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리즈> 현대-LG 우여곡절 끝 타결 "반도체 빅딜" (상);의미

 D램으로 세계를 평정한 국내 반도체 산업이 사상 초유의 격변기를 맞았다. IMF위기에서 야기된 현대와 LG의 반도체 빅딜이 10년을 넘게 지탱해온 삼성-현대-LG의 트로이카 체제를 무너뜨리고 삼성과 현대의 투톱시스템으로 전환시킨 것이다. 하지만 반도체 빅딜에 대한 전문가 집단의 평가는 여전히 찬반이 엇갈리고 있다. 메모리 반도체분야에서 부동의 1위를 지키고 있는 삼성전자와 자웅을 겨룰 수 있는 또 하나의 메이저업체를 만들어 냄으로써 D램시장에 대한 지배력이 절대적 수준까지 올라섰다는 평가가 있는 반면 인위적 구조조정으로 3년만에 다가온 호황기를 놓칠 지도 모른다는 비판적 견해도 적지 않다. 하지만 기왕에 빅딜이 성사된 마당에 빅딜 자체에 대한 더 이상의 소모적 찬반논쟁은 아무런 도움이 되지 못한다는 견해가 설득력을 갖는다. 1년 가까이 끌어온 빅딜로 파생된 각종 피해와 부작용을 추스리고 국내 반도체 산업의 경쟁력을 높일 수 있는 발전적 논의가 필요한 시점이라는 지적이다. 반도체 빅딜 이후의 과제와 전망을 3차례에 나눠 짚어본다.

<편집자>

 현대전자가 LG반도체를 흡수 합병하는 이른바 「반도체 빅딜」은 국내는 물론 세계 반도체업계 차원에서도 메가톤급 폭발력을 가진 중대 사건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한결같은 평가다.

 반도체 분야 시장조사전문업체인 미 IDC사의 최근 자료에 따르면 현대전자와 LG반도체의 98년 세계 D램시장 점유율 순위는 2위와 5위. 양사의 공식적인 점유율을 합하면 20.7%. 여기에 LG반도체가 일본 히타치사에 주문자상표부착방식(OEM)으로 공급하는 물량을 포함할 경우 양사의 합은 22.7%까지 늘어난다.

 세계 D램업계의 절대강자로 불리는 삼성전자가 지난해 처음으로 점유율 20%의 벽을 간신히 넘어섰다는 사실을 감안하면 이번 반도체 빅딜로 탄생하는 합병사의 파괴력을 짐작할 수 있다.

 사실 D램시장에서 한 업체가 점유율을 20% 이상으로 끌어올린다는 것은 이론적으로 불가능한 일이다. 대체적으로 주요 시스템업체들이 특정 D램업체에 대한 의존성을 줄이기 위해 한 업체에 20% 이상의 물량 배분을 하지 않는 것이 관례기 때문이다.

 그동안 적지 않은 비판과 반대에도 불구하고 반도체 빅딜을 강력히 밀어붙인 정부의 논리는 바로 이러한 단순 산술적인 접근에서 출발했다는 분석이다.

 이러한 정부 측의 계산은 일면 타당성을 갖고 있다. 더욱이 세계 D램시장이 이르면 올 하반기부터 「공급부족」의 상황으로 바뀔 것이라는 전망이 맞아떨어질 경우 2위와 5위 업체의 체제보다 강력한 가격결정력을 가진 거대업체 체제가 이윤을 극대화할 수 있다는 측면이 적지 않다는 지적이다.

 더욱이 최근 세계 D램업계가 3년간 계속된 혹독한 불황의 여파로 메이저 중심으로 재편되고 있다. 경우에 따라선 세계 D램업계가 삼성-현대-미 마이크론의 빅3 체제로 급격히 변화할 것이라는 극단적 전망도 제기되고 있는 상황이다.

 우리나라와 함께 메모리 반도체시장을 주도하고 있는 미국과 일본은 물론이고 유럽연합까지 한국의 반도체 빅딜을 예의 주시하고 있는 것은 바로 이같은 정황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거대업체의 등장으로 시장 지배력 증강의 긍정적인 측면의 그늘에는 상대국의 견제와 압력이라는 부정적인 영향이 도사리고 있다는 지적도 고려해야 할 것으로 보인다. 어쨌든 이번 현대와 LG의 반도체 빅딜로 한국의 세계 메모리 반도체시장에서의 절대적인 지배력은 당분간 지속될 것으로 전망된다.

<최승철기자 scchoi@e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