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9년 2월15일, 미국 캘리포니아의 인터넷 벤처기업 프리PC. 이 회사는 매월 10시간 이상 인터넷 광고를 봐주면 컴팩의 「프로리니어」 PC와 인터넷 서비스를 공짜(free)로 제공하겠다고 공약했다. 이틀후 무려 50만명이 이 회사에 서비스 가입 신청서를 접수했다.
일주일 뒤, 뉴욕의 원스톱커뮤니케이션스. 이 회사는 직영 온라인쇼핑몰을 통해 매달 100달러의 물품을 구매해 주는 소비자들에게 애플 「아이맥」 컴퓨터를 공짜로, 200달러가 넘을 때는 인터넷접속비까지 거저주겠다고 제안했다. 발표가 있은 지 단 2시간만에 2500명의 신청자가 쇄도했다.
99년 3월31일, 또하나의 파격적 뉴스가 전세계에 타전됐다. 이날 뉴저지에서 개업식을 가진 벤처기업 디렉트웹(DirectWeb)은 자사 인터넷 서비스에 가입하면 셀러론 PC를 아예 공짜로 주겠다고 밝혔다. 조건은 단 한가지, 서비스 가입 의무기간인 1년을 채우면 된다는 것.
몇백만원씩 하는 PC가격에 부담을 느낄 수밖에 없는 개인 소비자 입장에서 보면 믿기지 않는 얘기다. 그러나 사실이다. 최신형 PC도 갖고 싶고 인터넷도 필요한 사람들에게는 꿈같은 얘기다. 인터넷접속 없이 PC만 사용해도 이득이다. 디렉트웹이 제시한 내역을 보면 월 19.95달러짜리 기본 인터넷서비스에 1년만 가입하면 1000달러 내외의 유명브랜드 셀러론PC를 그냥 준다. 1년간 서비스료는 고작해야 240달러도 안된다. 서비스 요금을 PC구입비로 셈한다해도 소비자 입장에서는 훨씬 유리하다.
문제는 기업의 입장이다. 예컨대 50원짜리 면도날을 팔면서 5000원짜리 면도기를 거저 주는 셈이다. 면도날 한개의 판매마진이 10원이라면 무려 500개를 팔아야만 면도기 비용을 벌충할 수 있는 것이다. 자선사업을 벌이거나 엄청난 재력을 갖고 초기 시장수요를 유발하기 위한 전략이라면 그래도 조금은 이해가 될 것이다. 대체 어떻게 해서 이런 마케팅이 가능할까. 그리고 소비자들은 과연 정말로 공짜혜택을 누리게 되는가.
결론부터 말하면 서비스회사 입장에서는 면도기 마케팅이론의 원조인 독일의 질레트사와 마찬가지로 결코 손해보는 비즈니스가 아니다. 디렉트웹의 경우 기본 서비스 외에 다양한 부가서비스들을 마련해 놓고 있다. 또한 순익 분기점을 성급하게 정하지 않고 3년 정도의 중장기로 정했다. 이런 사례들은 또한 비슷한 전략을 펼치는 이동전화 회사들의 그것과도 좋은 대조를 이루고 있다. 예컨대 국내 PCS 3사의 경우 단말기를 헐값으로 제공, 1년만에 500만명의 가입자를 확보했지만 내부적으로는 적자에 허덕이는 대표적인 사례다. 시장왜곡 때문에 결국은 정부가 나서서 이를 금지시키고 말았지만 그렇게 될 수밖에 없었던 궁극적인 원인은 상품으로서 PCS단말기와 PC의 쓰임새 차이에 있다. 즉 PCS는 전화서비스에 연결되지 않으면 50만원짜리 장난감으로 전락하고 말지만 PC는 인터넷에 연결되지 않더라도 얼마든지 독자적으로 활용할 수 있다는 것이다. 소비자 역시 전체적으로 보면 일거에 부담해야 할 비용을 분담하는 것일 뿐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다. 물론 PC를 인터넷에 연결하지 않고 사용하는 소비자들도 적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PC의 인터넷 의존도가 갈수록 심화되고 서비스가 다양화되는 추세를 감안한다면 결국 소비자들은 인터넷이 연결되지 않은 PC는 생각할 수 없게 된다는 것이다. PC를 공짜로 제공하는 기업들의 얘기를 들어보자.
『공짜 PC는 한점 거짓없는, 고객지향의 플레이다. PC제공조건으로 개인의 신상정보를 받지만, 그 정보를 절대 발설하지 않는다. 우리는 콘텐츠·PC·인터넷서비스·전자상거래를 타깃으로 하고 있다. 공짜PC는 네티즌들이 갖게 되는 패키지의 일부분이다. 3년 안에 100만 가입자를 확보하는 게 1차목표다.』-디렉트웹의 데니스 클라인 사장
『PC도 휴대폰처럼 일정한 계약을 맺으면 공짜로 사용할 수 있을 정도로 가격이 낮아졌다. 인터넷고객은 다년간 계약을 하면 1인당 1000달러 이상의 가치를 갖고 있기 때문에 PC를 무료로 나눠주는 것이 가능하다. 우리의 주수입원은 광고주에게 고객정보를 제공하는 대가로 받는 수수료다.』-프리PC의 빌 그로스 사장
인터넷서비스 가입과 함께 PC까지 공짜로 얻어 쓸 수 있게 된 데는 무엇보다도 가격이 크게 싸졌기 때문이다. 컴팩이 지난해 1000달러선을 깬 999달러짜리 PC를 내놓으면서 컴퓨터 가격파괴 경쟁에 불을 댕겼다. 급기야 올 들어선 299달러대의 초저가 제품들이 나오기 시작했다.
미국의 경우 인터넷 이용자가 늘고 PC보급률이 60%대(현재는 50%대)에 이르면 어떤 형태로든 PC산업의 재편이 불가피해질 것이란 전망이 나오고 있다. 가격파괴에 이어 컴팩이 공짜 PC 마케팅을 검토중이라고 밝힌 것과 관련 전문가들이 델컴퓨터·야후·아메리카온라인·휴렛패커드 등도 이 대열에 합류할 수 있다고 내다본 것도 이런 맥락에서다. 전문가들은 PC산업의 재편이 이를테면 기존의 유통구조나 고객마케팅 등에서 혁명적 변화가 일어나는 상황 등을 포함하는 것이라고 설명하고 있다.
아직까지 뚜렷한 윤곽이 드러난 것은 없지만 한국에서도 인터넷서비스 기반의 공짜PC의 등장과 PC산업의 재편 움직임은 여러 곳에서 감지되고 있다. 하나로통신의 경우 휴대폰 공짜 열풍이 수그러진 4월부터 전화·컴퓨터통신·초고속 인터넷 서비스를 개시했다. 이 회사의 가세는 앞으로 이동통신·데이터통신서비스 사업자들의 경쟁을 더욱 부추길 전망이다. 여기에 고급 공짜상품에 익숙해진 소비자들과 자구책을 찾으려는 PC회사들이 가세하게 되면 윤곽은 분명해지는 것이다. 자, 그렇다면 이제 우리도 기업과 소비자 모두 「공짜」에 투자해 볼 때가 되지 않았는가.
<온기홍기자 khohn@e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