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들어 국내 PCB업계에는 IMF가 없다는 말이 나돌고 있다. 지난해 PCB업계를 고통의 나락으로 몰아넣었던 IMF가 이제는 과거의 아픈 추억으로 남아 있고 현재는 주문량을 소화하기 힘들 정도로 생산주문이 넘쳐나고 있다.
대규모 업체는 물론 중견 PCB업체들은 이미 부가가치가 낮은 주문은 가급적 응하지 않고 부가가치가 높은 분야로 생산라인을 조정하고 있다. 이에 따라 지난해 물량부족에 허덕이던 중소 PCB업체들도 이제는 거의 모든 생산라인을 풀가동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업계의 한 관계자는 『국내 전자산업 경기가 최악의 상황에 접어들었던 지난해에도 국내 PCB산업은 성장세를 유지했으며 올해는 30% 이상은 성장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즉 지난해 국내 PCB업계의 생산규모는 97년보다 20% 증가한 1조3000억원에 달한 것으로 추정되고 있으며 올해에는 이보다 30% 늘어난 1조7000억원에 이를 것이라는 게 업계의 지배적인 분석이다.
수출의 경우 지난해 달러대비 원화의 환율이 크게 오르는 바람에 국산 PCB의 가격경쟁력이 회복돼 전년동기보다 4.3% 늘어난 5억5800만달러에 이른 것으로 집계되고 있다. 올해 국내 PCB 수출규모는 환율 변수만 없다면 7억달러는 무난히 달성할 것으로 예측되고 있다.
이제 PCB업계는 경기가 회복국면으로 접어들고 있다고 보고 그동안 보류해놓았던 신기술 개발 및 설비 투자에 적극 나서고 있다.
특히 첨단 PCB로 지칭되는 빌드업·BGA(Ball Grid Array) 등 패키지 기판·CSP(Chip Scale Package)기판·램모듈기판 및 임피던스 기판을 비롯한 고다층 PCB 부문에 신규 참여하는 업체들이 줄을 이어 국내 PCB산업은 선진화된 모습으로 탈바꿈할 것으로 기대되고 있다.
휴대폰 등에 중점 채택되고 있는 빌드업 기판분야에는 삼성전기를 비롯해 대덕전자·LG전자·서광전자·코리아써키트·기주산업·대방·동아정밀·동양물산 등 10여개 업체들이 양산 설비를 구축했거나 추진중이며 일부 선두 빌드업 기판업체는 차세대 빌드업 기술인 열경화성수지공법(TCD 공법), 포토비아 공법 등 다양한 공법 개발에 본격 나서고 있다.
빌드업과 함께 국내 PCB 기술을 선도하고 있는 BGA기판 등 반도체 기판용 첨단 PCB 분야에 대한 업계의 투자도 크게 늘어나고 있다. 삼성전기·LG전자·심텍 등은 이미 세계적인 업체와 어깨를 겨룰 정도로 BGA기판 분야에서 두각을 나타내고 있으며 차세대 BGA기판인 마이크로 BGA·웨이퍼레벨기판 등도 거의 양산단계에 접어들고 있다. 또 세계 메모리 반도체산업의 호황에 힘입어 삼성전기·대덕전자·LG전자·심텍·코리아써키트 등 주요 PCB업체들은 이 분야에 집중적인 투자를 진행하고 있으며 차세대 메모리 모듈용 기판인 램버스기판 시장에서의 주도권을 놓고 경합을 벌이고 있다.
이밖에 네트워크 시스템을 중심으로 수요가 크게 늘어나고 있는 고다층 임피던스기판 분야에서는 대덕전자·이수전자·LG전자·대방·서광전자 등이 선진국 업체에 버금가는 기술을 축적, 해외시장에서 두각을 나타내고 있다.
이처럼 국내 다층인쇄회로기판(MLB)시장은 초호황세를 구가하고 있는 반면 페놀계 단면 PCB는 시장규모 증가 추세가 둔화되고 있어 해당업계를 다소 우울하게 만들고 있다.
특히 페놀계 단면 PCB의 대수요처인 삼성전자와 대우전자의 빅딜은 업계에 지각변동을 가져 올 수 있기 때문에 단면 PCB업계는 여기에 온 신경을 곤두세우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국내 페놀계 단면 PCB업체들은 신기술 개발로 위기를 타개해 나가고 있다. 그 중 하나가 실버스루홀(STH)·코퍼스루홀(CTH) 등 스루홀 기판이다.
대덕산업을 비롯해 LG전자·청주전자·성민전자 등 가전기기용 PCB 생산업체들은 최근들어 에폭시계 양면 기판을 대체할 수 있는 페놀계 실버스루홀 기판을 개발, 가전 및 정보통신기기용 주력 PCB로 공급하고 있다.
그러나 자세히 들여다 보면 업계의 고통도 작지 않다. 특히 중소 PCB업계는 수주감소, 원자재가 인상, 첨단 기술력 미흡으로 인한 신시장 개척 부진 등 3중고에 시달리고 있다.
업계의 한 관계자는 『현재 국내 PCB시장은 양적으로는 주문이 넘쳐나고 있으나 부가가치 높은 품목은 대기업이나 기술력 있는 업체에 편중되고 나머지 업체는 소위 「양떼기」에 급급한 실정』이라면서 『최근 좌초한 업체들은 한결같이 무리한 설비 확장을 통해 양떼기 사업에 전념했다』고 지적하고 고질적 병폐인 제살깎기식 경쟁은 지양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이어 『PCB업체들은 이제 내수 중심의 사업전개 방식에서 탈피, 해외시장 개척에 적극 나서야 할 때』라고 밝히면서 『특히 세트업체 수출에 의존하는 로컬수출보다는 직접 해외 고객을 찾아 나서는 직수출에 더욱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고 지적했다.
한편 올들어 국내 PCB업계에서 주목되는 현상 중 하나는 바로 해외자본 유치를 통한 해외시장 개척 움직임이다.
『글로벌화 추세를 보이고 있는 세계 경제 흐름을 감안할 때 국내 PCB업계는 내수시장에 안주하지 말고 경쟁력을 확보, 세계시장에 진출하려는 노력을 경주해야 한다』고 국내 한 PCB 전문가는 지적하고 『이제는 해외자본 유치 등 해외업체와의 다각적인 전략적 제휴를 추진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주장했다.
<이희영기자 hylee@e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