벤처기업이 탄생하는 데는 과거 개인투자자나 창업투자전문업체의 지원이 절대적이었지만 최근에는 대기업이 벤처기업의 산실로 자리잡고 있다.
특히 IMF 이후 대기업들이 대대적인 구조조정에 착수하면서 핵심기능을 제외한 거의 모든 업무를 분사대상으로 정하고 종업원에 의한 사업분할방식(EBO)으로 분사를 적극 추진하는 한편 사내 벤처제도를 도입해 하나의 사업부를 벤처기업으로 독립시키는 경향이 보편화되고 있기 때문이다.
이와는 별도로 기업활동으로 얻은 수익을 사회에 환원하기 위해 사외적으로도 벤처기업의 창업 및 육성을 지원하고 있기도 하다. 이에 따라 우리나라 기업환경도 그동안 대기업 위주에서 대기업과 벤처기업, 중소기업 등 서로 다른 성격의 3개 기업군이 서로의 역할에 맞는 기업활동을 전개하는 선진국형으로 급속히 발전하고 있다. 즉 국내 산업발전형태를 고려해 자본력이 풍부한 대기업은 첨단 하이테크부문, 중소기업은 제품개발 및 생산, 벤처기업은 벤처기술로 특화해 서로가 부족한 것을 보완해주는 이른바 상생(相生)구조로 재편되고 있다.
벤처기업의 출범이 전자·정보통신분야에서 가장 활발한 것도 전자·정보통신기술이 이같은 상생구조에 가장 적합하기 때문이다.
전자·정보통신분야의 대기업들이 벤처창업을 적극 지원하고 있는 것은 자사를 중심으로 협력업체와 벤처기업들을 연계해 기술개발, 사업구조, 경영시스템 및 조직문화 등 전부문에 걸쳐 장점을 극대화하고 단점을 보완함으로써 21세기에 경쟁력을 확보하겠다는 전략의 일환인 셈이다.
국내 대표적인 종합전자업체인 삼성전자와 LG전자, 대우전자 등 3사가 앞장서 벤처지원제도를 마련, 시행하고 있는 것도 바로 이같은 이유 때문이다.
삼성전자는 매년 R&D 투자금액의 1%에 해당하는 120억원을 벤처기금으로 조성하는 한편 150억원 규모의 벤처투자용 창업투자조합을 설립, 사내외 우수벤처회사를 적극 지원하고 있다. 벤처기업들에 대한 지원은 자금뿐 아니라 전자소그룹, 삼성증권, 삼성카드 등 그룹계열사의 벤처전담기구와 연계해 벤처기업의 경영, 기술, 자금, 장외시장 등록 등 일체의 서비스까지 제공하고 있다.
삼성전자는 매년 40개의 사내벤처, 사외창업벤처, 사외우수벤처를 선발해 최고 20억원까지 연구개발자금을 지원한다는 계획을 세워 놓고 있다.
삼성전자는 벤처기업외에도 부품 및 완제품을 납품하고 있는 협력업체들에 대해 400여개 품목의 국산화를 적극 지원하고 중소업체와 선진기업간 기술제휴 및 장비지원, 삼성전자가 보유하고 있는 생산기술사용 및 특허권을 공유케 하고 있다. LG전자도 삼성전자와 마찬가지로 벤처창업을 지원하고 있지만 전자 자체보다는 그룹차원에서 이를 적극 지원하고 있다.
LG는 중소·벤처기업 창업지원 및 육성을 위해 「LG창업보육센터」를 완공, 가동하고 있다. 「LG창업보육센터」는 심사를 통해 선발된 기업에 대해 보육센터 입주를 허용하고 이들 기업에 대해서는 연간 2000만원의 기술개발비 지급 및 각종 시설지원은 물론 경영교육 등 총체적인 창업지원시스템을 마련, 운영하고 있다.
대우전자도 자체적으로 지난 97년부터 사내벤처제도를 운영, 새로운 기술집약적 사업 및 시장중심형 사업을 집중 육성하고 있다. 대우전자는 대우전자 및 외부에 공급이 가능한 조립품 및 부품, 원자재 등 소규모의 자본으로 단기간에 투자회수가 높은 고수익사업을 벤처자문위원 회의에서 사업타당성에 대한 평가를 거친후 신규사업 또는 독립사업부로 설립, 지원하겠다는 것이다.
지원내용은 대우창업투자회사와 연계해 창업지원 및 경영지도, 자금지원, 판매망확보 등을 알선하고 사내벤처시에는 인센티브를 부여하는 등 벤처관련 직원들의 의욕을 부추기고 있다.
국내 정보통신업계의 대부격인 한국통신도 독자적으로 사내벤처제도를 마련해 정보통신분야 아이디어를 보유하고 있거나 연구개발 결과 및 보유기술을 활용한 사업화 계획이 있는 직원들의 창업활동을 지원하고 있다.
사내벤처기업 창업자의 자격은 한국통신에서 3년 이상 재직한 직원이면 누구나 가능하며 희망자가 사업계획서를 제출하면 한국통신 연구개발본부장을 위원장으로 하는 「벤처기업심의위원회」 심사를 거쳐 지원사업을 선정하게 된다.
이를 바탕으로 한국통신은 총 5개의 사내벤처기업을 출범시킨 상태며 올해 안으로 7개 사내벤처 기업을 추가로 창업시킨다는 계획을 세워 놓고 있다. 국내 굴지의 대기업들이 이처럼 벤처지원제도를 마련하고 있지만 IMF 이후 의욕만큼 활성화되지 못하고 있는 게 사실이다.
