직까지 방송국들 사이에서는 국산제품을 기피하는 경우가 많이 있으므로 방송 전문 테스트 기관을 두어 국내 방송사가 국산 방송장비의 도입시 이득이 될 수 있도록 하거나 혹은 외국산에 차별을 받지 않을 수 있는 장치의 마련이 필요할 것이다.

 방송이 아날로그에서 디지털로 변화한다는 것은 다가오는 정보시대에 방송이 정보의 생산과 분배에 있어서 중추적인 역할을 하게 됨을 의미한다. 이는 곧 디지털 방송에 따라 형성되는 천문학적인 규모의 시장을 누가 잡을 수 있는가, 그리고 한국이 과연 세계화의 물결에 충실히 따르면서도 한국적인 것을 지키고 또한 한국을 세계에 알리는 기회가 될 것인가 하는 엄청난 화두를 던지는 것과 다를 바 없다.

 21세기 한국의 전망은 우리가 이 화두를 얼마나 잘 풀어 나가는가에 달렸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