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전 유통체계 "새바람"

 최근들어 가전 유통체계에 일대 변화의 바람이 불고 있다. 그 동안 가전업체의 전속 대리점 위주로 이뤄져오던 가전제품 유통방식이 최근 들어선 양판점과 창고형 할인점, 백화점 등 혼매양판이 강세를 보이는 것으로 점차 바뀌고 있다. 이같은 변화는 올들어 더욱 가속화하고 있다.

 가전 유통구조의 혼매양판 위주로의 전환은 이미 예견된 것이긴 하지만 IMF라는 특수 상황이 변화의 속도를 2∼3년 앞당겼다는 게 관련 업계의 지적이다. 그러다 보니 변화에 따른 부작용도 적지 않다.

 현재 가전시장의 변화는 크게 두가지로 나타나고 있다. 하나는 한국신용유통이 양판점인 하이마트를 확대하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딜러 형태의 가전 전속대리점이 등장하고 있는 것이다.

 양판점 하이마트의 급격한 출점 확대는 그 동안 지역 거점 단위의 양판점 진출을 대리점의 상권영역까지 확대시키고 있다는 점에서 주목되고 있다. 저가격을 무기로 하는 하이마트의 확산은 가전3사 대리점 경쟁 체제로 유지돼 오던 소상권의 틀을 무너뜨리고 있으며 이는 창고형 할인점 등 대규모 유통점들의 공세에 위축돼 온 전속대리점 체제의 붕괴를 가속화할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하이마트는 대형할인점과 양판점들의 약점인 접객능력에서 일선 대리점과 다를바 없어 상대적으로 가격 경쟁력과 제품 구색에서 떨어지는 대리점들의 위축이 불가피하다. 이미 본사에 직접적인 피해를 호소하는 대리점들이 상당수에 달하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가전사 전속대리점들이 취약한 것은 가격경쟁력이다. 창고형 할인점이나 양판점이 저가 공세가 가능한 것은 대단위 물량을 구매하면서 볼륨 디스카운트를 받기 때문이다. 딜러 형태 대리점의 등장은 볼륨 디스카운트를 끌어내기 위한 결과다.

 자금력이 있는 중대형점에 적게는 10점에서 50여점까지 소형 대리점들이 연결돼 이들 소형점의 필요 물량을 중대형점에서 일괄 구매하고 공급하는 것이 현재 늘어나고 있는 딜러 형태의 가전 대리점 유통체계다.

 딜러점들은 디스카운트 폭에서 최소한의 마진만 남기고 계열화된 대리점이나 유통점에 제품을 공급, 매출을 늘릴 수 있고 계열화된 점포들은 자신들이 주문하는 것보다 저가에 제품을 확보하는 이점을 가질 수 있어 가격면에서 창고형 할인점이나 양판점에 대한 경쟁력을 회복시키는 방안으로 활용되고 있다. 딜러 역할을 하는 점포들은 과거 가전사들이 물량 수급을 조절하기 위해 운영했던 초대형 유통점인 정책점과는 달리 제조업체로부터 구속받지 않는다는 점에서 성격이 다르다.

 LG전자나 삼성전자의 경우 이미 전국에 40∼50점의 딜러점이 활동하고 있는데, 두 회사 모두 이같은 딜러 형태의 대리점 유통구조 재편을 바람직한 변화로 보고 있어 그 숫자는 더욱 늘어날 전망이다.

 최근 일고 있는 가전 유통체계의 변화는 기존 전속대리점 체제의 붕괴를 전제로 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이 변화로 가전사의 전속대리점 체제가 완전히 사라지는 것을 의미하지 않는다.

 한때 가전사 매출의 80%를 넘게 차지하다가 50% 대로 떨어진 가전 전속대리점들의 비중이 낮아지기는 하겠지만 혼매양판의 틈바구니에서 하나의 유통채널로 남게 될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지금의 가전유통 시장은 한마디로 과도기적인 상태의 혼돈에 빠져 있다. 변화의 폭이 점차 커지고는 있지만 궁극적으로 어떻게 변화될지 판단하기 쉽지 않다. 분명한 것은 혼매양판이 거역할 수 없는 추세라는 점이다.

<박주용기자 jypark@e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