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차대전 당시, 프랑스 육군항공대 소속 앙투안이라는 조종사는 중동 사막지대에서 정찰임무를 수행하다가 이상한 것을 보았다. 일출 때나 일몰 무렵이면 조그마한 언덕들이 기하학적인 모양의 복잡한 그림자를 드리우곤 했는데 그것은 수평비행을 하고 있을 때만 보였던 것이다.
원래 가톨릭 사제였던 그는 그 이상한 흔적이 고대 유적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고 그래서 전쟁이 끝난 뒤에 다시 그곳을 찾았다. 그리하여 마침내 기원전 10세기경에 번성했던 옛 페니키아의 항구도시 티레를 발굴했다.
항공고고학이란 이처럼 지상에서는 보이지 않는 옛 건축물의 흔적을 고공에서 발견하는 것이다. 인간이 한번 토건공사를 한 곳이라면 그 자리에는 나중에 공사를 여러번 다시 하거나 평평하게 밀어버리더라도 좀처럼 지워지지 않는 흔적이 남는다. 특히 도랑이나 기둥 구멍에는 오랜 세월에 걸쳐 채워진 부드러운 흙이 다른 곳보다 더 많은 습기를 머금어서 초목이 상대적으로 더 잘 자라기 때문에 하늘에서 보면 뚜렷하게 구별이 된다.
반대로 석벽이나 건축물의 기초였던 부분은 식물이 잘 자라지 않아서 역시 높은 곳에서 보면 눈에 뜨인다. 이밖에도 덮였던 토양이 다시 깎이면서 옛 건축물의 석재 파편들이 서서히 나타나는 곳도 있고, 또 농사를 짓던 자리도 여러 가지 흔적이 남게 된다.
이러한 흔적들은 비행기에서 어느 각도에서나 언제든지 보이는 것이 아니다. 계절에 따라, 하루 중의 시간대에 따라, 습도에 따라, 그리고 관찰자의 위치에 따라서도 달라진다. 어느 항공고고학자는 이런 과정을 「숨바꼭질 같다」고 표현하기도 했다. 게다가 평소에는 전혀 드러나지 않다가 유별나게 심한 가뭄이 닥쳤을 때에만 보이는 흔적도 있다.
그런가 하면 어떤 농부는 어느 해에 돈이 없어서 화학비료를 뿌리지 않았는데 그 덕분에 밭에서 로마 시대의 대규모 병영터가 발견된 적도 있다. 화학비료는 이러한 흔적을 지워버리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또 안개 속에서 적외선 사진을 찍으면 유적의 흔적이 땅 위에 백색 또는 청색의 선명한 무늬로 나타나는 경우도 있다.
항공고고학은 특히 유럽에서 괄목할 만한 성과를 거뒀다. 이 방법으로 발견된 유적이 자그마치 몇만 군데가 넘는다. 너무나도 많은 유적이 새로 발견되어서 오히려 고고학자들이 다 감당하지 못할 정도다.
이렇게 발견된 유적들 가운데는 고고학자들이 오랫동안 찾아 헤매던 것도 많다. 줄리어스 시저가 남긴 기록에서 언급되는 로마시대 고올 귀족의 광대한 농장도 항공고고학으로 발견되었고 영국의 정복왕 윌리엄 1세 시대의 토지대장에 올라 있던 12∼13세기경의 촌락들도 마찬가지 방법으로 비로소 모습을 드러냈다. 또 밀림으로 뒤덮여 있어 사람이 살지 않았던 지역이라고 생각했던 곳이 사실은 8세기 무렵에 존재했던 대규모 농장지대로 밝혀지기도 했다.
항공고고학의 역사는 어느덧 80년을 헤아리게 되었는데 우주시대가 개막된 뒤 또한번 비약적인 발전을 이루었다. 인공위성이나 우주 왕복선에서도 관찰하게 된 것이다. 사실 우주선은 비행기보다 더 넓은 지역을 한꺼번에 관찰할 수 있기 때문에 인공적인 흔적보다 자연적인 지형을 살피는 데 유리하다. 예를 들어 사막지대에서 오랜 옛날 강물이 흘렀던 자리 등을 찾을 수 있다. 또 고대도시의 흔적을 찾는 데도 적잖은 기여를 하고 있다.
그러나 항공고고학의 앞날이 밝은 것만은 아니다. 인구의 증가로 도시 지역이 계속 확장되고 대규모 노천 탄광의 채굴이 진행되면서 고대의 흔적이 사라지는 경우가 비일비재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런 우려를 줄이기 위해 항공고고학자들은 지방자치단체의 도시계획 당국과 유기적인 연계를 맺기도 한다.
<박상준·과학해설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