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마특강> 영상회의시스템 발전 동향

박세운

◇86년 연세대 물리학과 졸업

◇86~93년 삼성전자 영상정보부 대리

◇94~95년 콤텍시스템 영상회의/음성회의사업부 차장

◇96~98년 픽쳐텔코리아 초대 지사장

◇현재 한국폴리콤 대표이사

 국내에서 영상회의시스템(VCS : Video Conferencing System)만큼 오랫동안 많은 사람들에게 회자되면서도 미개척지같은 느낌을 갖게 하는 분야도 드물 것이다. 국내에서 영상회의시스템이 처음 소개된 것은 지난 85년 정부 제1청사와 과천 정부종합청사간 T1(1.544Mbps)급 전용선을 이용한 그룹영상회의에서다. 그로부터 14여년이 지났지만 기술적 변화 외에 영상회의에 대한 사회적 기여도, 효과적 활용방법에 대한 활발한 연구가 없었다. 이에 따라 다른 정보통신장비에 비해 폭넓은 사전지식을 갖고 영상회의 제품을 도입, 활용하는 데 도움을 줄 수 있는 분위기가 조성되지 못한 아쉬움이 있다.

 영상회의란 서로 다른 지역에 있는 사람들이 상대방을 직접 만나지 않고도 화면을 통해 얼굴을 보면서 회의를 할 수 있는 것을 말한다. 영상회의는 출장에 따르는 제반 비용절감 및 사안 발생시 신속한 회의, 빠른 의사결정을 하도록 해 준다. 시스템 구성요소에는 영상·음성·데이터를 압축 전송 및 복원하기 위한 코덱 부분과 영상 입·출력용 카메라·모니터, 음성 입·출력용 마이크 및 스피커, 기타 회의용 제어기기부가 있다. 전형적인 그룹영상회의는 보통 이들 각 요소가 분리돼 공급되는 반면 PC영상회의나 비디오폰은 일부 기능이 일체화된 형태로 제공된다.

 이 가운데 코덱과 음성을 제어하는 부분은 영상회의시스템의 핵심이다. 영상회의시스템의 발전은 이 두 부분의 발전과도 맥을 같이 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화질은 카메라로부터 입력된 데이터를 얼마나 효율적으로 전송한 뒤 이를 상대방의 시스템에서 복원하느냐 하는 것이 중요하고 초당 전송프레임수에 따라 자연스러운 화질을 얻는 것이 결정된다. 최근에는 배경화면은 그대로 두고 움직이는 부분만 압축·전송해 고화질과 전송지연을 최소화시켜주는 ITU 권고사항 H.263을 채택한 제품들이 잇따라 출시되고 있다. 또한 음질을 떨어뜨리는 에코제거, 잡음제어, 발언자의 위치가 어디에 있든 음성의 크기를 일정하게 송출할 수 있는 기능들이 음질부분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게 된다.

 영상회의의 일반적인 효용성은 첫째, 상품개발 사이클이 단축된다는 점이다. 제조업의 경우 원격지 설계자와 영업기획부서가 한자리에서 자료를 공유하며 매일 토의할 수 있게 돼 새로운 제품을 개발하는 데 소요되는 시간을 대폭 절감할 수 있다. 둘째, 업무수행 능력이 향상된다는 점이다. 팀원 모두가 이동하지 않고도 참여함으로써 빠른 결정을 내릴 수 있는 것이다. 따라서 절감된 시간으로 영업부서는 고객과 접촉하는 기회가 많아지는 효과를 가져온다. 셋째, 출장에 따르는 제반경비의 절감을 가져온다. 자리를 비우지 않고 통화하고 업무를 처리함으로써 교통·숙박비 등 직접경비는 물론 출장인원에 대한 고정인건비 손실을 막을 수 있는 등 여러가지 측면에서 득이 된다.

 세계 영상회의시장은 하드웨어에 따라 크게 세가지 제품군으로 구분된다. 한 회의실에서 다수의 인원과 통화 가능한 전용 그룹영상회의를 비롯해 PC상에 카메라와 코덱보드 또는 SW를 장착, 종합정보통신망(ISDN)이나 근거리통신망(LAN)·웹(Web) 기반의 PC영상회의, 전화선이나 ISDN·웹접속을 사용한 비디오폰 등이다. 또한 용도에 따라 업무용 및 가정·개인용으로, 전송매체 및 속도에 따라 전용선용(64Kbps∼1.5/1.2Mbps)·ISDN용(128∼512Kbps)·LAN용·전화선용 등으로 각각 분류되기도 한다.

