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작권을 둘러싼 분쟁이 최근 국내 컴퓨터 출판계를 강타하고 있다.
A출판사에서 책을 냈던 저자들이 더 좋은 조건을 제시하는 B출판사로 자리를 바꾸면서 저작권 문제를 일으키는가 하면 출판사의 핵심 기획자가 다른 출판사로 회사를 옮기면서 회사의 기밀을 유출했다는 의심을 사는 경우도 빈발하고 있다.
특히 컴퓨터 출판계는 출판사들이 서로 비슷한 내용의 책을 만들면서 표절시비는 물론 서로 저작권을 침해했다고 맞고소하는 양상까지 보이고 있어 문제의 심각성을 더하고 있다.
현재 대표적인 분쟁은 컴퓨터 출판계의 선두주자라 할 수 있는 영진출판사(대표 이문칠)와 정보문화사(대표 이상만) 사이의 맞고소 사건.
문제의 발단은 지난 96년 정보문화사에서 「정보처리기사」와 「정보처리기능사」시험을 위한 수험서를 펴냈던 광운대의 S씨 등 10여명의 교수들이 올해 영진출판사로 출판사를 옮기면서 비롯됐다.
정보문화사는 곧 영진출판사와 저자들이 자사의 저작권을 침해했다는 소송을 제기했고 지금까지 지루한 재판을 계속하고 있다. 영진출판사도 지난 92년 발간한 「독학 이학사」의 내용을 정보문화사가 표절했다며 이에 정면으로 맞서고 있다.
정보문화사는 또 이 문제와는 별개로 또다른 고민에 빠져 있다. 올해 「정보처리기사」와 「정보처리기능사」의 개정판을 펴내면서 저자들의 이름을 다른 사람으로 바꾼 것이다.
정보문화사는 그저 3년 동안 이들 책의 출판권을 보유하고 있다는 사실만 믿고 별 생각 없이 저자들의 이름을 바꿨다고 설명하지만, 이러한 행위는 저자의 인격권을 침해한 것으로 또 다른 분쟁의 불씨를 안게 됐다.
영진출판사는 또 대학 교재를 주로 펴내는 출판사인 희중당과도 현재 저작권 분쟁을 겪고 있다.
영진출판사가 최근 펴낸 「정보처리기사」와 「정보처리기능사」의 경우 희중당에서 지난해 8월 번역한 「소프트 공학」의 내용을 상당 부분 표절했기 때문. 영진출판사는 최근 저작권 침해를 인정, 1500만원 정도를 배상하겠다고 제의한 데 비해 희중당은 저작권 침해를 인정하는 사과광고를 신문에 게재할 것을 요구한 것으로 알려졌다.
영진출판사가 펴내는 수험서들은 이밖에도 대학 입시교재 전문 출판사인 중앙교육진흥연구소(회장 허필수)와도 앞으로 심각한 저작권 분쟁을 낳을 가능성이 농후한 것으로 출판 관계자들은 전망하고 있다.
영진출판사에서 오랫동안 수험서 팀을 이끌던 이상돈씨가 최근 중앙교육연구소로 자리를 옮긴 후 양쪽 출판사에서 펴내는 책 속에 유사한 내용이 많이 포함돼 있기 때문.
영진출판사는 이상돈씨가 영진에 있을 때 쓴 책의 저작권은 당연히 회사에 귀속된다는 입장을 보이고 있으나 이상돈씨는 『본인이 영진의 직원이 아닌 저자로 있을 때 쓴 책의 내용까지 그대로 베끼고 있다』며 흥분하는 입장이다.
그동안 컴퓨터출판계는 저작권문제가 발생해도 당사자들이 만나 해결하곤 했다.
그러나 최근 컴퓨터 출판계에 저작권문제가 법적 소송으로까지 비화된 데는 몇가지 이유가 있다.
가장 먼저 컴퓨터 출판사들이 자기 회사를 앞세울 독자적인 출판 노선이 없다는 것이다. 어떤 서적이 잘 팔린다면 모두 그쪽으로 달려들기 때문이다.
따라서 저자는 한정된 상황에서 비슷한 내용을 실을 수밖에 없는 것이 현실이다. 여기에는 또 출판사들이 큰돈을 들이지 않고 서적을 출간하려는 얄팍한 상혼도 한몫을 더하고 있다.
이와 함께 저자들도 문제가 없는 것은 아니다. 아무 죄의식도 없이 남의 책을 그대로 베끼는 저자들이 없었다면 저작권문제는 발생할 수 없다.
이러한 저자들 때문에 손해를 보는 것은 독자들 뿐이다. 이들이 쓴 양심 불량의 책을 사기 위해 오늘도 서점을 찾고 있을 독자들에게 연민의 정마저 느끼게 된다.
<서기선기자 kssuh@e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