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집-벤처Ⅰ> 활기띠는 에인절 벤처투자

 숭실대 배명진 교수는 최근 지난해 우연한 기회에 착안했던 「에밀레종(선덕대왕 신종) 모형」의 아이디어상품을 개발하는데 성공, 언론의 스포트라이트를 받았다.

 배 교수가 개발한 것은 단순한 모형종이 아니라 에밀레종 특유의 웅장한 소리를 음원모듈로 재현한 것이다. 국내에서는 처음으로 소리를 상품화한 것이어서 주목됐다. 더구나 2002년 월드컵을 앞두고 우리나라를 대표할 만한 관광상품이 많지 않은 터라 이 제품은 더욱 높게 평가됐다.

 배 교수는 얼마 뒤 또 한 번의 화제를 불러 모았다. 본격적인 에밀레종 모형의 양산을 추진하기 위해 핵심부품인 음원모듈 설계와 완제품 조립을 전담할 별도법인인 에밀레사운드를 설립키로 하고 개인투자가를 모집하자 대학교수·변호사·언론인·공인회계사·세무사·기업체 대표 등 각계 각층의 전문가들이 쇄도했다. 즉 개인투자가·에인절들이 이 회사의 기술력과 장래성, 에밀레종 모형의 상품 가능성만 믿고 선뜻 시드머니를 투자하겠다고 앞다퉈 나선 것이다. 기술력과 아이디어만으로 창업전선을 노크했지만 막상 초기 자본 조달을 우려했던 에밀레사운드는 에인절 덕분에 자본금 2억원 중 1억5000만원을 확보하는데 성공했다.

 이에 따라 자신감을 얻은 이 회사는 앞으로 3년간 10배 이상의 초고속 성장을 통해 오는 2005년 코스닥시장에 등록하겠다는 야무진 청사진까지 발표했다.

 에인절(Angel). 창업 1년 이내로 자금조달이 곤란한 벤처기업 초기 단계에 마치 「천사」처럼 나타나 자본 투자와 함께 각각의 경영노하우를 제공하는 전문 투자가를 말한다. 검증되지 않은 기술과 아이디어만 믿고 자본을 투자, 기업의 성장에 따라 배당을 받거나 기업공개 후 주식 양도차액을 통해 고수익을 창출하는 개인투자가다.

 벤처기업의 천국이라는 미국 실리콘밸리에서 하루가 멀다하고 쏟아지는 벤처신화를 창조하는데 일등 공신인 에인절이 국내에서도 서서히 꿈틀거리고 있는 것이다.

 특히 △IMF체제로 바닥권을 헤맸던 국내 경기 회복에 대한 강한 기대감과 고금리에서 저금리시대로 전환하면서 은행권에 집중됐던 여유자금의 직접투자시장 진출 △정부의 강력한 벤처기업 육성 정책과 국내외에서 잇따라 전해오는 벤처기업가 및 투자가의 성공신화 △개인 투자를 가로막았던 각종 규제의 완화 내지는 폐지 △투자회수시장인 증권시장과 코스닥시장, 기업 인수합병(M&A)시장의 활기 등이 맞물리면서 국내에서도 에인절투자시대가 본격적으로 열릴 조짐을 보이고 있다.

 가능성은 인정하지만 투자리스크가 크다는 이유로 벤처기업을 외면했던 많은 에인절들이 벤처기업에 관심을 보이고 있다.

 이에따라 에인절들의 모임인 에인절투자조합이 지난 97년 무한엔젤클럽을 시작으로 부산테크노엔젤클럽, 충북엔젤클럽, 대덕엔젤클럽, 대구미래엔젤클럽, 서울엔젤클럽 등 지역적으로 잇따라 결성되는 추세며 지금도 설립이 추진되고 있다.

 아직은 다소 미진하지만 에인절투자 기업의 코스닥등록이 추진돼 에인절투자회수 성공사례 등장도 본격화할 전망이다. 그런가하면 전문직 종사자에 국한됐던 에인절의 구성원도 갈수록 다양해져 에인절의 저변이 빠르게 확산될 조짐을 보이고 있다.

 벤처기업을 육성하는데 에인절의 기능과 역할이 왜 중요한지는 벤처기업의 육성을 통해 사상 유례없는 초 호황이 10년 가까이 지속되며 실업률 4%대의 완전고용에 가까운 고용을 실현한 미국의 사례를 보면 금방 알 수 있다.

 현재 미국 에인절의 총 투자잔고는 약 2000억달러, 투자인 수는 약 100만명. 벤처캐피털사에 비해 투자잔고는 6배, 투자인수는 무려 1700배에 달한다. 연간 투자금액과 투자건수도 200억달러에 5만건으로 벤처캐피털의 각각 5배, 20배다. 전문가들에 의하면 미국 벤처기업 투자의 50% 정도를 에인절이 맡고 있다. 가히 「벤처기업의 젖줄」이라 해도 과언이 아닌 셈이다.

 그러나 우리나라는 최근 들어 에인절의 활동이 본격화하고 있다고 하지만 아직 모든 게 발아기에 불과하다.

 에인절이 과감히 투자할 수 있는 적절한 벤처기업을 찾기가 그리 쉽지 않고 성장 단계별로 에인절과 유기적으로 연결되는 벤처캐피털-연기금투자-해외자본-금융권융자-투자회수시장 등 모든 인프라가 취약하기 때문이다. 에인절 투자의 역사가 짧다보니 경험과 노하우도 부족하다.

 전문가들은 『최근 벤처기업 창업 붐 조성과 정부의 벤처기업 육성 정책의 효과를 배가하기 위해선 초기 벤처기업 투자를 책임질 에인절들이 나서야 할 때』라며 『이를 위해 정부가 에인절의 진입을 저해하는 각종 규제를 철폐하고 에인절과 벤처기업을 연결하는 네트워크 구축, 세제혜택, 조기 투자회수를 위한 정책적 대안 제시 등 에인절 인프라 보완을 좀 더 과감하게 추진해야 한다』고 입을 모으고 있다.

<이중배기자 jblee@e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