 최근 영상회의 사용자들은 코덱의 우수한 화질전송은 물론 명료하고 잡음없는 음성전달 능력, 설치·유지보수 및 이동의 편리성, 운용 편의성, 회의문서 전송능력 등 실제사용에 필요한 요소들을 제품 선택기준으로 삼는 것이 일반적인 추세다.

 영상회의시스템의 상용화는 지난 80년 초 T1/E1(2.048Mbps)급 전용회선을 기반으로 한 룸형(고정형) 영상회의로부터 시작됐다. 룸형 영상회의는 고가의 코덱을 중심으로 각종 음향·영상설비·인테리어를 조합한 제품으로 회의실당 약 1억∼3억원 정도의 도입비가 소요됐다. 그룹형 영상회의의 초기 모델인 룸형은 80년대 말까지 연간 30% 이상의 고성장세를 보였으며 주로 임원급 회의용으로 사용됐다.

 90년대 초 저가로 이동가능한 제품을 지향하며 등장한 것이 롤어바웃(이동형) 제품이다. 이 제품은 그룹회의시장에서 연간 40% 이상의 성장세를 거듭하는 등 룸형 제품을 급속히 대체해 나갔으며 최근까지도 영상회의의 표준모델로 자리잡고 있다. 룸형 제품은 주로 ISDN 및 전용선을 기반으로 한 시스템으로 코덱과 일체형 카메라 및 음향부가 패키지 형태로 제공돼 업무용 영상회의의 대중화를 바라는 시장의 요구를 만족시켜 왔다. 롤어바웃형 제품의 또 다른 특징은 룸형과 달리 전문 운용자가 없어도 된다는 점이다. 소형화된 유무선 키패드는 회의참석자 누구나 영상회의를 운용할 수 있도록 간편화돼 영상회의 대중화에 크게 기여해 왔다. 이어 지난 94년경부터 데스크톱 영상회의가 상용화되기 시작, 개인사용자도 영상회의의 혜택을 누릴 수 있게 됐다. 초기제품은 약 300만∼500만원 정도의 높은 가격대를 형성했으나 현재는 약 100만∼200만원대를 형성하고 있다.

 그러나 최근 2∼3년내에 시장을 변화시킬 예기치 못했던 두가지 변수가 발생했다.

 우선 영상회의의 주사용층을 고려해야 한다는 점이다. 영상회의라는 고급 옵션을 사용하는 이용자는 주로 경영자급이어서 PC운용을 수반해야 하는데 데스크톱 영상회의는 작동이 쉽지 않고 저가형 카메라와 소형화면으로 인해 1∼2명 내외로 사용자수가 제한돼 동일 회의실에 다수의 참석자를 필요로 하는 일반적인 회의에는 적합치 않다는 단점이 있다. 또한 공급자 입장에서는 최근 보급이 늘고 있는 PC에다 데스크톱 영상회의를 맞추기 위해서는 막대한 개발비를 투자해야 하나 시장수요가 한정돼 계속적인 적자를 감수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실제로 지난 96∼97년 말 미국에서는 많은 할머니가 손자에게 크리스마스 선물로 400달러대의 전화선용 데스크톱 영상회의 제품(H.324표준)을 사줄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로 많은 업체들이 고무된 적이 있었다. 그러나 이 기대는 여지없이 무너지고 말았다. 일반소비자들을 만족시킬 만한 품질을 제공치 못하는 등 여러 요인으로 인해 실현되지 못했던 것이다. 결국 아직도 영상회의시장은 업무용이 대부분이며 고급영상·음성 품질이 필수적이라는 의견이 지배적이다.

 또 하나의 변수는 96년 말부터 등장하기 시작한 세트톱형 영상회의 제품군이다. 이 제품은 롤어바웃 제품의 시장 리더인 미국 픽처텔사가 1500만원대의 보급형시장을 목표로 개발한 것이었다. 이후 98년 초부터 다른 경쟁사들이 고급품질을 갖춘 다양한 모델을 출시, 새로운 수요를 창출해 나가고 있다. 세트톱형 제품은 롤어바웃 제품의 3분의 1 수준인 1000만∼2000만원대의 가격으로 발언자 음성추적기능이 탑재된 카메라를 비롯해 20명 이상이 사용 가능한 마이크, 고화질 영상전송 및 문서전송기능 등 영상회의에 필요한 모든 요소를 갖춰 고급사용자에서부터 기존 데스크톱 사용자의 요구에 적극 부응하고 있다. 요컨대 영상회의시장은 세트톱형 제품이 중심이 된 그룹형 영상회의가 다시 주도권을 가져가고 있다고 할 수 있다.

