벤처열풍이 몰아치고 있다. 지난해 구조조정과 맞물려 연구소와 대학·기업을 박차고 나온 많은 엔지니어들이 벤처 전선에 뛰어들고 있다. 심지어 대학내 동아리 모임에도 벤처동아리가 우후죽순처럼 생겨나고 있고 두세명만 모이면 「모험」을 감행하자는 의견이 툭툭 튀어나온다.
『지난해 정부는 벤처기업의 기술개발이 가장 중요하다고 판단해 총 1조3000억원의 기술개발자금을 지원했습니다. 이같은 투자로 인해 올해 하반기부터는 가능성 있는 제품들이 속속 등장할 것입니다. 중기청의 역할은 바로 이러한 기업들을 찾아내고 육성하는 데 있습니다.』
지난 25일 발탁된 한준호 중기청장의 벤처기업관은 「기술력이 중요하다」이다. 한마디로 기술우선주의다. 그는 기술력은 벤처기업이 성공하는 데 충분조건은 아니지만 필요조건이라는 생각을 갖고 있다. 아무리 자금력이 뛰어난 업체라도 기술력이 보장되지 않으면 세계시장에서 도태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한 중기청장은 수시로 대덕연구단지 연구기관과 기업·학회·대학을 방문해 이같은 자신의 주장을 피력한다.
『그간 우리는 미국식 벤처기업 성장모델을 많이 따랐습니다. 그러나 이스라엘의 경우를 눈여겨봐야 합니다. 미국의 경우 1개 기업의 연구개발비가 국가 연구개발 예산과 맞먹는 수준입니다. 실리콘밸리의 모델은 미국과 같은 규모의 경제에서 가능합니다. 그러나 우리나라는 그렇지 못합니다. 그래서 이스라엘 벤처기업 정책은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큽니다.』
한 중기청장의 말처럼 「중소기업이 국가산업의 골간」이 되고 선진시장을 잠식해 들어가는 이스라엘의 벤처기업 정책은 우리나라 벤처기업 육성정책과 상당부분 연관성을 갖는 듯하다. 우리나라는 「실리콘밸리」 구상을 벤처기업의 적합한 모델이라고 생각하고 여기에 맞게 해왔다. 한 중기청장의 견해라면 우리의 벤처기업 모델과 전략은 일정부분 수정돼야 할 것으로 보인다. 우리나라는 미국의 나스닥·에이스넷(ACE Net)·실리콘밸리를 모방한 코스닥·벤처넷(Venture Net)·대덕연구단지 등을 만들었다.
『그렇다고 미국식 모델이 반드시 다른 것은 아닙니다. 벤처기업의 제품이 시장성을 확보하려면 미국시장 공략이 필수적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미국식 벤처기업에 대한 모델도 상당한 비중을 갖습니다. 다만 규모면에서 미국식을 따르다보면 내용면에서 잃을 수 있는 것이 많아 이스라엘 혹은 우리나라와 인구·국토면적·경제력에서 유사한 국가의 선진모델을 따르자는 것입니다.』
한 중기청장은 그러나 미국식이건 이스라엘 방식이건 궁극적인 벤처기업의 성공은 우리나라 고유의 기업문화와 윤리, 기술개발 현실과 일맥상통한다고 생각한다. 그런 점에서 한 중기청장은 기업에 대한 현실적인 감각을 갖고 있는 셈이다. 여러 곳의 선진국 모델을 벤치마킹하고 우리의 장점을 끌어낸 독자적인 벤처기업 성공모델을 도출하자는 게 그의 주장이기 때문이다.
한 중기청장은 우리 벤처기업의 현실을 「미래 신기술 수요에 대응하고 자사 보유 신기술 상품화에 주력하면서 독자적인 기술개발을 위해 필요한 체제와 연구전담인력을 강화하는 단계」로 규정한다. 그래서 성공한 기업보다는 「창업한 지 얼마 안된 기업이 많고, 부품 위주의 제품 생산체제, 간접판매방식을 많이 이용하고 있다」고 판단한다.
벤처기업은 기술력에 의해 뒷받침된 신제품을 판매하고 있기 때문에 마케팅 능력만 뒷받침되면 매출이 크게 신장할 수 있다고 밝힌다. 한 중기청장의 지적이 아니더라도 우리나라 벤처기업의 매출신장률은 일반기업의 3배가 넘는 21.9%에 달한다.
『마케팅이 정말 중요합니다. 해외를 나가보면 우리 벤처기업 제품과 해외 기업 제품과의 기술격차는 없습니다. 중기청은 이 때문에 벤처기업에 대한 국내외 구매·입찰·거래·시장개척 등 다각적인 지원책을 강구중에 있습니다. 그러나 마케팅에는 왕도가 없습니다.』
한 중기청장은 마케팅을 정부 차원의 노력보다는 기업 스스로 해결하고 배워야 하는 문제라고 생각한다. 정부가 도와줄 수는 있지만 실질적인 해외시장·국내시장 개척은 전적으로 벤처기업의 능력에 달려 있다고 판단한다. 정부의 역할은 마케팅 유경험자를 통해 간접경험을 시키거나 해외시장개척단 파견, 공동 홍보 등 지원군에 불과하다고 주장한다. 이 문제는 바로 벤처기업이 안고 있는 숙제인 동시에 벤처기업이 성장할 수 있는 영양제와 같다.
『중기청은 지난해 IBRD 자금 4000억원을 공급했고 올해에도 총 7500억원을 기술력이 우수한 중소·벤처기업에 배분중입니다. 그러나 이러한 자금지원은 일시적인 방법입니다. 기업 스스로 매출과 수익을 극대화시킬 때만이 효과적인 벤처기업이 육성될 수 있습니다. 이 때문에 중기청의 정책과 역할은 바로 우리 중소기업과 벤처기업이 만들어가야 합니다.』
<대전=김상룡 기자 srkim@e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