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과학의 날> 서정욱 과기부장관특별회견

 서정욱 과학기술부 장관은 운전중에 교통순경이 서라면 아무 잘못이 없어도 무조건 서는 사람이다. 그는 적어도 교통순경에게 따지지 않는다. 교통순경을 정부로 여기는 그는 『국민이 정부가 서라면 서는 것은 당연한 것 아니냐』고 반문한다. 그는 미지의 분야였던 코드분할다중접속(CDMA)개발 등 굵직한 연구과제를 성공적으로 이끌어낸 것도 시대와 국가가 과학자인 자신에게 요구했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출연연 연구원에서 출발, 민간기업 최고경영자 등을 거치면서 과학자로서는 물론 기업경영에서도 탁월한 능력을 보여준 그가 우리나라 과학기술정책 책임자 자리에 올랐다. 연구개발에 대한 신념과 소신이 남다른 그가 과학기술계에 어떤 새바람을 일으킬지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과학의 날을 맞아 본지 윤원창 경제과학부장이 서정욱 장관을 만나 과학기술계 현안에 대한 얘기를 들어봤다.

<편집자>

대담=본지 윤원창 경제과학부장

 -과기부를 떠난 지 7년여 만에 우리나라 과학기술정책 수장으로 복귀하셨는데 앞으로 과학기술정책은 어떻게 펴나갈 생각입니까.

 ▲과학기술 입국을 이제 행동으로 옮겨야 할 시점입니다. 연구계, 산업계, 학계를 거치면서 과거에는 생각하지 못한 것에 대해 많은 걸 깨달았습니다.

 산업현장에는 실용기술뿐만 아니라 기초이론도 겸비한 훌륭한 과학기술자가 필요합니다. 기초기술·기초과학-응용기술·응용과학-산업기술이 유기적으로 연계돼 활용될 수 있도록 해 나가겠습니다. 또 평생을 과학기술계에 몸담아 온 사람으로서 현장에서 느꼈던 점을 정책에 반영하고 과학기술의 원동력이 되는 연구원들이 안심하고 연구활동에 전념할 수 있도록 뒷받침하겠습니다.

 -우리나라 과학기술정책의 문제점은 무엇이라고 보십니까.

 ▲지금까지 우리나라 과학기술정책이 모두 은행나무만을 심도록 유도해왔다는 데 문제가 있습니다. 다양화된 현대사회에서는 채소밭도 가꾸고 소나무도 심어야 하고 큰딸 시집갈 때 쓸 수 있는 오동나무도 미리 심는 등 한정된 자금으로 다양한 연구활동을 하도록 해야 합니다.

 특히 뚜렷한 목표도 없이 나무가 있어야 한다니까 너도나도 이 나무 저 나무를 심다 보니 땅 속의 영양분만 소진되고 나무는 많은데 집 짓거나 장롱 만들 때는 정작 수입해다 써야 하는 게 현실입니다. 모든게 자신의 입장에서 눈앞만 생각한 결과입니다. 이젠 국가 과학기술정책을 종합조정할 수 있는 국가과학기술위원회가 설치된 만큼 교통정리가 될 수 있어 달라질 것입니다. 씨를 뿌려 한달 후에 먹을 상추 같은 채소밭은 산업자원부와 정보통신부가 맡고 과기부는 나무심는 일에 전념할 것입니다.

 -장관 취임 이후 발언을 종합하면 기초과학은 연구한다고 해서 되는게 아니라 실용적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이루어져야 한다고 강조하신 걸로 알고 있습니다. 이에 대해 논란이 있는 것 같은데.

 ▲결코 기초과학의 중요성을 무시해서 그런 건 아닙니다. 제가 보는 과학기술은 산자부·정통부·교육부 장관이 보는 차원과는 다릅니다. 우리의 현실에서 보면 대학도 뉴턴만 추구하지 말고 에디슨이나 오펜하이머 같은 과학기술자도 양성해 달라고 부탁하고 싶습니다. 경험상 민간기업에서 어떤 신기술을 개발하려고 해도 참고할 만한 연구결과물이 별로 없습니다. 물리·전자 등 기초연구에 대한 대학 논문은 많지만 기업에서 실용화에 참고할 만한 연구논문이 없어 처음부터 다시하는 실정입니다.

 다시말해 물리 등 기초과학도 기술개발이 필요한 곳에서 하는 게 더 효율적입니다. 기술개발에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 논문을 위한 연구는 하지 말자는 것입니다. 우리는 지금까지 토양도 없는 곳에 꽃꽂이식으로 기초과학을 연구해왔다는 얘기입니다. 그간 경험을 감안할 때 어느 프로젝트에나 기초과학 하는 사람들은 필요한 만큼 기초과학을 제대로 익힌 인재를 대학에서 많이 배출해야 합니다.

