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의 도중 시범학교의 한 선생님이 「97년 한해 동안 개발에 참여했고 계속 운용했지만 지금까지도 제대로 사용하지 못하고 있다」니까 중앙정부 담당과장이 「그러면 97년에 검수가 잘못됐다」는 식으로 책임을 전가하는 듯한 말을 꺼내자 선생님이 정색을 하며 「사용은 하고 있는데 무상 유지보수 기간인 98년 한해 동안 문제점을 보완해주지 않아 그로 인해 제대로 사용하지 못하고 있다」고 말하고, 일부 학교에선 「시험이 두번만 입력하게 돼 있어 세번 이상 시험을 치르는 학교는 어떻게 하냐는 등 일선 학교의 자율적인 교과목 실정에 맞지 않는다」고 하자 담당과장은 「법대로 개발됐기 때문에 학교에서 잘못됐다」는 식이고, 유지보수에 관한 사항은 업체 대표로 하여금 답변케 하자 업체 사장은 「제대로 지원하지 못한 점을 사과하며 2차 사업부터는 제대로 된 프로그램으로 유지보수를 지원하겠다」는 말로 얼버무렸습니다.』
지난해 말 학교종합정보관리시스템 보급과 관련한 회의에 참석한 일선 교육청의 한 담당자가 회의 내용의 일부를 소개한 대목이다. 이는 현재 교육정보화사업이 어떻게 추진되고 있는가 하는 것을 보여주는 극히 부분적인 예에 불과하다. 교무업무지원시스템 구축 외에도 학내전산망 구축, 교단선진화, 방과후 컴퓨터교실 등 굵직굵직한 교육정보화사업 중 제대로 추진되고 있는 게 거의 없는 실정이다.
이에 대해 학계, 업계, 그리고 일선 교육정보화 담당자들은 「교육정보화사업이 이대로는 안된다」는 데 의견을 같이하고 있다.
우선 중앙정부의 교육정보화 정책이 문제다. 일선 관계자들은 정책결정과 추진과정이 교사·학생 등 실주체의 의견과 실상을 정확히 파악하지 못한 채 일방적으로 이루어진다는 점을 지적하고 있다. 이는 중앙정부에서조차 잦은 인력이동으로 전문성을 갖추지 못하고 있는데다, 물량공급 위주의 사업추진으로 가시적 효과를 거두려는 데 급급한 것이 주된 원인으로 꼽힌다.
설사 정책당국의 전문성이 취약하다면 학계와 업계 등에서 전문가를 찾아내 정책결정에 실질적으로 반영하고, 또 이에 앞서 교육정보화의 실제 수혜자이자 운영자인 일선 학교의 실태를 보다 정확하게 파악하는 데 중앙정부가 역점을 둬야 할 것이라는 지적이다.
특히 교육정보화사업 중 현재 빗나가고 있거나 빗나갈 우려가 있는 것들에 대해선 전면적인 점검과 새로운 대책강구가 시급한 상황이다. 현재 교육부 내 전담부서인 교육정보화국의 존폐문제가 더 뜨거운 감자로 대두돼 이를 기대하는 것 자체가 무리일 수 있으나, 교육정보화를 제대로 추진하려면 중앙정부 차원의 총체적 수술의지가 필수적이기 때문이다.
일례로 교무업무지원에서 문서유통시스템 구축, 학교행정정보시스템으로 이어지는 학교종합정보관리시스템의 구축이 현재와 같은 특정 플랫폼으로 교육정보화를 실현할 수 있는지를 정밀진단하고, 개선책을 마련하는 데 주저할 경우 더 큰 화를 초래할 수 있다.
일선 학교의 현주소도 정확하게 읽어 보완책을 강구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현재 대부분의 학교가 겪고 있는 공통적인 문제는 정보기술(IT) 시스템의 운영자 부재라는 점이다. 학생들에게 과외로 가르치는 방과후 컴퓨터교실도 전문지식을 갖춘 교사가 수업을 맡는 게 아니라 학교측과 계약을 맺은 사업자가 외부 교사를 선정해 운영함으로써 사업자 수준에 따라 갖가지 불협화음을 빚어내고 있다.
학내전산망과 직결되는 네트워크분야는 업계 관계자들조차도 일부는 이해하지 못할 정도로 전문적인 것으로, 일선 학교에선 거의 알지 못해 정상적인 학내전산망 구축이나 운영을 기대하기 곤란한 실정이다.
일선 학교의 정보화 전문가 부재는 결국 보급된 장비나 시스템을 활용할 수 없음을 의미하며, 실제로 낮잠을 자고 있는 정보화 장비가 적지 않은 게 현실이다. 최근 들어 중앙정부나 지자체에서 정보화 교육의 중요성을 인식하고 교육프로그램 개발과 운영에 주력하기 시작한 것은 그나마 다행스런 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이에 앞서 일각에선 일선 학교의 정보화 의지를 높이기 위해 교육정보화를 적극적으로 추진하는 학교장에게 가산점을 주는 정책을 펼칠 필요도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적어도 지금처럼 교육정보화를 추진하는 과정에서 일선 학교장이 감사를 받아 형식에 얽매인 규정위반 등으로 불이익을 당하는 사례는 없어져야 한다는 것이다.
결국 우리나라의 교육정보화는 현재 추진중인 사업에 대한 대수술과 함께 정부·학교·업계 등 모두가 의지를 갖고 정확한 방향을 찾아 추진할 때 결실을 기대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