 국내 영상회의의 큰 특징은 도입방법부터 국제흐름과 많은 괴리를 보이고 있다. 일례로 지난 97∼98년 도입이 완료된 몇몇 정부기관 그룹영상회의의 경우 외국에서 이미 10여년 전에 관심을 불러 일으켰던 룸형을 도입, 10∼20개 본·지사에 동시 구축했다. 이는 도입경비 문제뿐 아니라 이를 운용·유지하기 위한 전문 오퍼레이터의 인건비도 부담이 될 수밖에 없었다. 기획 관련부서의 회의에 매번 전산·통신요원의 지원이 필요하다면 영상회의의 도입 이유가 불분명해질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현재 세계 영상회의 장비시장이 약 1조원대를 형성하는 반면 한국은 약 100억∼150억원대에 머물러 다른 정보통신분야에 비해 상당히 낙후된 분야임을 알 수 있다. 전세계 영상회의 도입증가율이 지난 15년간에 걸쳐 30∼40%의 고도성장을 지속한 반면, 한국은 10%선에 머물러 누적 도입대수 면에서도 현격한 차이를 보이고 있다. 또한 영상회의 도입은 선진국의 경우 제조·금융분야 등 일반기업이 주도했으나 우리나라는 정부투자기관 등 공공기관 시장이 상당 부분을 차지하고 있어 영상회의가 아직 기업의 전반적인 생산성 향상에 크게 기여하지 못하고 있다. 다행히 IMF상황 이후 업무의 효율화를 추구하는 상당수의 기업들이 영상회의를 도입중이거나 도입을 적극 검토하고 있고 한국통신의 ISDN서비스 보급확대와 다중회의 서비스에 힘입어 영상회의 가용지역이 전국으로 확대돼 조만간 우리나라에서도 영상회의가 중요한 업무매체로 자리매김할 것으로 보인다.

 영상회의의 연결형태는 전화와 같이 1 대 1을 기본으로 한다. 다수의 장소 참석자가 동일회의에 연결되려면 MCU(Multipoint Control Unit)라는 다지점 연결장치가 필요하다. MCU는 8개 지점 연결용의 경우 1억원 이상이 소요돼 대기업 또는 통신서비스 업체에서만 보유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중소기업체는 영상회의 단말기만 보유하고 한국통신 등 서비스업체에 다중회의를 지원받을 수 있다.

 특히 미국 등은 80년대 후반부터, 일본은 87년부터 통신사업자의 MCU를 통한 다중회의 서비스가 영상회의 시장확산을 지원하고 있으며 우리나라에서도 한국통신이 작년부터 ISDN영상회의 무상접속서비스를 시행하고 있다. 한편 다중회의기능을 자체 보유하려는 시장요구에 부응해 올해 초부터 ISDN용 MCU를 내장한 영상회의 제품이 시장에 대거 출시돼 좋은 반응을 얻고 있다.

 영상회의에서 전송선로의 선택은 매우 중요하다. 데스크톱 영상회의는 전용회선·ISDN용·LAN용·ISDN 및 LAN용·전화선용 등 다양해 사용자의 이용 가능한 접속선로에 맞도록 선택이 가능하다. 이에 반해 그룹영상회의는 전용선과 ISDN용 2가지로 선택의 폭이 좁다. 따라서 그룹영상회의를 구축한 지사에서 본사의 LAN용 데스크톱 영상회의로 통화시 본사에 LAN/WAN변환용 게이트웨이를 통해야만 연결이 가능했다. 하지만 올해 중반부터는 이러한 불편함이 해소될 전망이다. ISDN 및 LAN을 동시지원하는 그룹영상회의가 속속 출시될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이는 또한 인트라넷을 보유한 대기업 등에서 기존 TCP/IP 접속만으로 본·지사간 그룹영상회의를 가능케 할 것이다.

 초저가·고품질 그룹영상회의의 출현도 눈앞에 다가왔다. 지금까지 ISDN 1회선용 세트톱형 그룹영상회의의 경우 약 1200만원 이상이 소요됐으나 올 중반부터는 700만∼800만원대의 보급형 그룹영상회의도 출시될 것으로 기대된다. 또 올해에는 지금까지 별개 분야로 취급됐던 영상회의와 스트리밍 비디오 기술과의 접속이 상업화하기 시작할 것으로 전망된다. 무상으로 다운로드가 가능한 리얼 플레이어 등을 보유한 PC사용자가 사내 영상회의 장면을 웹을 통해 수신하게 될 경우 영상회의는 원격교육·사내방송 등 다양한 애플리케이션을 가능케 할 것으로 예상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