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송정책의 통합방송위원회 이관 문제를 놓고 정치권을 중심으로 논란이 계속되고 있는 가운데 최근 들어 정보통신부가 국내 방송산업의 사업자 구도에 적지 않은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이는 방송정책을 잇따라 발표하거나 방송정책에 관한 논의를 사실상 주도하고 있는 것으로 파악돼 방송계의 비상한 관심이 쏠리고 있다.
정통부가 최근 공격적으로 방송 현안들을 다루고 있는 것에 대한 방송계의 반응은 매우 다양하다. 『방송 주무부처가 문화부에서 정통부로 완전히 바뀐 것 같다』 『통합방송법의 제정 지연으로 방송정책의 공백 상태가 장기화되고 있는 상황에서 그나마 정통부가 앞장서서 현안 문제를 주도적으로 해결하려는 것은 다행스러운 일이다』 『방송 주무부처인 문화부를 제쳐두고 정통부가 독주하는 것은 일종의 월권 행위다』 『향후 출범할 통합방송위원회에서 해야 할 일까지 왜 하려는지 모르겠다』 등등 다양한 목소리들이 터져 나오고 있다.
방송계가 정통부의 최근 행보에 대해 이같은 평가를 내리는 것은 현재 정부 조직체계상 국내 방송정책을 주도해야 할 위치에 있는 문화부가 국정홍보처의 신설과 통합방송법 제정 지연문제 등으로 제목소리를 내지 못하고 있는데 반해 한동안 부처폐지론으로 곤욕을 치렀던 정통부가 방송정책에 부처의 위상이 걸린 듯 공세적으로 나서고 있기 때문이다.
사실 최근 들어 지상파 디지털방송·위성방송·케이블TV방송·중계유선 등 방송계의 민감한 현안들에 관한 주요 정책은 주로 정통부쪽에서 나오고 있다. 문화부는 정통부의 방송정책에 대해 반대의견을 내놓거나 소극적으로 대응하고 있는 정도에 불과하다.
우선 21세기 지상파방송의 지각변동을 예고하고 있는 지상파 디지털방송의 경우 정통부가 논의의 중심축이 되고 있다. 정통부는 방송개혁위원회에서 2001년부터 지상파 디지털방송의 본격 실시방침을 확정하자 곧바로 지상파 디지털방송의 재원조달방안, 채널운영방안 등 핵심 의제를 다루기 시작했다. 지난달 열린 경제부처 차관회의에서도 정통부는 이 문제를 거론, 문화부측과 묘한 신경전을 벌인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비해 문화부측은 지상파 디지털방송의 도입과 관련해 분명하게 제목소리를 내지 못하고 있다.
위성방송도 정통부에서 선수를 치고 나왔다. 정통부는 지난달부터 위성방송 전문가회의를 주재하고 있다. 이 전문가회의에는 산·학·연에서 파견된 전문가들이 참여하고 있는데 위성방송사업자의 단일화, 위성방송사업 활성화 방안, 법제도의 정비, 위성채널 운영방안 등 위성방송에 관한 모든 의제를 폭넓게 다루고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정통부는 이와 함께 제한수신장치(CAS) 상용화 방안, 위성방송의 규격 개정 논의도 동시에 진행하고 있다.
정통부는 최근 케이블TV관련 정책도 발표했다. 케이블 프로그램공급사(PP) 프로그램의 위성송출을 활성화해 케이블망이 깔리지 않은 산간 벽지나 오지에도 케이블TV가 보급될 수 있도록 하겠다는 것이다. 그러나 주무부처인 문화부측은 케이블TV의 성장에 오히려 걸림돌이 될 수 있다는 부정적 의견만 내놓은 상태다.
정통부는 이와 함께 중계유선 규제 완화책을 발표했다. 문화부는 이에 대해서도 역시 부정적인 의견을 내놓았다.
최근 정부의 방송정책 추진과정에는 하나의 형식이 자리잡고 있다.
즉, 정통부가 정책을 발표하거나 의욕적으로 추진하면 문화부는 소극적으로 대응하거나 부정적인 측면을 부각시켜 쐐기를 박는다. 정통부와 문화부는 방송정책의 기본 방향을 놓고 평행선만 달리고 있는 것이다.
이 와중에 방송계는 인식의 혼란을 절감하고 있다. 명색이 방송 주무부처라는 문화부와 정통부간에 업무 협조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아 도대체 어느 장단에 춤을 춰야할지 모르겠다고 하소연하고 있다.
<장길수기자 ksjang@e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