 -기초과학의 중요성을 별로 인정하지 않는 것 같은데.

 ▲미국이 왜 세계 최대의 농업국가가 됐습니까. 미국은 청교도들이 상륙한 후에도 1년내내 농사를 지어도 겨울나기가 어려운 나라였습니다. 그래서 어떻게 하면 병충해를 이길 수 있고 병에 강하고 사료를 적게 먹는 소를 기를 수 있을까를 연구했습니다. 그런게 바로 기초과학입니다. 그리고 어떻게 하면 일본과의 전쟁을 끝낼 수 있나 해서 만든 게 원자탄입니다. 원자탄도 물리·화학·수학·금속공학·전자공학자들이 모두 모여 만든 겁니다. 그게 기초과학이지요. 노벨상 수상자를 가장 많이 낸 나라는 2차대전 이전까지만 해도 유럽입니다.

 그러나 2차대전 이후에는 미국이 휩쓸고 있습니다. 미국은 가장 실용적인 것을 연구개발해냈습니다. 트랜지스터도 우연히 개발된 게 아닙니다. 진공관을 갈아끼는 데 필요한 시간과 돈을 절약하기 위해 개발한 것입니다.

 -그래도 기초과학자는 양성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기초과학자를 양성하는 데는 교육부와 과기부입니다. 실용기술을 연구하다 보면 이에 필요한 기초과학이 요구되고 그때 양성된 기초과학 인력을 투입해 같이 연구하면 됩니다. 물리·화학·수학 등 기초과학은 당분간 과학재단의 지원으로 충분하다고 봅니다.

 SCI(Science Citation Index)에도 등재하지 못하는 논문은 뭐하러 씁니까. 논문은 부교수에서 정교수 되는데 필요하고 선임연구원에서 책임연구원 되는데 필요한 것이지 실제 연구현장에는 전혀 도움이 못돼요. 그런 기초과학 육성은 GNP가 2만∼3만달러에 이르면 교육부나 문화부가 해야 할 일이지요.

 -장관께서는 최근 기자들과 만나 연구원들은 정치적인 마인드를 가져야 한다고 강조한 것으로 알고 있는데 무슨 의미입니까.

 ▲과학자가 정치인이 돼야 한다는 뜻이 아니라 정치적 감각을 키워야 한다는 뜻입니다. 연구원들이 하고 싶은 연구를 하기 위해서는 예산을 확보해야 하는데 대부분 연구실에 앉아 예산타령만 합니다. 연구비가 없어 하고 싶은 연구를 못한다는 것은 얼마나 안타까운 일입니까. 그러나 연구는 뒷전인 채 연구비나 타내려 하거나 연구원으로서 명성보다는 자리를 노리고 로비하는 것은 연구원 자격이 없는 것입니다.

 과학기술자로서 진정 국가를 위해 일한다면 정치하는 사람이나 예산 등 칼을 쥐고 있는 사람에게 잘보이고 기분좋게 해야 연구비를 많이 확보하고 계속 연구할 수 있는 것 아닙니까. 불평은 자신없는 사람이 합니다. 연구비가 적다고 불평하기보다는 찾아다니며 「연구비를 지원해줘 고맙다」는 인사를 할 때 정치인이나 예산당국이 관심을 갖게 되는 것입니다. CDMA연구도 한때 연구비가 없어 공중분해될 위기에 있었습니다.

 아찔한 순간이었지요. 제가 정치권은 물론 관계당국을 백방으로 뛰어 이해시키고 설득해 연구를 지속할 수 있었고 그래서 오늘의 CDMA가 탄생한 것입니다. 과학자의 한사람으로 얼마나 보람된 일입니까.

 -여성과학자들에 대해 상당한 관심을 갖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특별대책이 있습니까.

 ▲우리나라엔 우수한 여성 과학기술 인력이 많습니다. 여성이나 남성 연구인력을 양성할 때 드는 비용은 동일하고 능력도 같습니다. 그런데도 우리 사회는 너무 남성 연구인력들에게만 기회를 주고 있습니다.

 앞으로 장관직에 있는 한 연구프로젝트를 공모할 때 연구팀에 여성 과학기술 인력이 포함돼 있으면 연구비도 더 주고 제안서 평가에 가산점을 주도록 할 생각입니다.

 -연구결과에 대한 평가가 앞으로 엄격해질 것이라고 들었습니다.

