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전문가들이 관행으로 인정돼온 리버스엔지니어링(RE)에 대한 명문 규정을 둘 필요가 있다는 의견을 내놓는 데는 EU지침서(EU Directives)나 미국법원의 허용 판례 등을 근거로 삼고 있다. EU의 입법현황을 살펴보기로 하자.
컴퓨터프로그램 보호와 관련하여 지난 91년 제정된 EU지침서의 경우 제5조 제1항의 프로그램코드의 복제와 번역에 관한 부문에서 RE의 허용을 볼 수 있다. 여기에는 물론 독립 프로그램간의 호환성을 위해 필요한 경우 사용권한이 있거나 허가받은 자에 의해서, 호환 정보를 입수할 수 없거나(보충성), 호환을 위해 필요한 범위내에서 부분적으로 이루어진다는 요건이 전제돼야 한다.
또 제5조 제2항은 디컴파일과정(Decompilation)을 통해 얻어진 정보는 독립 프로그램과의 호환성을 위한 목적 이외의 용도로 사용되어서는 안되고, 독자 프로그램과의 호환성을 이룩하기 위해 필요한 경우를 제외하고 다른 사람에게 주어서도 안되며, 실질적으로 표현이 유사한 프로그램의 개발·제조·시판에 사용하거나 기타 저작권을 침해하는 다른 목적에 사용되어서는 안되도록 하고 있다.
미국은 지난 98년 RE를 일정 범위 내에서 허용하도록 저작권법을 개정하기 전에도 판례를 통해 이를 허용해 왔다. 98년 10월 미국 정부는 이른바 「디지털 천년 저작권법(Digital Millennium Copyright Act)」이라는 이름으로 21세기 디지털시대에 대비, 저작권법 등을 대대적으로 정비하는 조치를 취했다. 이 법에서 미국 정부는 정보보호시스템(기술적 보호조치)의 무력화에 관해 금지규정을 두고 프로그램의 호환성확보를 위해 필요한 경우 일정한 범위 내에서 RE를 허용하고 있다.
이처럼 미국 정부는 프로그램의 호환성을 위해 저작권법에 대한 예외규정을 둠으로써 RE를 허용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또한 미국은 연방순회공소법원의 판결에서 RE는 공정이용에 해당되어 위법이 아니라고 판결한 바 있고, 대법원도 이를 제한적인 요건을 전제로 합법으로 인정하고 있다. 마이크로소프트와 같은 기업들이 오래전부터 법원 판례에 따라 명시적으로 허용된 제한적인 범위에서 RE를 허용해 왔다.
미국에서 판례가 적용된 사례를 보면, 1992년의 유명한 아콜레이드(Accolade)사건의 경우 『호환성이 있는 프로그램을 개발하기 위해 타사 프로그램의 설계상이나 기능에 관한 개념을 이해할 필요가 있고 「다른 대안이 없을 때」에는 복제행위를 수반하는 RE를 행하더라도 저작권법 위반이 아니다』라는 판결이 나왔다. 아타리(Atari)사건(1992년)에서는 『프로그램의 복제를 부정한 수단으로 입수하지 않았고 프로그램을 이해하기 위하여 행한 RE면 공정한 사용이라고 볼 수 있을 것』이라는 판결이 나오기도 했다.
<온기홍기자 khohn@e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