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F체제 이후 우리의 화두는 벤처창업이다. 국민의 정부가 재벌 위주의 경제구조를 「헤쳐 모여」 형식으로 구조개혁을 단행하고 있고 새로운 경제도약의 발판으로 벤처기업의 중요성을 부각시키면서 벤처기업 2만개 육성을 주창하고 있다. 언론에서도 연일 벤처창업을 통해 한국경제를 살려야 한다고 보도한다.
이에 따라 실제로 많은 사람들이 벤처창업전선에 나서고 있기도 하다. 우리나라에도 「하룻밤의 꿈」처럼 단숨에 억만장자가 나올 날도 머지 않았다. 마이크로소프트사의 빌 게이츠로 대표되는 벤처산업이 미래의 대안으로 급부상하고 있는 것이다.
이른바 90년대 후반부터 토네이도처럼 강하게 불고 있는 벤처산업은 대부분 기술집약적 산업으로 지식과 정보가 경쟁력의 원천이다. 그 중에서도 컴퓨터·정보통신 부문과 생명공학 등 첨단 과학기술 분야는 벤처산업의 대표격이다.
벤처산업은 대규모 자원투자를 중시하는 대량생산 위주의 전통적인 산업과는 다른 경제논리가 적용되고 제품이나 기업 중 작은 어느 하나가 우연한 기회에 또는 기발한 전략에 의해 한번 앞서기 시작하면 더욱 앞서 나가게 되고 그 시장에서 표준으로 확정되는 특징을 가지고 있다. 다시 말해 벤처산업의 경쟁력은 특정 기업의 개별적 힘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수많은 기업들 사이에 이루어지는 활발한 상호작용으로부터 창출되는 것이다. 따라서 벤처산업의 성공여부는 기술·아이디어·벤처자본·도전과 창조적인 경영 여부에 달려있다. 창업자의 독보적인 기술능력과 경영자질, 시장의 수요를 읽어 수요에 부응하는 시장기회의 매력도, 그리고 자본·인력 등 필요한 자원의 투여가능성에서 비롯되고 있다.
그래서 소자본 기술집약형 고부가가치의 특성을 갖는 벤처기업을 많은 사람들은 젊은이의 업종이라고 말한다. 참신한 아이디어와 백전불퇴의 패기만 있다면 맨주먹 창업도 가능하다. 벤처기업의 핵심은 뛰어난 사업아이템과 함께 강력한 도전정신이기 때문이다.
벤처산업의 메카, 실리콘밸리에서는 오늘도 수백개의 기업이 세워지고 수백개의 기업이 문을 닫는다. 미국경기는 이처럼 실리콘밸리를 중심으로 한 벤처기업들의 대약진으로 9년째 초호황을 누리고 있다. 벤처산업의 열풍이 몰고오는 위력을 실감케 하는 것이다.
미국의 장외 주식시장인 나스닥에 벤처기업이 70개사나 등록되어 있을 정도인 이스라엘이 미국 중심의 세계 벤처산업계에 최근 새로운 강자로 급부상하고 있는 것도 바로 이같은 성공요인이 충족되었기 때문이다. 이스라엘의 저력은 우선 연구개발 투자가 국내총생산(GDP)의 3.7%에 이를 만큼 풍성하다. 과학기술 인력은 인구 1만명당 140명에 달한다. 벤처기업이 갖춰야 할 최우선 필요조건인 일단 독특하고 특출한 기술력을 배양해낼 수 있는 토질이 기름지기 때문이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벤처강국」 이스라엘이 탄생할 수 있었던 것은 정부가 나서 만들어낸 대표적인 정책성공 결과다. 간섭만 하고 말만 앞세우는 정부가 아니라 기술력을 가진 연구원들이 황송해할 정도로 벤처기업가들에게 행정서비스한 결과다.
