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이 보인다> 천문학자 나일성 교수

 지난 96년 세종대왕 탄신 600주년을 기념해 「세종」이라는 이름을 붙인 소행성이 탄생한 데 이어 이달 초 천문학자인 나일성 연세대 명예교수(66)의 이름을 딴 소행성이 뒤를 이어 화제가 되고 있다.

 국제천문연맹(IAU)에서 소행성과 행성 관련 업무를 담당하는 제20분과위원회는 최근 일본 아마추어 천체관측가인 와타나베 가쓰오씨가 지난 95년 8월 21일 삿포로 과학관에서 발견한 소행성을 나 교수의 이름을 따 「(8895)Nha-1995 QN」이라고 부르기로 했다고 밝혔다.

 제20분과위는 또 나 교수가 사재를 털어 오는 6월 경북 예천에 건립하는 「나일성 박물관」의 개관을 기념하고 그가 그동안 천문학 분야에서 쌓은 업적을 높이 평가해 이같이 결정했다고 설명했다. 이로써 한국인 이름이 붙은 소행성은 지난 93년 후루카와 기이치로 도쿄대 명예교수가 발견해 일본에 천문학을 전수한 백제인 관륵의 이름을 딴 「칸로쿠(KANLOKU)」와 지난 96년 와타나베씨가 발견한 「세종(SEJONG)」에 이어 이번이 세번째다. 그러나 우리 나라 생존자의 이름을 딴 소행성은 이번이 처음이다.

 지난해 연세대에서 정년 퇴임한 나일성 교수는 지난 74년부터 모교인 연세대 천문학과 교수로 재직하면서 두 개의 별이 마치 쌍둥이처럼 붙어 있는 이른바 쌍성의 관측과 한국을 비롯한 고대 동양 천문학사 연구에 많은 업적을 쌓은 주인공. 생존 한국인으로는 처음으로 자기 이름을 딴 소행성을 갖게 된 나 교수는 스스로 지은 호가 「별똥」인 만큼 하늘과 별에 대한 애착이 남다르다. 별과 함께 한평생을 보낸 그는 지난해 정년퇴임 뒤 요즘에는 경북 예천에서 오는 6월 초 개관 예정인 자신의 개인 천문박물관에 모든 정성을 쏟고 있다.

 『우리나라에도 천문박물관 하나쯤은 있어야 된다』는 평소 신념을 실천하기 위해 막상 삽을 들기는 했지만 박물관 건립에 따른 막대한 비용을 감당하기가 몹시도 버거웠다고 나 교수는 설명한다.

 6월이면 우리 나라도 나 교수가 사재를 털어 천신만고 끝에 마련한 「나일성박물관」 때문에 천문박물관이 없는 나라라는 오명을 씻게 된다. 국내 최초의 민간 천문박물관이기도 한 이곳에는 그가 지금까지 몇십년 동안 틈틈이 수집한 각종 동서양 천문 관련 자료들이 전시될 예정이다.

 세종대왕이 발명한 측우기 같은 우리 고대 천문·기상 관측기구의 모조품은 물론이고 고구려 고분과 최근 공개된 일본 기토라 고분에서 나온 별자리 그림의 사진에 이르기까지 천문 자료 전시장을 만드는 것이 노 천문학자의 마지막 열정이다. 국제천문연맹(IAU)이 최근 일본인이 발견한 소행성에 그의 이름이 붙이면서 그 업적 중의 하나로 「나일성박물관」을 들고 있는 것도 이런 열정을 높이 샀기 때문이다.

 그는 후진성을 면치 못하고 있던 한국 천문학을 국제수준으로 끌어올린 1세대로 평가받고 있다. 나 교수는 74년 미국에서 활동하다 모교인 연세대 교수로 돌아오면서 관측천문학을 도입했다. 국내에서 실제 별을 관측한 자료를 통해 논문이 나오기 시작한 것은 나 교수에서 비롯된다는 설명이다. 당시까지 국내에서는 관측장비가 거의 없었기 때문에 실제 별을 관측하기란 불가능했다. 그런데 나 교수는 귀국하자마자 연세대에서 16인치짜리 망원경을 제작해 별을 직접 관측하기 시작했다.

 그의 업적은 한국과 동양 고대 천문학사 연구에서 더욱 빛을 발했다. 삼국사기나 삼국유사, 고려사, 조선왕조실록 등과 같은 우리나라 역사서에 등장하고 있는 천문관측 기록을 주시한 것도 바로 그였다. 역사학자들은 「낮인데도 금성이 나타났다」와 같은 천문관측 기록들이 정치사 변동 등과 아주 밀접하다는 사실만 알았을 뿐, 낮인데도 어떻게 금성이 출현할 수 있는가를 과학적으로 검증한 것은 나 교수였다.

 이런 연구를 통해 우리나라 고대 천문관측 기술이 세계 어느 나라와 비교해도 결코 뒤떨어지지 않았다는 것을 확인한 그는 천문학 관련 국제학술대회를 국내에서 개최하기도 했으며 이런 성과를 국제학술지에 영어로 활발히 발표하면서 우리 고대 천문학을 국제사회에 알리는 데 많은 기여를 했다.

<서기선기자 kssuh@e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