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출연연구기관이 밀집한 대전 대덕연구단지에 실험실 창업바람이 일고 있다.
이같은 현상은 한국전자통신연구원(ETRI)·한국과학기술원(KAIST)·한국기계연구원 등 전자·정보통신분야 연구소를 중심으로 이뤄지고 있다. 특히 그간 소속기관의 눈치를 보며 물밑에서 창업을 준비하던 이들 연구소 소속 연구원은 최근 외부에까지 알리면서 실험실 창업을 결행하는 등 연구단지 내 벤처창업 신풍속도를 만들어가고 있다.
이처럼 출연연 연구원들의 실험실 창업바람이 일고 있는 것은 벤처기업특별법 개정으로 출연연 연구원이 벤처기업 임직원 겸직은 물론 연구현장인 실험실에서의 창업이 공식적으로 가능해진데다 최근 정부가 연구소의 실험실 창업을 적극 지원하는 등 지원사업이 활성화하고 있는 데 따른 것으로 풀이된다.
출연연 가운데 실험실 창업이 가장 활발한 곳은 타 연구소에 비해 상대적으로 정보통신 창업아이템을 많이 보유하고 있는 ETRI. 지금까지 알려진 것만 해도 6곳이다.
이 연구소 중소기업진흥본부 소속 송규섭 박사는 최근 「히트파이프를 이용한 PCS 리피터 함체」 개발을 목적으로 실험실 창업을 결행했다. 송 박사는 그간 정보통신 벤처기업 육성업무를 담당한데다 많은 창업정보를 가진 상황에서 창업을 했기 때문에 타 기업보다 성공확률이 높을 것으로 ETRI측은 예상하고 있다.
또 주종철 박사는 「SGML기반 엔터프라이즈 문서관리시스템」으로, 손창원 박사는 「클러스터 기반 고성능 대용량 캐시서버」, 박병선 박사는 「반도체 리소그래피를 이용한 광픽업용 회절격자」 등 첨단 정보통신 아이템을 갖고 창업했다. 이밖에 이진효 박사는 「저전력 ㎓급 바이폴러 소자」, 김성철 박사는 「소출력 ISM 밴드 VAD 시스템」 분야를 연구하면서 얻은 노하우를 바탕으로 창업했다.
이들 실험실 창업 연구원은 현재 중소기업진흥본부에 소속돼 창업에 필요한 각종 기술 및 정보를 채집하며 제품 만들기에 여념이 없다.
KAIST도 이에 뒤지지 않는다. 최근 세계 최소형 고성능 가스탐지센서를 개발한 박종욱 교수는 고체화학센서 연구실 소속 윤동현 연구원을 통해 「카오스」라는 이름으로 창업을 준비중이다. 박 교수팀이 만든 가스센서는 세계 최고성능을 갖고 있을 뿐 아니라 실험실에서 대량생산이 가능해 대표적인 실험실 창업아이템이라는 것이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전기 및 전자공학과 조규형 교수도 고성능 앰프 개발을 목적으로 벤처기업을 창업했다.
기계연구원 창원분원 노병호 박사와 백운승 박사도 실험실 창업을 하기로 하고 각각 「청정공정시스템」과 「절삭공구 내구성 향상을 위한 코팅기술」 개발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이들 실험실 창업의 특징은 관련분야에 대한 전문 연구실적을 바탕으로 창업하고 자신이 근무하는 연구기관의 연구시설과 연구원의 지원을 전폭적으로 받을 수 있어 제품개발에 있어 다른 창업자에 비해 유리한 입장이다. 특히 창업 이후 1년 정도 실험실에서 근무하면서 창업에서 부딪히는 각종 기술·경영상의 제반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는 것이 장점으로 꼽힌다.
그러나 연구원들의 실험실 창업에 대한 부정적인 시각도 만만치 않다. 연구원들이 마케팅에 대한 경험이 전무한 상황에서 기술력만 믿고 창업하기 때문에 실패위험도 적지 않다는 것이다. 또 교수나 연구원이 실험실 창업을 할 경우 본업인 교육·연구개발보다 영업이익에 매달리게 돼 궁극적으로 득보다는 실이 많다는 지적이다.
뿐만 아니라 민간기업 연구소나 인문계 연구기관, 사립대학의 경우 실험실 창업이 실질적으로 불가능하기 때문에 국공립 대학 및 연구원만의 실험실 창업은 지나친 특혜라는 시각도 대두되고 있다.
<대전=김상룡기자 srkim@e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