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은 여왕 치하 때 도약했다. 엘리자베스 1세(1558∼1603년)는 영국국교회를 확고히 해 종파분란을 없애고 수도원령 몰수, 빈민대책 수립 등 국내문제에서부터 중상주의에 입각한 적극적인 해외진출책을 펴 무적 스페인함대를 격파, 국위를 높이고 문화를 꽃피우게 했다.
무려 65년이나 지속된 빅토리아여왕(1837∼1901)의 치세 때는 산업혁명에 성공, 강대한 공업국으로 변모하고 7대 바다를 지배하는 대제국으로 자리를 굳혔다. 마거릿 대처 전 총리는 매너리즘과 소모적인 노사분쟁을 강력한 대처(對處)로 종식시키는 등 「영국병」을 치유시킨 「철의 여제」로 불린다.
지난 52년 여왕에 즉위한 엘리자베스 2세 영국 여왕과 남편 필립공이 김대중 대통령 초청으로 19일 영국 국가원수로는 처음으로 국빈 방한했다. 최근 서울은행을 인수한 영국의 HSBC그룹과 유니레버·GEC 등 세계적인 대기업 25개사 회장 및 사장은 한·영 재계회의를 통해 국내 대기업들과 투자상담을 벌였다. 여왕은 방한기간에 한국적인 곳들을 찾아보고, 대륭정밀·애니드림·LG종합연구소 등 산업현장 방문을 포함한 다채로운 행사에 참석했다. 바쁜 일정으로 인해 여왕 부처가 별도로 움직이는 경우도 다반사였다.
우리 정부는 이번 여왕 방한이 양국 관계는 물론 우리나라의 대외신인도 제고에 큰 도움이 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고, 기업들은 한·영 양국뿐만 아니라 영연방 국가 수억 인구의 시선이 집중되는 이번 초대형 이벤트가 자사를 전세계에 소개하는 절호의 기회가 되기를 잔뜩 바라고 있다.
여왕은 이번 방문 때 우리 대기업 총수들에게 IMF 이후 주춤해진 영국 투자를 늘려줄 것을 요청하는 등 직접적인 「세일즈 외교」를 폈다고 한다. 과거 우리 기업들의 영국 현지공장 건설 또는 준공 때 여왕이 스스럼없이 참석해 자리를 빛내줬던 것 또한 자국민에게 「일자리」를 보태주고 투자확대를 꾀하기 위한 마음에서였다는 후문이다. 짧은 호황에 겨워 거들먹거렸던 시절에 대한 부끄러움과 공직자로서의 여왕의 마음가짐에 대한 부러움이 교차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