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 들어 우리나라에서도 작은 지진이 자주 발생하고 있다. 한반도는 이웃 일본과 달리 지층이 안정돼 있다고 알려져 있지만 긴 시간대를 놓고 보면 언제 재난이 닥칠지 아무도 모른다. 과학기술의 발달에도 불구하고 지진 예측은 아직까지 수수께끼로 남아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지금으로부터 20여년 전에 중국에서 자로 잰 듯한 지진 예보로 수많은 사람의 목숨을 건진 일이 있었다면 믿을 사람이 얼마나 될까.
정확히 지난 75년 2월 4일 저녁, 중국 요령성 북부 해성현 일대에 진도 7.3의 강진이 들이닥쳐 인구 조밀지역에 있는 건물의 90% 이상이 완전히 폐허가 돼버렸다. 그러나 사망자는 놀랍게도 1000명 남짓이었다.
바로 그 다음해인 76년 중국 당산에서 일어난 진도 7.8의 지진때 무려 25만명 이상의 사망자가 난 것에 비하면 거의 기적이나 다름없는 일이었다. 또 아직 우리 기억에도 생생한 95년의 일본 고베 대지진 때에도 진도가 7.1이었는데 사망자는 6400명이 넘었다.
해성현 지진이 저녁 7시 30분경에 일어났음에도 불구하고(취사 준비 때문에 화재가 일어난다) 사상자가 그처럼 적었던 것은, 불과 5시간 전에 주민들이 모든 건물에서 나와 대피하라는 명령을 받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중국 학자들은 어떻게 그처럼 정확한 예보를 할 수 있었을까. 해성현 지진의 정확한 예보는 그때로부터 약 10년 전인 지난 66년에 일어난 중국 형태 지방의 지진이 계기가 됐다. 당시 사망자가 9만명에 달하자 중국 총리 주은래는 특별지시를 내려 과학자들에게 지진예보 연구를 하도록 했다.
과거의 지진 기록들을 토대로 지층의 운동 추이를 면밀히 연구한 학자들은 요령성 일대에 10년 안에 대지진이 일어날 것이라는 장기예보를 70년에 처음 발표했다. 그뒤 3년 정도 잠잠하던 지층은 74년 중반부터 활발한 수직·수평 이동을 시작했고 요령성 일대 지각 전체가 천천히 북서쪽으로 밀린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지진대책국은 다시 2년 내에 지진이 닥칠 것이라는 중기예보로 전환했다.
74년 말까지 작은 지진이 빈발하자 마침내 75년 1월, 지진예보는 「6개월 안에 진도 6 지진 발생」이라는 단기예보로 바뀌었다. 요령성 행정부는 비상체제로 들어갔고 야외에 임시 대피소와 병원 등이 건설됐다. 구호를 위한 비상요원들도 조직됐다.
다시 3주일이 지나자 눈에 띄게 불길한 조짐들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맑던 샘이 흙탕물로 변하고 펌프로 퍼 올리던 우물이 저절로 분출했으며 유정의 석유 유출량이 갑자기 증가했다. 지하 암석의 압력증가 때문이었다.
더 심상치 않은 것은 동물들의 행동. 돼지와 소들이 우리에서 뛰쳐나오는가 하면 땅 속에서 겨울잠을 자던 뱀들이 기어나왔다가 눈 속에서 얼어죽었다. 또 새들은 발톱으로 알을 쥔 채 큰 새장 안을 계속 날아다니고 쥐들도 새끼를 물고 우와좌왕했다.
2월 3일 오후부터 초기 미진이 시작됐다. 지진은 밤새 계속돼 이튿날 아침에는 진도가 4.8에 달할 만큼 커지더니 오후 1시 30분쯤 갑자기 모든 것이 고요해졌다. 미진도 멈추고 수주일 만에 처음으로 지진계의 바늘이 미동조차 하지 않았다. 그러나 지진대책국은 「폭풍 전의 고요」라고 판단하고 2시에 즉각 대피령을 발령했다. 지진은 그때로부터 정확히 5시간 조금 뒤에 찾아왔다.
그로부터 1년 뒤에 발생한 당산 지진이 엄청난 피해를 낸 것은 그 지역에 몇년 동안 가뭄이 계속되다가 지진발생 전에 수주간 폭우가 내려 여러가지 지구물리학적 측정치를 정확하게 구할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지진예보에 필요한 지각의 미세한 이동과 희귀 가스인 라돈의 함량 등을 정확하게 측정할 수 없었던 것이다.
<박상준·과학해설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