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요포커스> LG전자 디스플레이사업 본부장 구승평 사장

 『한국의 전자산업은 라디오로 시작했지만 기반을 다지는 데 기여한 품목은 TV라고 생각합니다.』

 구승평 LG전자 사장(56·디스플레이사업본부장)은 올해로 40년째를 맞은 한국 전자산업의 일등공신은 TV라고 강조한다.

 66년 부산대 전기공학과를 졸업하고 69년 TV제조과에 입사한 이래 30여년간을 줄곧 TV관련 분야에서만 일해온 구 사장은 현직에서 일하고 있는 몇 안되는 국내 TV산업의 산 증인이다.

 『제가 처음 LG전자(당시 금성사)에 입사한 69년 당시는 흑백TV가 진공관식에서 트랜지스터식으로 바뀌던 때였습니다. TV제조과에 입사한 저는 트랜지스터를 인쇄회로기판에 실장하기 위한 납땜 때문에 숱한 고생을 했지요.

 한국에서 처음으로 자동납땜 장비를 설치했으나 컨베이어의 속도나 예열온도, 땜납의 성분 등 자동납땜에 대한 기술이 전무했기 때문입니다.』

 자동납땜 때문에 고생하던 업체가 세계 최초로 디지털TV를 선보이는 수준으로 도약한 것이 못내 자랑스럽다는 듯 과거를 회상하며 흐뭇한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과장시절에는 구미공장 건설위원으로 임명돼 새로운 공장을 건설하고 부산에 있던 TV생산설비 이전과 신설라인을 도입하는 일을 담당했습니다. 제가 지금 근무하고 있는 이곳은 땀 흘리며 건설했기 때문에 더욱 각별한 정이 가는 곳이기도 하지요.』

 부장 시절인 70년대 컬러TV 개발은 물론 편향요크(DY)·전자총(FBT) 국산화에 몸담게 됐는데 당시 TV생산기술부장이던 구 사장은 전자총 국산화를 위해 일본을 수차례 오가며 분해와 조립을 수없이 반복, 마침내 컬러TV에 적용했으나 코일권선이 타버리는 등 불량이 발생, 혼쭐이 났다며 과거를 회상한다.

 『고생 끝에 낙이 온다고 80년대 초에는 어렵게 개발한 컬러TV가 날개 돋친 듯 팔려 말 그대로 즐거운 비명을 지를 정도였습니다. 또 후반부터는 컬러TV가 명실공히 한국의 수출주력품목으로 자리잡아 TV에 인생을 건 보람을 한껏 누려보았습니다.』

 호사다마라고 TV쪽에 일하면서 좋은 일만 있었던 것은 아니란다.

 『흑백TV의 수출이 본궤도에 오를 때쯤인 73년 제1차 오일쇼크가 발생, 원자재값이 폭등하고 수출용 상품이 산더미처럼 재고로 쌓일 때는 정말 악몽 같았습니다.

 특히 78년경 자식 같은 컬러TV를 개발해내고 수출을 막 시작하려고 했을 때 2차 오일쇼크가 터지자 정말 암울했습니다. 그때는 전 간부들이 모두 사표를 써놓고 원가절감 활동에 목숨을 걸다시피했고 때마침 미국의 바이어가 주문자상표부착생산(OEM) 거래를 터주는 바람에 숨통이 트였지요.』

 구 사장은 국내 가전산업은 이제부터라고 주먹을 불끈 쥐었다.

 『우리나라 가전산업은 양에서나 질에서나 세계적 수준에 도달해 있습니다.

 그러나 기술과 품질에 비해 제값을 받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지요. 이는 브랜드 이미지를 제고시키지 못한 마케팅전략의 부재 때문입니다.』

 구승평 사장은 『한국은 세계에서 가전산업 경쟁력이 가장 강한 곳이기 때문에 디지털TV 시대의 도래가 국내 가전산업에 새로운 도약의 기회를 제공할 것』이라고 믿고 있다.

 『때문에 국내 업체들 간에 가격인하를 부채질하는 과당경쟁을 지양하고 브랜드 이미지를 높이고 틈새시장을 개척하는 등 상호협조를 통해 세계적 관점에서 마케팅을 전개해 나간다면 세계 디지털 가전시장을 석권할 수 있을 것』이라고 강조한다.

<유성호기자 sunghyoo@e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