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보통신의 남북교류는 통일운동의 시작이자 완성이다.」
통신이 갖는 엄청난 파급효과에 대한 설명이다. 동서독의 통일과정이나 소련식 사회주의 체제 붕괴과정에도 통신교류가 큰 역할을 했다.
이러한 파괴력 때문에 통신에 관한 한 북한은 그동안 정치적 목적에 의한 최소한의 접근만을 허용해 왔다. 남한 역시 내부의 여러 정치적인 이해관계 때문에 분단 50년 동안 접근방식이나 논의 자체에 많은 제약이 있었다.
그러나 세계는 바야흐로 새로운 밀레니엄을 맞을 준비에 바쁘고, 인터넷·위성통신 등 첨단기술은 구석구석을 빛의 속도로 누비며 광속(光速)의 지구촌 시대를 열어가고 있다. 남북 정보통신 교류에 대한 근본적인 인식전환과 접근방식이 필요하게 된 것도 바로 이 때문이다.
정보통신 교류가 가져다 줄 수 있는 최고의 성과로는 민족동질성의 빠른 회복과 물리적 분단의 장벽을 뛰어넘는 것. 이는 정치협상이나 경협방식의 기존 교류가 오히려 체제의 이질성만을 부각시켰던 것에 비해 정보통신 분야 교류는 가장 비정치적이고 목적없이 이뤄질 수 있다는 점에서 가능한 것이다. 이런 점에서 최근 강인덕 통일부 장관이 무궁화위성 등을 이용한 정보통신 분야 남북교류를 적극 추진하겠다고 나선 것은 아직 구체적인 후속조치가 나오지는 않았지만 통일문제에 대한 새로운 접근방법과 함께 정보통신 교류의 중요성을 부각시킨 정부의 첫 공식입장이라는 점에서 획기적인 사건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남북간 정보통신 교류 분야는 크게 전화·방송·컴퓨터·인터넷 등 네 가지로 나눠볼 수 있다. 이 가운데 가장 기본적인 시설인 전화의 경우 현재 남북간에는 43회선이 연결돼 있지만 금강산 관광사업용 6회선을 제외하면 대부분 정치적 목적으로 설치됐다는 한계를 갖고 있다. 나머지 세 분야 역시 컴퓨터를 제외하고는 현재까지 거의 논의조차 이루어지지 않고 있는 실정이다. 특히 방송·컴퓨터·인터넷 등과 같은 첨단 분야의 경우에는 남북의 적용기술이 서로 달라 교류를 더욱 어렵게 하고 있다.
민간차원 교류에 대한 가능성을 보여준 것이 지난 94년부터 96년까지 세 차례 중국 옌볜에서 개최됐던 「코리안 정보처리 국제학술대회」다. 남측의 국어정보학회와 북측의 조선과학기술총연맹 그리고 중간자격인 중국 조선족자치주 과학기술협회 등이 주축이 된 이 학술대회에서는 민족동질성 회복의 중심점이라 할 수 있는 한글(조선글) 정보처리에 대한 몇 가지 표준 합의안을 도출해내는 역사적 성과를 거뒀다.
그러나 남북교류의 첫 발자국이라 할 수 있는 이 성과를 두고 일부 학계와 보수언론 사이에서 「남측의 양보에 의한 합의안」이라는 비판이 제기된 데 이어 「황장엽 망명사건」이 터지자 남북관계는 급속하게 경색됐고 그 후유증으로 학술대회는 더이상 열리지 못했다. 민간 차원의 정보통신 교류는 이 학술대회가 처음이자 끝이 돼버린 것이다.
당시 학술대회 남측 단장으로 참가했던 진용옥 경희대 교수는 『정보통신은 가장 접근이 용이하며 그 가운데서도 기본이 되는 분야가 한글 정보처리』라며 『처음엔 기초적인 정보의 제공조차 꺼리던 북측 학자들도 자주 만나 대화하면서 신뢰가 쌓이자 정보제공은 물론 통일안까지 도출해낼 수 있었다』고 민간교류의 지속과 확대 가능성을 확인해 줬다.
한편 강인덕 장관의 발표 이후 관련 부처의 정보통신 분야 교류에 대한 시각은 매우 적극적으로 바뀌고 있다. 통일부의 교류협력국 황하수 국장은 『대북포용정책의 일환으로서 민간교류의 활성화를 바라보는 정부 시각은 이미 전향적으로 바뀌었다』고 설명했다. 그는 또 『최근 민주노총의 남북노동자 축구경기 개최건처럼 민간의 대북접촉(교류) 요구가 있으면 가급적 승인할 것이며 관련 정보를 제공하는 데에도 최선을 다할 것』이라고 밝혔다. 기술정책 분야의 주무부처인 정보통신부 기획관리실의 한 관계자도 『현재는 남북교류정책을 담당하는 전담인력이 없어 통일부의 협조의뢰가 있을 때마다 각 국·실에서 업무를 지원해주는 정도』라며 『남북교류를 전담할 통합기구와 전담인력이 절실하다』는 적극적인 입장을 보이고 있다.
그러나 정부의 지원에서 선결해야 할 과제가 앞서 언급한 남북의 시각차이다. 통일부의 한 관계자는 북측의 시각에 대해 아무리 취지가 좋고 비정치적인 분야라 하더라도 남측 정부가 나서는 기미를 보이면 북측은 무조건 빠져버리는 현실상황을 지적했다. 남측 시각에 대해서도 학계의 한 관계자는 『잘못된 정보에 의한 남측의 북측에 대한 우월적 자세의 오류』를 가장 큰 걸림돌로 보았다. 물론 이같은 시각차에 대해 일부 인사들은 『비정치적·비목적의 정보통신 분야 교류 확대가 그만큼 절실한 것이 아니겠느냐』는 견해를 피력하고 있기는 하다.
감상적이거나 체제우월적 선입견을 버리고 기술적·현실적 조건들에 대한 진지한 연구가 선행돼야 할 시점이다. 민간 차원의 학술교류가 우선 고려돼야 한다는 게 전문가들의 대체적인 의견이다. 이를 바탕으로 통일시대에 대비한 큰 밑그림을 그려야 하며 정부도 이같은 환경의 조성에 정책의 방향을 맞춰야 할 것이다.
<김상범기자 sbkim@e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