콘덴서 생산업체들과 이를 납품받는 세트업체들이 5, 6월 마감인 올해 2차 부품공급가 협상에 돌입해 그 어느때보다도 치열한 신경전을 펼치고 있다.
콘덴서 공급가격 협상은 매년 두차례에 걸쳐 진행돼 왔다. 해마다 밀고 당기기가 이어졌다. 그러나 올해는 그 양상이 사뭇 다르다. 비장감마저 감도는 상황이다.
지난해 IMF 체제를 거치면서 콘덴서업체들은 대부분 상당한 경영위기에 봉착했다. IMF 이전보다 공급가가 최대 30%까지 떨어졌기 때문이다. 몇개 업체가 사업을 포기할 것이라는 흉흉한 소문까지 나돌았다. 웬만한 규모의 업체들도 채산성 확보에 골머리를 앓았다. 수출로 활로를 뚫었다고 하지만 그마저도 여의치 못했다. 국제 가격 역시 대만·중국업체들의 저가공세로 거의 바닥까지 내려간 상태다.
콘덴서업체들은 이제 더이상 밀릴 수 없다는 입장이다. 생산설비를 쉬게 하느니 이익은 없지만 하나라도 더 생산하자는 것이 지난해 콘덴서업체들의 생각이었다. 채산성 확보는 생각할 겨를이 없다. 생존이 최대 과제였다.
그러나 올해는 더이상 버틸 여력이 없는 상황이다. 가격협상에 임하는 업체들의 각오가 남다를 수밖에 없는 것은 이같은 이유에서다. 공급가가 또 인하될 경우 이를 감당할 수 있는 업체가 몇 개나 되겠느냐는 것이 업계 관계자들의 주장이다.
업계 일각에서는 이를 반영하듯 공급가가 더이상 내려가지 않을 것이라는 희망섞인 전망이 대두되고 있다. 가격이 떨어질대로 떨어졌다는 것이 이들의 주장이다. 여기에는 대만 콘덴서업계의 동정도 한몫하고 있다.
200여개의 대만업체들 가운데 60%가 지난해 도산한 것으로 알려졌다. 가격인하를 주도한 당사자들이 이를 소화하지 못해 사업을 포기한 것이다. 업계의 한 관계자는 『국내에서 이러한 상황이 발생하지 말라는 법이 없다』며 『몇몇 업체만 남을 경우 당장은 아니더라도 세트업체들이 갖고 있는 가격협상 주도권이 콘덴서업체들에 넘어갈 수도 있을 것』이라고 분석했다. 세트업체들이 콘덴서업계의 어려운 상황을 잘 알고 있다는 것도 더이상의 가격인하가 없을 것이라는 예측을 뒷받침하고 있다.
반면 이번에도 가격인하가 단행될 것이라는 예측도 나왔다. 세트업체들의 제품가격 인하경쟁이 너무나 치열하게 전개되고 있다는 것이 배후논리다. 특히 전세계 가전업체들과 경쟁이 더욱 뜨거워지는 상황에서 부품가를 그대로 유지하지 않을 것이라는 분석이다.
이와 함께 아직까지 콘덴서업체의 수가 너무 많다는 것도 추가인하 전망을 낳고 있다. 수요 공급의 원칙에 따라 공급이 많을 경우 가격인하는 당연하다는 것이다.
현재 아무것도 결정된 것은 없다. 또 가격협상은 세트업체별로 상황이 달라 일률적이지도 않다. 한 세트업체의 경우 가격인하를 요구하지 않을 것이라는 소문이 흘러나오고 있다. 일단 가격인하를 추진하고 협상과정에서 「선심 쓰는 척」 인하를 취소하는 세트업체도 있다는 소식이다. 또 다른 세트업체는 이번에도 가격을 인하하겠다고 통보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지난해처럼 두 자릿수는 아니라는 얘기도 들린다.
현재 콘덴서업체들과 세트업체들은 서로 눈치를 보고 있는 상황이다. 협상시한을 길게는 한달에서 짧게는 1주일을 남겨놓은 상황에서 치열한 줄다리기가 벌어지고 있다. 콘덴서업계와 세트업체들에 피곤한 5, 6월임에 틀림없다.
<이일주기자 forextra@e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