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우리가 외환위기로 인해 IMF의 관리체제에 들어가자 한동안 그 원인규명에 분분한 적이 있었다. 최고 정책결정자의 판단 잘못에서부터 방만한 기업경영, 범부의 지나친 소비성향에 이르기까지 거의 모든 것이 거침없이 지적됐다.
그 가운데 가장 큰 논란이 됐던 것은 위정자와 관료의 상황인식 문제였다. 청문회에 불려나온 경제부총리가 환란을 초래한 근본적인 원인은 한국경제의 취약한 체질에 있었지 정책 담당자들의 판단 잘못만은 아니라고 목이 쉬도록 강변했다.
그런데 그 직후 재경원의 한 고위관리가 반도체 수출이 너무 잘돼 한국경제가 장기적으로 호황을 누릴 것으로 보고 환란이 올지를 예측하지 못했다고 자백해 주의를 끌었다. 극심한 어려움과 함께 분노에 치를 떨었던 국민은 무엇이라도 희생양을 삼아야 직성이 풀릴 듯한 상황이었고 그같은 발언은 마치 반도체가 환란을 초래한 주범과 같은 착각을 들게 했다.
최근 정보산업 경기가 회복되면서 국산 반도체 수출이 늘자 때아닌 반도체산업 편중 시비가 일고 있다. 지난 4월 20일까지 반도체 수출은 55억달러로서 전체 수출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17.4%로 급증했다는 것이다. 비교적 수출 규모가 큰 자동차가 7.2%밖에 안되니 반도체 수출이 많긴 많은 셈이다. 그래서 일부에서긴 하지만 한국 경제가 반도체의 수출 호조로 인해 경제 전반이 호황인 것과 같은 착시를 일으킬지도 모른다고 우려한다.
그렇지만 우리의 반도체산업은 일본과 비교하면 보잘것 없다. 일본의 반도체 수출규모는 우리의 3배나 된다. 또 현대전자와 LG반도체의 통합으로 인해 내년에는 대만이 우리를 앞지를 것이라고 외국의 시장조사 회사들은 분석하고 있다. 반도체 수출 비중이 커지는 것은 IMF로 인해 다른 산업 수출이 회복되지 않은 데 그 원인이 있겠지만 근본적으로는 정보사회가 급진전되는 당연한 추세를 반영한 것일 뿐이다. 그것을 두고 반도체 편중론을 편다는 것은 균형감각을 유지하고 있다고 보기 어렵다.
침대보다 몸이 크다고 해서 팔다리를 자를 수는 없는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