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고속 거듭하는 PC게임의 발자취

 최초의 컴퓨터 게임을 떠올리라고 하면 국내에서는 대부분 80년대 말부터 인기를 끌었던 테트리스를 연상하는 사람들이 많다. 이미 오락실에서 선풍적인 인기를 모았던 테트리스는 당시 폭발적으로 확산되던 286급 PC 보급과 함께 PC 게이머들을 게임 중독에 빠뜨리는 출발점이 되기도 했다. 키보드의 방향 키 4개로 모든 게임을 즐길 수 있었던 테트리스는 소코반, 헥사 등 비슷한 게임들과 함께 사랑을 받았다. 하지만 전세계적으로 보면 이 시기는 이미 PC 게임이 본격적인 산업으로 발전하고 있던 때였다.

 컴퓨터 게임의 출발시기는 72년으로 거슬러올라간다. 50년대와 60년대에도 일부 메인프레임급 컴퓨터에서 초보적인 수준의 게임이 만들어지기는 했지만 게임이라는 장르가 대중의 눈에 띄기 시작한 것은 바로 이 해부터라고 할 수 있다. 미국 매사추세츠대학내 타임셰어링시스템에서 근무하던 그레고리 욥이라는 사람이 「움프」라는 텍스트 게임을 개발했다. 메인프레임을 기반으로 만들어진 이 게임은 다섯 개의 화살로 무장하고 동굴을 돌아다니면서 여러 장애물을 극복하고 움프스라는 생물을 찾으러다니는 내용이었다. 이 게임은 아르파넷을 통해 폭발적인 인기를 얻었으며 현재도 웹 움프스(http://scv.bu.edu/htbin/wcl)라는 이름으로 웹에서 즐길 수도 있다.

 같은 해에 윌리 코스터는 최초의 텍스트 기반 어드벤처 게임이라 할 수 있는 「어드벤처」를 만들었다. 이 게임은 거대한 동굴을 탐험하면서 가능한 한 많은 보물을 모아 출발점으로 되돌아오는 것이다. 이 게임도 역시 아르파넷을 통해 확산되면서 대학생들을 중심으로 폭발적인 인기를 얻었다.

 이러한 텍스트 게임들은 대개 메인프레임 터미널에서 ASCII코드로 만들어진 그래픽을 보면서 「옆을 보라」 「앞으로 가기」 등 직접 텍스트로 명령을 입력해 게임을 진행하도록 한 것이다.

 이같은 텍스트 기반의 게임시대에서 그래픽 기반의 게임이 등장하게 된 것은 「조크(Zork)」가 등장하면서부터다. MIT의 데이브 레블링과 마크 블랭크라는 학생이 77년 처음 개발한 「미로」 게임을 기반으로 만든 것으로 두 명의 사용자가 미로를 돌아다니면서 서로 총을 쏴 맞추는 게임이었다. 이 게임으로 두 개발자는 인포컴이라는 게임회사를 만들었고 81년 메인프레임에서 마지막으로 개발한 업데이트 버전에서 1MB의 벽을 깨기도 했다.

 마이크로 컴퓨터가 등장한 것이 이때쯤이다. 탠디의 「TRS-80」과 「애플Ⅱ」가 대중에 공개되자 조크팀은 Z머신과 ZIL(Zork Implementation Language), ZIP(Z-Machine Interpreter Program) 등을 만들어 PC에서 게임을 운영하도록 「조크」의 포팅작업을 완료했다. PC용 조크는 TRS-80 제품에 이어 이듬해인 90년에 애플Ⅱ용으로도 포팅돼 8개월 만에 6000카피를 파는 기록을 세우기도 했다. 조크는 나중에 액티비전사가 인수해 97년 「조크 그랜드 인퀴지터」라는 이름으로 새로운 버전이 출시되기도 했다.