이스라엘 정부는 벤처기업 육성을 위해 지난 91년 과학부를 설치하고 최근 텔아비브하이파예루살렘을 연결한 삼각지대에 「제2의 실리콘밸리」를 건설할 정도로 벤처산업 육성에 열정을 보이고 있다. 벤처기업을 육성하고 21세기 지식기반경제사회를 건설하자면서도 그 핵심이 되는 과학기술 투자에 인색하고 정치적 목적으로 과학기술부를 없애야 한다고 주장하는 우리와는 천양지차다.
우리나라도 벤처산업 육성은 국민의 정부 공약이자 새로운 천년을 이끌어갈 핵심 산업기술정책으로 떠올랐다. 창업투자회사들이 쓸 만한 벤처기업을 찾아나섰고 각종 에인절클럽들이 등장해 벤처기업들을 대상으로 자금세일에 나서는 등 기술력만 있으면 그 어느 때보다도 자금을 골라 쓸 수 있는 상황이다.
정부 역시 코스닥 시장에 등록된 중소 벤처기업들에 대해 올해 사업연도부터 법인세를 사실상 50% 감면하고 이르면 연말부터 벤처기업의 주식에 대한 장외거래제도를 전격 도입키로 하는 등 벤처기업들 스스로 자금을 손쉽게 조달하도록 할 방침이다.
또 벤처기업 육성을 위해 올해 창업지원자금 7500억원을 창업투자회사에 우선 배정하고 창업투자회사를 기술신용보증기금의 보증대상에 포함시키기로 했다. 정부재정과 외국인투자자금으로 1000억원 규모의 한국벤처투자조합도 설립할 방침이다. 나아가 벤처기업 소프트웨어 정품사용을 촉진, 내수시장을 활성화하기 위해 검찰과 경찰이 민간기업과 공공기관의 소프트웨어 불법복제를 철저히 단속하는 동시에 중앙행정기관의 올해 소프트웨어 예산 50억원의 80%를 상반기에 조기집행하며 2000년도 예산에 정품사용 예산을 확대 편성한다는 계획이다.
이와 함께 벤처기업 육성 시책으로 △코스닥 등록기준을 완화하고 △전국 대학 314개와 연구소 171개를 대상으로 민간과 공동의 「1실험실 1창업사업」 운동을 전개하며 △스톡옵션제 대상기업을 현재 비상장·미등록 벤처기업에서 모든 벤처기업으로 확대하는 한편 △병역특례 전문연구요원의 중소 벤처기업 배정 확대 △벤처기업에 대한 취득세 및 등록세의 감면 폭을 창업 후 2년간 전액면제로 확대하는 등 각종 세제지원책을 적극 추진할 방침이다.
그러나 벤처산업을 제대로 육성하기 위해서는 정책입안자나 담당자들부터 「기발한 아이디어와 창의력」을 가져야 한다. 하지만 정책의 경쟁력은 중구난방식으로 겉돌고 있다는 게 중론이다. 벤처기업은 기술·자금·마케팅을 먹고 자라는데 우리 정부의 벤처지원시스템은 어느 것 하나 제대로 가동되는 게 없다.
세계를 제패할 기술도 창의력에서 비롯되고 창의력을 먹고 벤처기업은 커가는 데도 정부는 예전처럼 구태의연하게 간섭·규제에만 여전히 혈안이다. 기술담보제도만을 믿고 찾아갔다가 실물담보를 요구하는 바람에 낭패하기 일쑤고 애써 상품화해도 시장개척 자금이 없어 기존 시장벽에 부딪혀 고전하는 게 태반이다.
벤처산업이 기술적 파급효과도 효과지만 경제발전의 밑바탕이 되는 견인차 역할을 담당하고 있는 만큼 벤처산업을 제대로 육성하는 것이야말로 세기말 우리 경제에 주어진 숙제다. 꿈을 먹고 태어나는 벤처산업이 말 그대로 우리에게 꿈을 안겨다줄지 관심이다.
<정창훈기자 chjung@e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