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도체 빅딜이 자발적이라기보다 정치적인 접근 논리에서 이뤄졌다는 측면에서 현대전자-LG반도체 통합사는 향후 추스려야 할 과제를 산더미처럼 안고 출발해야 할 것으로 전망된다.
특히 통합협상의 장기화로 상당기간 조업이 중단되고 외국의 바이어들이 떠나면서 입은 물적 피해와 고급 반도체 엔지니어들의 해외 유출로 파생되는 인적 피해는 단기간에 복구하기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고용문제=LG반도체를 통합하는 현대전자에 떨어진 발등의 불은 무엇보다 「고용문제」일 것으로 예상된다. 핵심쟁점인 주식 양수도 가격 문제에 앞서 LG반도체 직원들의 고용 승계 문제가 빅딜의 발목을 잡았었다는 사실이 향후 이 문제의 어려움을 예고하고 있다.
이와 관련, LG반도체 비상대책위원회 측은 아직도 「고용보장없는 합병은 받아들이지 못한다」는 강경입장을 버리지 않고 있는 상황이다.
당초 2000년까지 고용보장에 잠정 합의했던 비대위 측은 최근 주식 양수도 계약 체결 이후 3년간으로, 명퇴금도 10개월에서 13개월로 늘려줄 것을 요구하며 파업을 경고하고 있다.
더욱이 최근 지하철공사와 대우조선 노조 측이 파업을 실시하는 등 노동계가 전반적으로 강경분위기로 흐르고 있다는 점은 현대 측에 적지 않은 부담이다.
◇라인통합=판이하게 다른 양쪽의 반도체 라인을 어떻게 통합시킬 것인지도 주요 해결 과제 중 하나다. 특히 이 문제는 반도체 빅딜의 기본 목적인 경쟁력 향상의 가장 핵심적인 사항으로 인식되고 있다.
반도체는 기초재료인 웨이퍼가 생산 라인에 투입된 후 2개월 이상의 긴 제조 과정과 250여 가지의 공정을 거쳐 완성되는 종합 전자부품이다. 그래서 반도체 제조 공정을 흔히 「종합예술」이라 불리는 건축에 비유되며 실제로도 그만큼 많은 장비와 인력이 투입된다.
수백여종의 공정을 거치면서 미세한 먼지 하나로 인해 발생하는 조그만 에러가 전체 수율을 떨어뜨리고 생산 라인을 한순간에 멈추게 할 수도 있는 것이 반도체 제조 분야의 특성이다.
따라서 현대전자가 반도체사업 합병 합의 이후 곧바로 라인 조정 작업에 착수한다 하더라도 반도체 분야의 기술 특성상 상당기간은 각자의 방식대로 제품을 계속 생산할 수밖에 없을 것으로 예측된다.
이러한 기술 조정 단계를 거친 후 실질적인 라인 통합 작업에 착수할 경우에도 길게는 2년 이상의 기간이 소요될 뿐만 아니라 양사의 64MD램 3세대 제품을 동일한 공정으로 생산하기 위해서는 라인당 1000억∼2000억원 이상의 엄청난 추가 투자가 필요할 것이라는 게 업계의 추산이다.
더욱이 현대와 LG의 경우 기본적으로 반도체 설계 및 공정기술은 물론 생산설비까지 호환성이 없어 라인 통합에 소요될 기간 및 비용은 상상을 초월할 수도 있으며 근본적으로 라인 통합 자체가 불가능할 지도 모른다는 우려도 적지 않다.
따라서 현대와 LG의 현재 라인 통합 작업은 일부 설비의 대체 및 보완 수준이 아닌 전면적인 장비 변경이 불가피할 것으로 예상된다는 지적이다.
이같은 각종 기술 및 경제적 문제점들을 고려할 때 현대 측은 LG와 합병한 이후에도 기존의 D램 생산라인을 그대로 유지한 채 별개 회사처럼 운영할 수밖에 없을 것이란 진단이 지배적이다. 따라서 양사의 실질적인 생산 라인 통합은 차세대 제품인 256MD램 3세대 제품 생산부터 시작될 것이 확실시된다.
◇통상문제(미국의 견제)=현대-LG의 반도체 빅딜이 성사되는 분위기가 익어가자 곧바로 「미국 의회와 반도체업계는 막바지 단계에 접어든 현대와 LG의 반도체 빅딜이 무역협정 위반이라면서 미국 행정부에 이를 저지하도록 요구중」이라는 외신이 터져 나왔다.
오린 해치 법사위원장을 비롯한 12명의 상·하원 의원들과 반도체업계 대표들로 구성된 한국 반도체 빅딜대책위원회는 최근 로버트 루빈 재무장관, 빌 데일리 상무장관, 샬린 바셰프스키 무역대표에게 서한을 보내 「미국의 이익을 보호하기 위해 현대-LG 반도체 합병에 개입해야 한다」고 촉구했다는 것이다.
대책위원회는 특히 한국 정부가 130억달러에 달하는 부채 탕감을 추진, 국제통화기금(IMF)의 약속을 위반하고 있다면서 미국의 관련 무역 법규를 발동할 것을 촉구했다.
특히 메모리업계에서 유일하게 한국과 경쟁할 수 있는 미 마이크론사의 로비가 거세지면서 통상·특허 등 분야에 적지 않은 분쟁이 예상되고 있다.
<최승철기자 scchoi@e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