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동차 급발진 사고가 또다시 여론의 도마 위에 오르고 있다. 급기야 정부가 자동변속차량의 급발진 사고 원인을 오는 10월까지 밝히기로 하고 조사위원회를 구성키로 했다.
건설교통부는 최근 소비자보호원·자동차성능시험연구소·자문교수단·자동차공업협회·자동차 제작 3사 대표가 참석한 가운데 자동차 급발진사고 대책회의를 열고 이같이 결정했다. 사고원인 규명을 위한 실험은 엔진·변속기·제동장치는 물론 전자파 장해 등 40여개 항목에 따라 진행된다. 건교부는 다음달부터 새 차 6대와 사고 차량 10대 등 총 16대의 차량을 정밀 검사할 계획이다.
하지만 이에 대해 자동차 전문가들은 회의적인 반응이다. 자동차 선진국인 미국과 일본도 최근 몇년간 자동차 급발진 사고에 대한 원인규명 조사를 벌였지만 아직까지 뚜렷한 원인을 밝혀내지 못한 상황에서 과연 실험 자체가 실효성이 있을지 의문을 제기하고 있다.
일각에서는 건교부의 이같은 조치가 여론에 밀린 「면피용」이 아니냐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원인 규명 못지않게 안전장치 법제화와 같은 대책 마련에도 초점을 맞춰야 한다는 의견이 지배적이다.
△미궁에 빠진 차량 급발진 원인=급발진 사고의 원인에 대해선 아직까지 누구도 명쾌한 답변을 제시하지 못하고 있다. 피해자는 전자파나 자동차 내부 결함을 원인으로, 자동차업체는 운전자 과실 즉 운전자가 무의식적으로 브레이크 페달 대신 액셀러레이터를 밟아 급발진을 일으켰다고 추정하는 정도다. 단지 소비자보호원과 국립과학수사연구소가 공동으로 실시한 전자파 장해 관련 실험에서 특정 전자파가 자동차의 중추 신경격인 엔진중앙제어기(ECU) 컴퓨터회로에 이상을 일으킨 사실을 밝혀냈다.
하지만 이런 장해가 급발진을 일으킬 만한 동력을 만들어낼 수는 없다는 게 전문가들의 공통된 견해다. 건교부 역시 자동변속 차량의 급발진 사고원인을 둘러싼 논란이 가열되자 이미 지난해 11월 자동차성능시험연구소에서 전자파내성시험을 실시해 급발진 사고가 차체 결함과 무관하다는 잠정 결론을 내렸다. 이같은 상황에서 과연 건교부의 이번 실험 결과가 얼마만큼 새로운 내용을 제시할 수 있을지 의문을 제기하고 있다.
△이상 환경을 고려하지 않은 시험=이번 정밀 실험이 이상 환경에 따른 오작동 가능성을 배제해 문제가 되고 있다. 자동차 급발진은 내부적인 결함 못지않게 이상 환경에 따라 기기가 잘못 작동할 가능성도 많다. 우리나라에서 운행중인 자동변속기 차량 수가 100만대, 급발진 사고가 이틀에 한번 빈도로 발생한다고 가정해 보자. 하루에 평균 2번 시동을 건다고 했을 때 400만번 시동 중에서 한번 정도 급발진 사고가 발생하는 셈이다. 따라서 20대 자동차마다 20만번의 시동을 걸었을 때 1번 정도 급발진을 확인할 수 있다. 20대 차량으로 1분마다 시동을 걸면서 검사한다 해도 하루 12시간씩 277일 동안 시동을 걸어야 급발진을 한번 확인할 수 있다. 그것도 운이 좋은 경우에 한해서다. 따라서 급발진 사고가 수시로 또한 대다수의 자동차에서 일어나지 않는 한 수십대 차량으로 몇개월내에 확인하기는 사실상 불가능하다.
△제도적인 대응책 마련 미비=급발진 원인 규명과 함께 제도적인 보완책이 필요하다는 여론이다. 안전성 확보 차원에서 시프트 로크(Shift Lock) 의무 장착이나 운전자 재교육과 같은 가시적인 조치가 뒷따라야 한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공통된 견해다.
그동안 국내 자동차 회사들은 극히 일부 차량에서만 시프트로크를 장착했는데 미국과 일본에서는 급발진 사고가 사회문제로 부각되자 정부가 나서 모든 차량에 시프트로크 장착을 의무화하고 있다. 시프트로크는 자동변속기가 장착된 차종을 운전할 때 브레이크 페달을 밟아야만 기어변속이 가능하도록 하는 안전장치다.
서울시립대 이준화 교수(전자전기공학부)는 『현실에서 발생할 수 있는 내부와 외부 이상 환경을 고려해 몇개월내에 10여대의 차량으로 급발진 원인을 발견하기는 어려운 일』이라며 『원인 규명 못지않게 안전장치 법제화와 같은 제도적인 보완책이 시급히 마련돼야 한다』고 말했다.
<강병준기자 bjkang@e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