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요기획-뉴스&밀레니엄> 한국의 RE 사례

 국내에서 음성적으로 진행된 리버스엔지니어링(RE) 사례는 여러 산업분야에 걸쳐 매우 많다. 특히 지난 10년의 짧은 기간에 급속한 기술발전을 달성해오는 동안 RE는 절대적으로 필요했다. 지금도 세계적인 제품과 기술을 연구, 개발하는 현장에서 RE는 끊임없이 지속되고 있다. RE는 정보기술 분야에서 가장 많이 일어나고 있는데 세계적으로 가장 대표적인 사례는 81년 IBM이 발표한 최초의 16비트 PC 「PC 5150」을 대상으로 한 컴팩·델컴퓨터의 IBM 호환 PC다.

 국내에서 RE 도입은 산업화와 함께 본격 시작됐다고 볼 수 있다. 칩과 회로가 있는 하드웨어에서부터 두뇌부분인 소프트웨어(SW)에까지 RE가 뻗치지 않는 곳은 없었다.

 재미있는 사실 하나는 최초의 국산 컴퓨터로 알려진 「세종 1호」도 RE를 통해 탄생했다는 점. 67년 「IBM 1401」이 처음 우리나라에 도입된 이후 국산 컴퓨터를 제작하고자 하는 노력이 여러 곳에서 경주됐는데 그 가운데 하나가 바로 한국과학기술연구소(KIST)였다.

 KIST 연구원이던 천유식 박사(ETRI 초빙연구원)가 주축이 된 국산 컴퓨터개발팀은 국내에 하드웨어 기술이나 노하우가 전혀 없어 당시 세계적으로 인기가 높았던 데이터제너럴(DG)사의 미니컴퓨터 「노바01」을 일본에서 구입해 72년부터 분석에 들어갔다.

 1년여 만에 완료된 이 분석결과가 바로 전자교환기 제어컴퓨터로 사용된 국산 1호 컴퓨터 「세종1호」다. 천유식 박사는 『원래 KIST는 세종1호를 개발할 계획이 없었으며 원안 대로라면 DG의 노바01이 전자교환기 제어용 컴퓨터가 됐어야 했다』고 술회했다. 천 박사팀은 교환기제어용 컴퓨터를 노바01로 정하고 거기에 맞는 교환SW를 개발하는 일을 맡았는데 막상 SW를 개발하자 노바01과 호환성이 없어 중도 폐기될 상황에 처하고 말았다.

 결국은 반대로 SW를 지원할 수 있는 하드웨어를 자체 개발하자는 뚝심이 발동해 제작하게 된 것이 세종1호였다는 것이다.

 세종1호는 노바01 사양과 기능을 그대로 복제한 일종의 호환 컴퓨터지만 설계는 완전히 독자적인 것이었다. 당시 미국 인텔사가 개발해 화제가 된 1KB짜리 D램을 메모리로 사용해 처리속도를 크게 개선한 것은 「세종1호」가 건져낸 쾌거였다.

 지난 80년 서울 청계천 골방에서 시작한 삼보컴퓨터가 81년 개발한 국내 최초의 PC 「SE­8001」도 외국 PC를 들여와 거의 복제에 가까운 RE기법을 활용해 만든 제품이다. 「SE­8001」은 본체와 안테나, 채널까지 달린 TV수상기를 모니터 대용으로 합체해 만들었다. 「SE­8001」은 같은 해 11월 캐나다에 국내 최초로 수출되기 시작했다. 이 회사는 82년에는 국내 최초로 8비트 애플호환기 「TRIGEM 20」도 만들었다.

 SW분야에서도 수많은 RE를 행해왔는데 대부분은 도용이라는 오명을 쓰고 법적으로 제재를 받아 폐기되는 불운을 겪었다.

<온기홍기자 khohn@e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