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집-벤처Ⅱ> 야망과 집념... 우리시대의 "우상"들

벤처라는 말은 젊은 사업가들을 매료시키는 주술적 힘을 가진 듯이 들린다. 스톡옵션으로 하루아침에 거부가 된 사람들, 아이디어 하나로 성공한 사람들의 영웅담이 있기에 오늘도 누군가 새로운 벤처신화에 도전한다. 지금 세계 곳곳에서는 빌 게이츠처럼 학교를 뛰쳐나가 소프트웨어 회사를 세우려는 대학생들이 늘어나 「Bill Gatesian」이라는 신조어까지 생겨날 정도.

 우리나라에도 벤처의 꿈을 이룬 사람들은 많다. 야후코리아 염진섭 사장(45)이 대표적인 인물. 스톡옵션 일부를 팔아 이미 100억원 대의 재산가가 된 그를 두고 운이 좋았다고 말하는 이들도 많다. 하지만 염 사장은 운이 좋아 야후코리아 사장으로 발탁됐다기보다 스스로 기회를 만들어냈다는 점에서 타고난 승부사라고 할 수 있다. 그는 법인설립을 위한 물밑작업을 해놓고 한국시장 투자를 주저하는 본사를 설득했던 것.

 염 사장은 첫 직장이었던 국제상사부터 럭키금성상사, 삼보컴퓨터, 소프트뱅크코리아를 거치면서 첨단기술 흐름과 마케팅 감각을 익히게 됐고 야후코리아의 성공을 확신했다. 97년 설립된 야후코리아는 출범 1년 만에 2억3000만원의 흑자를 냈고 올 1·4분기에는 19억원의 광고매출을 올리는 등 가파른 상승세를 타고 있다.

 톡톡 튀는 아이디어로 돈을 번 사람이라면 골드뱅크 김진호 사장(31)도 손꼽지 않을 수 없다. 그는 97년 3월 창업 후 「홈페이지(www.goldbank.co.kr)에 실린 광고를 클릭하면 돈을 준다」는 이색 광고를 내걸었고 네티즌들의 눈길끌기에 성공했다. 골드뱅크 사이트는 창업 2년여 만에 60만 회원을 확보, 가장 붐비는 사이버공간 가운데 하나로 떠올랐다.

 지난해 매출은 12억원에 그쳤지만 온라인쇼핑몰과 여행사, 가전대리점 등의 서비스를 속속 선보이면서 올해는 매출목표를 500억원으로 늘려잡아 업계를 놀라게 하고 있다. 이처럼 눈에 띄는 아이디어와 공격적인 경영방식 덕분에 골드뱅크의 주가는 천정부지로 올랐다. 액면가 5000원 주식을 10분의 1로 분할했는데도 3만700원, 무려 2000% 상승이라는 대기록을 세운 것. 이같은 주가는 버블논쟁을 불러일으키고 있지만 인터넷 사업의 새로운 성공모델을 제시한 것만은 틀림이 없다.

 공작기계 제어장치 업체인 터보테크의 장흥순 사장(40)은 세계가 인정한 밀레니엄 리더. 그는 올 초 세계경제포럼(WEF)이 선정한 「세계를 이끌어갈 99년의 차세대 지도자 100인」으로 뽑혀 업계의 주목을 받았다.

 88년 카이스트 출신 다섯 명이 의기투합해 청계천에 설립한 터보테크는 「그침 없이 참된 연구를 하는 젊은이들(Truly Unceasingly Research Boys)」이라는 뜻으로 출발했다. 지난 11년 동안 장 사장은 기술이라는 기본기를 바탕으로 차근차근 계단을 밟아 올라가는 벤처업체의 모범답안을 보여줬다.

 국산화 불모지인 컴퓨터 컨트롤러 분야에서 자체기술 개발에 성공해 장영실상을 두번이나 수상한 것. 아직은 자본금 67억3000만원에 불과하지만 연평균 80%대의 고속성장을 거듭하면서 기술한국의 미래를 짊어질 대표 벤처업체로 자리잡았다.

 미래산업 정문술 사장(61)은 국내 벤처업계의 터줏대감. SMD 마운터 성공으로 주가가 오르면서 창업자인 정 사장 자신도 거부가 됐지만 세 사람의 임직원이 5억원부터 12억원까지 스톡옵션을 챙겼다.

