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대호 정보통신정책연구원 연구위원
매년 4월 중순이면 미국 라스베이거스는 전세계 방송관계자들로 북새통을 이룬다. 올해도 예외는 아니어서 지난 17일부터 22일까지 미국방송협회(NAB) 연차총회 겸 콘퍼런스가 열렸다. 그러나 이번 「NAB99」 전시회는 예년과 달리 1900년대를 마감하는 행사이자 새로운 천년의 시대로 들어가는 관문으로서 미국 방송계의 키워드를 제시하는 의미를 가진 중요한 행사였다. 그래서인지 이번 NAB행사에는 미국에서 뿐만 아니라 전세계 130개국에서 10만여명이 참가했다.
그렇다면 새로운 천년을 여는 방송계의 화두는 무엇인가. 그것은 바로 디지털TV다. 좀더 세부적으로는 디지털TV와 인터넷, 양방향TV로 요약할 수 있다.
작년 11월 디지털 지상파TV방송을 시작한 미국으로서는 이제 디지털TV에 대한 논쟁이 끝났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디지털방송은 기술적인 측면에서 아날로그방식에서 디지털방식으로의 전환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이제 방송계는 디지털TV를 새로운 문화를 창조하고 새로운 비즈니스 모델을 창조하는 원동력으로 간주하고 있다. 지상파방송뿐만 아니라 케이블TV, 위성방송 모두 디지털화가 가져다주는 새로운 기회를 어떻게 포착할 것이냐에 관심이 있다.
특히 방송계는 양방향화(Interactivity)가 기존 미디어와 차별되는 핵심적인 요인으로서 이를 수용해야 한다고 보고 있다. 양방향화는 더 나은 TV로 발전하는 길이며 수입창출의 기회(전자상거래, 광고)가 되고 수용자에게는 더 많은 선택과 정보 제공의 기회를 제공해 준다.
이것은 이미 현실화하여 이번 NAB에서도 「OpenTV」 「TiboTV」 「ReplayTV」 「ICTV」 「Wink」 등 방송을 기반으로 양방향서비스를 제공하는 많은 서비스가 선을 보였다. 이 중 「OpenTV」는 이미 영국 「BSkyB」 등 유럽의 디지털 위성방송에서 양방향서비스를 구현하고 있고 이미 200만 가입자를 확보하고 있으며 올 가을에는 미국 위성방송 「Echostar」에도 양방향서비스를 제공할 예정이다.
그러나 방송계만이 디지털TV의 주체는 아니다. 디지털화는 PC를 기반으로 하는 인터넷기업의 방송산업 진입을 가속화하며 방송의 개념에 변화를 야기하고 있다. 인터넷쪽에서는 「Personal TV」 「Internet TV」 등의 개념을 만들어 내며 인터넷과 방송의 결합을 추진하고 있다. 그 대표적인 예가 야후와 결합한 「broadcast.com」이다. 케나드 미연방통신위원회(FCC) 위원장은 「broadcast.com」을 명확히 「방송사」라고 정의했다. 이번 NAB행사에서도 「broadcast.com」의 큐반 사장은 가장 많은 주목을 받았다. 「broadcast.com」과 같은 신참자들이 기존의 ABC·CBS 등 거대 네트워크방송사와 자리를 같이하는 것이 현실이 된 것이다. 따라서 이번 NAB에서도 PC와 TV 가운데 어느 것이 승리할 것이냐는 논쟁이 커다란 흥미를 끌었다.
물론 아직 누가 승리할 것인지 장담하기는 어렵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디지털·인터넷 등 새로운 기술과 서비스가 방송에 도입되고 있으며 이는 지금의 TV와는 다른 세계를 만들어 낸다는 것이다. 그렇다고 물론 기존 방송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방송사들이 이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지 못할 때 지금과 같은 위상을 잃는 것은 필연적이다. 10년 전 미국 방송계는 3대 네트워크(ABC·CBS·NBC)를 이야기했으나 지금은 3대 산업(방송·케이블·인터넷)을 이야기한다고 한다. 그리고 그 핵심에 디지털이 자리잡고 있다. 불과 10년 만의 방송계의 변화의 강도는 그래서 그만큼 강력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