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통화기금(IMF) 이후 기업의 부도와 기업 구조조정 흐름 및 정부의 중소기업 육성정책이 맞아 떨어지면서 벤처기업 창업바람이 불고 있다. 벤처창업 열기가 전국을 강타하면서 전국 대학과 지자체를 중심으로 창업지원센터와 벤처타운·벤처빌딩·테크노마트 등도 속속 등장하고 있다. 정부도 「벤처기업 육성 특별조치법」을 포함한 각종 창업지원정책을 잇따라 내놓으면서 벤처창업을 범국가적으로 장려하고 나섰다.
지난해 말에는 △실험실 창업 허용 △교수나 연구원의 벤처기업 임직원 겸직 허용 △조세감면 △설립자본금의 축소 등을 포함한 「벤처기업 육성 특별조치법」이 제정돼 벤처기업을 할 수 있는 여건이 조금씩 갖추어져 가고 있다는 평가다. 그러나 이같은 정책에도 불구하고 관 주도의 창업지원제도에는 한계가 있다는 게 업계 관계자들의 중론이다. 특히 창업지원센터의 경우 많은 긍정적인 측면에도 불구하고 여러 가지 예기치 않은 문제점들이 드러나고 있다.
우선 창업지원센터에 입주하려고 하는 업체의 대부분이 기업의 형태를 제대로 갖추지 않았다는 점이다. 그러다 보니 입주신청업체의 옥석을 가리는 데 상당히 애를 먹고 있다는 것이 일선 담당자들의 고민이다. 또 창업지원센터가 정부 주도 아래 우후죽순처럼 생기다 보니 지역에 따라서는 입주기업이 모자라는 기현상이 연출되기도 한다. 벤처창업 열풍이 불고는 있으나 실제로 기업을 창업하려는 기류는 아직 기대만큼 피부에 와 닿을 정도는 아니라는 것이다. 이같은 현상은 자연발생적인 흐름이 아니라 인위적인 창업지원센터 설립에 초점을 맞추려는 데 문제가 있다고 업계 관계자들은 말하고 있다.
창업지원센터가 설립됐다고 해도 기본적인 사항 이외에는 창업기업들에 도움을 줄 수 없다는 것도 한계로 지적되고 있다. 사무공간이나 사무기기, 약간의 창업자금이 대부분이라 실질적으로 필요한 경영이나 마케팅 및 인력관리에는 구멍이 뚫릴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따라서 현재의 직접적인 자금지원정책도 중요하지만 경영이나 마케팅을 전문으로 하는 업체나 이를 지도할 수 있는 제도적인 뒷받침이 시급한 것으로 지적되고 있다. 이공계 학생이나 대학원생이 벤처기업 설립에 주도적으로 나서고 있는 현실을 감안하면 늦어도 너무 늦었다는 것이 업계 관계자들의 견해다. 하지만 현재의 법·제도로는 이같은 문제들을 해결하는 데 무리가 있는 것이 사실이다. 선진국처럼 법률지원서비스나 마케팅서비스 등 각종 서비스지원제도의 다양화에 나서야 한다는 얘기다.
정부가 지원하는 자금지원정책도 현재 공급자 위주의 정책에서 탈피해야 한다는 의견이 제기되고 있다. 단순히 직접적인 자금지원을 가지고는 기업의 생존을 담보할 수 없기 때문이다. 이제는 정부도 투자 위주의 자금지원정책을 구사해야 할 때라는 것이다. 따라서 정부의 자금지원은 기반 인프라 구축차원에서 가닥을 잡아가고 창업한 기업을 위해서 에인절 결성을 지원하는 것과 같은 투자 중심의 정책으로 선회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창업하는 사람의 저변도 넓혀나가야 한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현재 대학생 창업에 관한 사례들이 종종 나오고 있으나 기대만큼 창업이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 대학생 벤처창업을 유도하기 위해서는 창업동아리의 활성화가 중요하고 따라서 각 대학 중심의 지원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업계 관계자들은 말하고 있다.
또 대학 당국에서는 지도교수에 대한 인센티브를 제도적으로 보장해줘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예를 들어 어느 교수가 창업지원센터를 담당하고 있을 경우 연구실적 범위를 폭넓게 적용해 특허와 같은 지적재산권을 획득하면 그대로 연구실적으로 포함시켜줘야 한다는 것이다. 제도적으로 교수의 연구개발 노력을 지원해줘야만 벤처창업이 활기를 띨 수 있다는 지적이다.
정부가 조성하고 있는 공공펀드의 운용방안도 기업의 운영자금보다는 각종 인프라 구축에 제한해야 한다는 의견도 제기되고 있다. 벤처기업의 기본 인프라가 부족하다 보니 각종 문제점들이 발생하고 있기 때문이다. 기업 운영자금의 경우 그 기업의 건실성만 판명되면 벤처 투자가들이 앞다퉈 몰려들 것이기 때문이다.
대기업 위주의 인력정책을 바꾸어야 한다는 의견도 제기되고 있다. 현재 대부분의 우수인력들이 대기업으로 빠져나가고 있으며 일부는 외국계 회사로 빼앗기는 등 인력 편중현상이 심화되고 있다는 지적이다. 중소기업의 인력패턴을 바꾸기 위한 방편으로는 병역특례제도를 활용하는 것도 한 방법일 수 있다. 자금과 인력의 빈곤에 허덕이는 중소업체로서는 병역특례제도가 큰 힘이 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이와 함께 정부의 각종 지원정책에 대한 적극적인 홍보 노력도 필요한 것으로 지적되고 있다. 현재 정부 홈페이지나 일부 네트워크에서 정부정책이나 자금 등에 관한 정보를 제공한다고는 하나 초보적인 수준에 머물고 있어 자금·제도 등 정부 정책을 전문으로 제공하는 네트워크 구축이 필수적이라는 지적이다.
<박승정기자 sjpark@e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