 80년에 윌리엄스 부부는 온라인시스템스라는 회사를 만들고 「미스터리 하우스」라는 그래픽과 텍스트를 결합한 최초의 애플Ⅱ용 게임을 내놓았다. 이 게임은 추리소설처럼 집 안 이곳저곳을 돌아다니면서 위험한 장애물은 피하고 보물을 찾아내는 게임이었다. 그래픽 수준은 인포컴의 조크에 비해 훨씬 떨어졌지만 텍스트와 그래픽을 동시에 이용할 수 있었기 때문에 대중적으로는 대단한 인기를 끌어 발매 첫해에만 1만1000카피를 팔아치우는 기록을 세웠다.

 이 매출에 힘입어 이들 부부는 현재도 게임의 명가로 손꼽히는 「시에라 온라인」으로 회사 명칭을 바꿨다. 이 시에라 온라인에 IBM은 83년 CGA 그래픽 기능을 갖춘 「PCjr」라는 컴퓨터를 내놓고 이 컴퓨터의 성능을 과시할 수 있는 게임제작을 의뢰했다.

 시에라 온라인이 IBM의 지원을 받아 70만달러라는 당시로서는 거액의 제작비를 들여 만든 그래픽 어드벤처 게임인 「킹 퀘스트」는 엄청난 반향을 일으켰다. 게임 속에서 그레이엄 경이 된 게이머가 에드워드 왕을 따라 세 가지 보물이 있는 데이븐트리 왕국을 찾아 모험을 떠나는 것을 줄거리로 하는 킹 퀘스트는 84년 출시돼 270만 카피라는 엄청난 판매고를 기록했다.

 시에라는 이후 루커스 아츠가 새로운 강자로 떠오르기까지 「스페이스퀘스트」 「래리시리즈」 「폴리스 퀘스트」 등으로 그래픽 어드벤처에서 거의 독점적인 위치를 차지했다.

 77년 미 텍사스에 있는 클리어 크리크 고등학교에 다니던 15세 소년인 리처드 개리엇은 학교 숙제로 텔레타이프 머신을 이용한 던전 게임을 만들어 A학점을 받는다. 79년 컴퓨터랜드에서 아르바이트로 일을 하던 개리엇은 애플컴퓨터용으로 던전 게임을 발전시키기로 결심하고 「아카라베스」라는 이름의 게임을 개발한다. 이 게임은 우연히 캘리포니아 퍼시픽이라는 회사의 눈에 띄어 상용화되고 그해 3만 카피를 팔아치우는 기록을 세운다. 80년 이 작품을 베이식 언어로 다시 만들어 역시 캘리포니아 퍼시픽사를 통해 내놓은 것이 그 유명한 「울티마」다. 83년 개리엇은 아버지와 함께 오리진 시스템을 창업하고 한 사람의 플레이어가 4명의 모험가를 제어할 수 있는 「울티마Ⅲ」를 내놓는다. 이어 「울티마Ⅳ」에서는 가상 인격체인 「아바타(Avatar)」를 게임에 처음 도입해 본격적인 롤플레잉게임(RPG)의 출발을 알렸다.

 울티마 시리즈는 지난 97년 인터넷에서 여러 사람이 RPG를 즐길 수 있는 「울티마 온라인」으로 성장해 RPG 분야의 대명사로 계속 그 명성을 유지하고 있다. 울티마 온라인은 최근 많은 아이템을 소유한 게이머가 E베이사의 경매로 아바타를 512달러에 판매하기도 해 화제가 되기도 했다.

 80년대 하반기에 게임 개발회사들에 가장 큰 이슈는 애플이나 C-64, IBM, 아미가 등 다양한 시스템 플랫폼을 지원하는 게임을 만드는 것이었다. 하지만 88년까지는 역시 PC에서 볼 수 있는 그래픽이 16색으로 한계가 있었기 때문에 게임 발전도 더딜 수밖에 없었다.

 89년은 게임산업의 지도를 바꾼 해로 기록된다. 256색 VGA 그래픽이 가능해졌고, 애드리브와 사운드블라스터라는 이름의 사운드카드가 처음 출시된 때다. 또한 모뎀을 통해 초보적인 네트워크 게임을 즐길 수 있는 제품도 이해에 처음 나왔고 무엇보다 CD롬을 기반으로 한 최초의 게임인 액티비전사의 「맨홀」 게임이 처음 등장한 해이기도 했다.