 자살을 결심할 만큼 우여곡절이 많았지만 철저한 시장조사로 사업계획을 세워 마침내 역전 홈런처럼 드라마틱한 성공을 일궈낸 정문술 사장은 실패도 소중한 자산임을 보여준 벤처기업가다.

 위험을 무릅쓰고 한 배를 탄 사람들이 일한 만큼 부를 나눠 갖는다는 벤처의 법칙을 더욱 확실하게 보여준 사람은 벤처기업협회 메디슨 이민화 회장(46).

 자기공명영상촬영장치로 메디슨의 주가가 오르자 이 회장이 170억원을 비롯해 이승우 사장 40억원, 김영모 상무 30억원, 박용현 연구소장이 11억원의 자산가가 됐다. 이 회장은 사내 벤처를 육성해 독립시켜 내보내는 벤처 대부로도 유명하다.

 한국의 빌 게이츠로 불려온 한글과컴퓨터 이찬진 사장(34)은 MS와의 해프닝으로 한 차례 위기를 겪기는 했지만 여전히 벤처를 꿈꾸는 젊은이들의 우상이다. 그는 「아래아한글」에 이어 인터넷을 새로운 사업의 돌파구로 삼겠다는 목표 아래 현재 네띠앙(http://www.netian.com)을 국내 최대 포털사이트로 만드는 데 최선을 다하고 있어 앞으로의 행보에 눈길이 쏠리고 있다.

 안철수 컴퓨터바이러스 연구소장(37)은 성공한 벤처기업가인 동시에 가장 존경받는 프로그래머로 손꼽힌다. 서울대 의대 시절 개발한 V3로 컴퓨터 명의가 된 안 소장은 1000만달러에 V3를 사겠다는 맥아피사의 제안을 거절한 일화로도 유명하다. 최고의 기술을 향한 끝없는 도전과 벤처다운 기업가정신(Entrepreneur Spirit)을 보여준 인물.

 그밖에 인하대 재학시절 450만원으로 창업해 16년 만에 60억원대 재산가가 된 비트컴퓨터 조현정 사장(42)을 비롯, 보안장비와 폐쇄회로TV 업체 하이트론씨스템즈의 길대호 사장, 카드리더 전문업체 경덕전자의 윤학범 사장, 사오정 전화기를 내놓은 YTC텔레콤 지영천 사장 등도 모두 주목받는 벤처사업가들이다.

 실리콘밸리에서 활약하는 한국출신 기업인들도 많다. 나스닥에 한국계 기업으로 가장 먼저 주식을 공개한 텔레비디오 황규빈 사장(62). 그는 무일푼으로 미국에 건너가 텔레비디오를 세계 최대의 터미널 업체로 키운 입지전적 인물이다. 한때 세계 400대 거부 명단에 오르기도 했다.

 고희를 넘긴 암벡스 이종문 회장은 60대에 성공한 대기만성형 기업가. 89년 다이아몬드 그래픽카드로 돌풍을 일으킨 후 주식이 올라 실리콘밸리의 명사가 됐고 지금은 벤처캐피털리스트로 더 유명하다. 종근당 창업자 이종근씨의 친동생인 그는 최근 한국을 방문해 대학생들의 창업지원을 약속하기도 했다.

 MIT 출신으로 28세에 인텔 한국 지사장이 된 후 앵글로색슨 일색의 실리콘밸리에서 다국적 기업 퀀텀사 사장에 올라 새너제이 머큐리 뉴스가 대서특필한 손영권씨(42). 그는 요즘 벤처업체 오크테크놀로지의 사장 겸 벤처투자가로 변신해 새로운 성공스토리를 쓰고 있다. 상용 ATM 액세스 장비를 가장 먼저 내놓은 벤처업체 유리시스템즈를 루슨트테크놀로지스에 10억달러에 판 김종훈씨(38), 벤처기업 인수 합병에 탁월한 안목을 보여온 리테크놀로지컨설팅사 아이크 리 사장(45), 뉴욕타임스가 가장 믿을 수 있고 편리한 쇼핑몰 사이트 1위 업체로 손꼽은 마이사이몬의 마이클 양 사장 등도 한국의 이름을 빛낸 성공한 해외 벤처기업가다.

<이선기기자 sklee@e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