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도체 분야에서 미국 인텔의 지위는 확고부동한 1위다.
최근 미국의 권위있는 시장조사기관인 데이터퀘스트는 지난해 인텔의 반도체 매출이 228억 달러로 2위인 일본 NEC의 82억 달러보다 3배에 가까운 것으로 발표했다.
세계 최대의 메모리업체인 삼성전자는 47억 달러로 6위에 그쳤을 뿐이다.
인텔이 이처럼 독보적인 위치를 차지하고 있는 것은 기술이 앞서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미래를 내다보는 마케팅에 힘입은 바 크다.
경쟁사인 AMD나 내셔널세미컨덕터 등의 CPU가 인텔의 제품에 비해 성능에서 별로 뒤지지 않는데도 인텔을 쫓아가지 못하는 것은 바로 그 때문이다.
최근 인텔의 움직임을 보면 장래의 시장을 자기 입맛대로 만들어 가고 있는 것 같다.
멀티미디어나 인터넷에 대비, 펜티엄Ⅲ의 기능을 강화하기 위해 벨기에의 음성인식 소프트웨어 전문업체인 런아웃&호스피에 3000만 달러를 투자키로 한 것도 인텔의 포석이다.
특히 인텔은 한국과 미국·일본의 메모리반도체업체들에 펜티엄Ⅲ 칩세트에 채택할 램버스 D램 생산라인에 투자하도록 수억 달러를 대주겠다고 제의했다.
우리나라와 미국 업체는 그것을 선뜻 받아들였다.
그러나 일본의 NEC·미쓰비시·도시바 등은 이 제의를 일축해버렸다.
그들은 많은 업체들이 램버스 D램을 집중적으로 생산할 경우 경쟁이 치열해지고 결국 큰 폭의 가격하락이 불가피한데 그것을 경계했기 때문이다.
그들은 램버스 D램 생산에 설비를 집중하지 않고 PC133규격에 맞춘 싱크로너스 D램 등 생산품목 다양화를 통해 인텔의 종속으로부터 탈피한다는 것이다.
지난해 사상 최악의 불황에 시달린 일본 업체들이 달러가 필요한 사정은 우리와 별 다를 바 없었을 것이다.
그러한 상황에서도 먼 장래를 내다보고 떡밥과도 같은 인텔의 유혹을 과감히 떨쳐버릴 수 있었던 결단을 우리 업체들도 배웠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