 89년을 계기로 PC 게임은 하드웨어의 발전과 함께 멀티미디어의 방향으로 급속하게 진전하기 시작한다.

 91년에 이르면 대부분의 게임 회사들이 CD롬을 적극적으로 활용하기 시작한다.

 특히 CD롬의 방대한 데이터 용량을 이용한 동영상 구현이 게임회사들의 가장 큰 관심사가 되기 시작한 것도 이때부터다. 이전까지만 해도 기껏해야 2MB 이하의 용량만 담을 수 있는 플로피 디스크를 이용해야 했지만 한 장에 640MB라는 엄청난 용량을 담을 수 있는 CD 출현은 게임 산업의 본질을 바꿀 정도로 큰 영향을 미쳤다.

 오리진사의 「윙 커맨더」나 루커스 아츠의 「원숭이 섬의 비밀」이 처음 출시된 것도 91년이었다.

 90년대 PC에서 멀티미디어 게임을 이끈 것은 역시 루커스 아츠다. 77년 처음 시작된 스타워즈시리즈로 인기를 얻은 영화감독 조지 루커스가 82년 만든 루커스 아츠(당시 이름은 루커스필름 게임스)는 93년 SVGA 그래픽과 사운드를 이용한 「XWing」을 내놓으면서 게임업계의 판도를 바꾼다.

 스타워즈의 스토리를 기반으로 한 XWing은 입체감을 살린 화려한 그래픽과 게이머가 진짜 우주공간에서 날아다니는 우주 비행사가 되는 듯한 느낌을 주었다.

 94년 「인디카 레이싱」의 등장은 시뮬레이션과 스포츠 게임에 획을 그은 작품으로 평가된다. 인디카 레이싱은 실제 스포츠카를 운전하는 것과 거의 똑같은 상황을 설정해 시뮬레이션과 스포츠 게임 마니아를 열광시켰다.

 이와 같은 게임과 멀티미디어의 결합이 정점에 이른 사건이 바로 「둠」의 출시다. 이드 소프트사에서 제작한 1인칭 슈팅게임인 둠은 3차원 게임용 엔진이라는 개념을 처음 등장시킨 게임이다. 이동할 때마다 주위 환경이 눈으로 보는 것처럼 달라지는 3차원 게임의 지평을 연 둠은 이후 「언리얼」 「퀘이크」 「하프 라이프」 등으로 이어지며 1인칭 액션게임이라는 장르와 3차원 게임의 지평을 연 대작으로 평가받고 있다.

 98년 초까지만 해도 PC게임 기술은 엄청나게 발달했지만 여전히 게임은 혼자 하는 것이었다. 하지만 몇년 전부터 전세계를 휩쓴 인터넷의 열풍은 게임산업에도 서서히 불어닥치기 시작했다. 이미 RPG분야에서는 울티마 온라인이 97년부터 마니아들의 열풍을 불러일으키고 있었지만 전세계적으로 네트워크 게임의 열풍을 몰아치게 한 것은 지난해 출시된 블리자드사의 「스타크래프트」였다.

 스타크래프트가 성공한 요인은 다양하게 분석이 가능하지만 무엇보다도 「배틀넷」을 통해 여러 사람이 같이 게임을 즐기도록 했다는 것이 가장 큰 성공요인으로 평가된다.

 여기에 순위 개념을 도입해 게임에 승리한 게이머가 배틀넷 홈페이지에 당당히 기록되도록 함으로써 전세계적으로 수많은 스타크래프트 중독자들을 양산해냈다.

 앞으로도 당분간 전략 시뮬레이션을 중심으로 한 네트워크 게임의 열풍은 게임산업의 대세로 자리잡을 것으로 예상된다.

 인터네트워크의 발전과 게임기술의 발전, 하드웨어적인 성능 향상이 결합될 경우 게임을 통한 가상사회 건설도 충분히 가능할 것으로 예측된다.

<구정회기자 jhkoo@e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