 ▲과학기술은 미지에 대한 도전입니다. 미지는 기지(旣知)에 대한 미지와 미지에 대한 미지가 있습니다. 기지에 대한 미지는 모방형이고 미지에 대한 미지는 창조형입니다.

 지금까지 우리는 기지에 대한 미지를 추구해왔지요. 이미 선진국에서 만든 비행기·자동차를 만드는 등 모두 모방·추종형이었습니다. 미지에 대한 미지는 실패할 수도 있습니다.

 이런 창조형 연구과제들에 대해서는 상은 못 주더라도 재도전의 기회를 줄 것입니다. 연구개발평가 결과를 보면 우리나라에는 성공한 연구결과만 있지 실패한 결과는 단 한 건도 없습니다.

 모든 연구과제가 성공을 거뒀다고 하는데 그 결과물들은 모두 어디에 가 있는지 모르겠습니다. 다시 말하지만 논문을 위한 연구는 더 이상 용납하지 않을 것입니다. 아무도 하지 않았던 CDMA는 절대 실패해서는 안될 과제였는데 실패할 수도 있었습니다. 브라질과 인도가 실패한 것이 단적인 예입니다.

 실패 이유는 경영 때문이었습니다. 과학기술자도 세상 돌아가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과학기술자는 자신의 연구가 결실을 거두기 위해 지식, 시간, 사람을 경영할 줄 알아야 합니다. 뉴턴은 혼자 공부해 성공한 사람입니다. 그러나 원자력의 아버지격인 오펜하이머는 네바다주에 틀어박혀 엄청나게 많은 기술자, 군인, 과학자를 거느리고 연구프로젝트를 경영했습니다. 저의 일생을 걸고 연구에 몰두한 CDMA연구가 성공할 수 있었던 것도 경영마인드 때문입니다.

 -자장면 일화가 있을 정도로 연구개발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젊은 연구원들과 동고동락한 것으로 알고 있는데 요즘 연구원들을 어떻게 보십니까.

 ▲현장에서 연구하는 연구자는 나이와 관계없이 내 친구입니다. 이들이 내가 진짜 사랑해야 할 사람들입니다.

 그 사람들을 위해 일하겠습니다. CDMA개발 과정에서도 그랬지만 내게 필요한 사람은 현장에서 밤을 지새워 연구하는 젊은 연구원들입니다. CDMA도 그들이 해낸 겁니다. 장관의 자격으로서가 아니라 친구로서, 형으로서 그들을 대할 겁니다. 지금 생각하면 그때 자장면 맛은 절대 잊을 수 없습니다.

 -출연연이 경영혁신 등 여러 가지 문제로 어려움을 겪고 있습니다. 어떻게 풀어갈 작정이십니까.

 ▲출연연 연구원과 원장을 역임한 사람으로서 누구보다도 출연연을 사랑합니다. 그러나 현재의 출연연 상태에서는 보약을 달여 먹이더라도 병을 고친 다음에 보약을 먹여야지 기생충이 있는 상태에서는 별 효과가 없습니다. 아픔이 있더라도 고칠 것은 고쳐야지요. 「대관세찰(大觀細察)」의 철학대로 크게 살펴본 후 비록 떠났어도 바람직한 지원방안을 찾아 볼 것입니다.

 -국가 연구개발 부문의 80% 이상을 차지하는 민간기업연구소가 구조조정의 여파로 연구개발투자가 위축되고 연구원들의 사기가 크게 떨어져 있습니다. 기업들의 연구개발투자 의욕을 유도할 만한 방안은 갖고 계십니까.

 ▲기업의 연구개발 환경이 위축되고 있는 것은 사실입니다. 기업의 입장에서 보면 당장 죽고사는 것이 문제니까 그럴 수도 있다고 봅니다. 이럴 때 정부가 제대로 해야지요. 연구소 운영비와 인건비를 지원하는 등 민간기업에 대한 연구비 지원을 지난해보다 30% 이상 늘려 모두 1300억원을 지원할 계획입니다. 그러나 먼 장래를 생각하면 기업 스스로 연구개발투자를 우선해야 한다고 봅니다.

 -젊은 후배 과학기술자들에게 부탁하고 싶은 말씀은.

 ▲열심히 하는 사람에게는 꼭 보답할 것입니다. 정책의 일관성을 유지하고 연구원들이 흔들리지 않도록 할 작정입니다. 저를 보십시오. 나름대로 열심히 하다 보니 출연연 연구원에서 출발해 장관의 위치에까지 오르지 않았습니까. 자신을 위해서라도 열심히 연구에 몰두하길 바랍니다.

<정리=정창훈기자 chjung@e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