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대한상공회의소가 실시한 「컴퓨터 활용능력 검정시험」에 14만여명이 응시했다. 올해 처음 시행하는 이 시험의 응시자가 많아야 5만명에 그칠 것이라는 주최측의 전망과는 달리 두배 이상 많은 사람이 몰린 것이다. 이는 IMF 이후 구조조정 과정에서 언제라도 조직에서 쫓겨날 수 있다는 위기감으로 일반 회사에까지 컴퓨터 관련 자격증 취득 바람이 거세게 불고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열기는 우리 사회가 과거 지연과 학벌 위주에서 능력 위주의 사회로 전환되는 과정에서 일어나는 것으로, 일단 바람직한 현상으로 평가받고 있다.
그러나 컴퓨터 자격시험이 과연 사회에서 원하는 혹은 신지식인으로 양성하기 위해 실용적인 기능을 제대로 수행하고 있는지에 대해서는 회의적인 반응도 적지 않다. 주요 정보통신 관련 시험들의 출제경향이 지나치게 이론에 치우쳐 실제 현장에서 사용하지도 않는 혹은 사용할 필요도 없는 내용이 문제화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다 보니 자격증을 따고도 실무에서 그 능력을 제대로 발휘하지 못하는 경우가 빈번하고, 이로 인해 일부 기업에서는 신입사원을 뽑을 때 이러한 자격증을 전혀 인정해주지 않는 사례도 있다.
서울 강남에 있는 K소프트웨어회사는 정보처리 자격증이 있다는 말만 믿고 신입사원을 뽑았으나 실무능력이 떨어져 3개월간 재교육을 시켜 업무에 투입했다고 호소하고 있다.
이와 함께 비슷한 종류의 컴퓨터 관련 자격시험이 난립되어 있는 것도 문제다. 중앙컴퓨터 학원에서 올해로 10년째 컴퓨터 강사로 일하고 있는 J씨(38)는 우리나라 컴퓨터 자격시험의 가장 큰 문제점으로 정보처리·사무자동화·PC활용능력평가(PCT)·정보기술자격인증(ITQ)·워드프로세서 검정시험 등의 필기시험 내용이 거의 비슷하다는 점을 지적하고 있다. 이는 곧 자격증의 가치나 신뢰성에 치명적인 손해를 입힐 수 있다. 즉, 시험의 내용이 유사하면 수험생은 물론 기업에서도 각각의 자격증에 대한 특성을 파악하기 어려워 그 가치를 인정해주기 힘들다는 설명이다.
이밖에 일부 자격증 시험은 틀린 문제까지 출제되는 등 적지 않은 문제를 드러내고 있다. 예를 들어 상공회의소가 최근 실시한 컴퓨터 활용능력 검정시험(2급)의 경우 총 20개의 문항 중에 정답이 없거나 2개의 정답이 나오는 등 명백하게 잘못 출제된 것만도 3∼5개 문항에 달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처럼 컴퓨터 자격시험에 대해 비판적인 사람들은 또 사무자동화 분야의 자격증 인구는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는 데 비해 이들을 제대로 교육하는 대학원이나 전문 교육기관이 없기 때문이라고 지적하고 있다.
이들은 특히 국내에 컴퓨터 언어나 데이터베이스를 전공한 학자는 많아도 자격증 수요가 가장 많은 워드프로세서·표 계산·프레젠테이션 등의 분야를 체계적으로 공부한 전문인력은 턱없이 부족하다는 점을 들고 있다.
몇몇 대학 교수들이 10년 전에 배운 낡은 컴퓨터 언어 및 데이터베이스 지식을 바탕으로 워드프로세서와 표 계산 등 사무자동화와 관련된 문제를 출제하고 있는 것도 따지고 보면 이러한 전문인력의 극심한 불균형 때문에 비롯됐다는 지적이다.
이에 대해 그래도 이러한 컴퓨터 관련 자격시험이 국민의 정보마인드 향상에 적지 않은 기여를 하고 있다는 의견도 있다.
그 이유로 중앙교육진흥연구소 이상돈 소장은 『최근 응시인원이 가장 많은 워드프로세서와 표 계산 검정시험은 사실 10여년 전까지만 해도 상고에 다니는 학생이라면 누구나 한번쯤 응시했던 경험이 있는 주산이나 부기시험과 같은 것』이라며 『이번 대한상공회의소의 「컴퓨터 활용능력 검정시험」에 14만여명이 몰린 것은 그만큼 국민의 정보욕구가 높아진 결과』라고 설명했다.
그는 또 그동안 국가기관만 시행하던 자격시험 사업이 최근 민간에 개방되면서 당분간 비슷한 내용의 컴퓨터 자격시험이 난립하는 등 혼란을 겪을 수도 있겠지만 중·장기적으로 보면 수험생들로부터 관심을 끌지 못하는 시험은 어쩔 수 없이 도태될 수밖에 없기 때문에 시험의 질적인 수준은 앞으로 꾸준히 상승하는 효과가 있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서기선 기자 kssuh@e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