대부분의 대기업들 스스로가 심각한 자금난과 함께 자체적으로 대대적인 구조조정을 단행하면서 벤처기업에 대한 지속적인 지원을 할 수 없는 처지에 몰려있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IMF 이후 눈에 띄게 늘고 있는 게 바로 분사다. 분사는 구조조정을 단행하면서 필연적으로 수반할 수밖에 없는 대량 해고의 문제점을 해결할 수 있는데다 그 동안 대기업에서 쌓아온 노하우를 외부에서 다시 모기업에 환원시킬 수 있다는 점에서 더욱 각광받고 있다. 비록 분사대상이 첨단 기술을 담보로 한 벤처기업의 성격과는 달리 제품생산이나 총무, 서비스 등에 한정돼 있지만 기업이 훌륭한 창업보고의 역할을 수행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좋은 사례다.
삼성전자의 경우 지난해부터 총 60여개의 사내사업부를 종업원지주제 형태로 분사시켰다. 이것은 곧 60여개 기업이 새로 탄생했다는 것을 의미한다.
독립법인으로 탈바꿈한 기업들은 오디오 제조·생산전문업체인 중국 혜주 삼성법인을 비롯 삼성전자서비스, 판매전문업체인 한국전자유통, 물류전문업체인 토로스 등이 대표적인 기업들이다.
LG전자도 총무지원업체인 휴먼풀, 서비스전문업체인 LG전자서비스, 주물제조업체인 캐스텍코리아 등 4개 업체를 종업원지주회사 형태로 분사하고 분사된 업무전반을 분사업체로부터 아웃소싱 형태로 지원받고 있다. 대우전자도 서비스부문과 디지털피아노사업부문 등 2개 사업부문을 각각 대우전자서비스, 벨로체 등으로 분사시킨 바 있다.
현재 사내벤처로 가장 활발히 움직이고 있는 것으로 알려진 한국통신의 벤처기업들도 비록 기술집약적이라는 벤처기업의 성격을 갖고 있지만 대부분 종업원들에 의해 창업되고 있다는 점에서는 분사개념으로 파악할 수 있다.
SW유통사업을 벌이고 있는 소프트가족, 국내 이동통신사업자를 대상으로 통화영역을 확장하는 사업을 펼치고 있는 쏠리테크, 통신선로관리스템(TOMS) 개발을 맡고 있는 한국통신정보기술(주) 등이 대표적인 사례다.
삼성전관은 지난해부터 강도높은 사업구조조정을 벌여 33개의 분사기업과 1개의 벤처기업을 탄생시켰다. 대표적인 분사업체로 생산공정 일부가 독립한 영성전자, 사내식당과 차량서비스를 담당하고 있는 원기업, 물류관련 업무를 담당하는 로지피아, 사내 신문과 판촉물을 담당하는 드림미디어 등이다. LED사업팀 45명으로 출발한 빛샘사는 벤처기업 1호로 이 회사의 자본금 6억원 중 19%는 삼성전관이, 10%는 창업투자사가, 나머지 71%는 전종업원이 공동으로 출자했다.
오리온전기는 소형 STN LCD 및 TN LCD생산부문을 담당하는 ODT사를 비롯해 해외법인에 자재를 공급하는 참무역, 통신기기나 전산 소모품의 구매대행 및 관리를 담당하는 스피드 등을 분사시켰다.
삼성전기는 오래전부터 사내 기업가제도를 운영하면서 일부 생산품목을 독립시켜왔는데 SMPS 생산을 맡은 월드텍과 케이블TV컨버터를 생산하는 코바스 등이 있다. 이와함께 간접부문의 분사화도 추진해 인력관리회사인 휴먼뱅크와 에스엠테크, 물류회사인 로젝스와 엑스파트를 각각 설립했다.
LG정밀도 스위치·가변저항기 사업을 EBO로 분사, 포스텍전자를 설립했다. 이 회사는 포스텍전자에 공장 일부를 임대하는 한편 외국 기술제휴업체와 협력관계도 그대로 승계시켜 주는 등 적극적인 지원을 아끼지 않고 있다.
현대전자는 PC사업부를 멀티캡으로 분사시켰으며 홈오토메이션사업을 현대통신산업에 양도하면서 19%의 지분을 출자했다. 그러나 이처럼 대부분 그룹계열사들을 중심으로 이루어지고 있는 벤처기업지원제도나 분사는 순수한 차원에서 기술력을 갖고 있는 벤처기업들을 지원하는 것보다는 자사의 이익과 구조조정이라는 목적에 의해 어쩔 수 없이 이루어지고 있어 한계점을 갖고 있는 것은 분명하다.
따라서 순수한 벤처창업 및 이를 육성하기 위한 몫은 이윤추구를 최고의 선으로 지향하고 있는 기업보다는 정부, 개인투자자들에 의해 이루어지는 게 바람직하다.
그러나 동기가 어떻든 최근 대기업들이 중소기업 창업의 밑바탕이 되고 있는 것은 사실이며 이를 통해 대기업과 중소기업, 벤처기업 들이 각자의 역할을 정해 서로가 생존할 수 있다면 매우 바람직한 일이 아닐 수 없다.
대기업들의 벤처기업에 대한 지원과 분사를 통한 종업원들의 창업에 대한 지원은 침체된 우리 경제에 활력을 불어넣고 있어 이를 적극 권장하고 확대할 수 있는 정부 차원의 지원대책이 조속히 마련돼야 한다는 게 전문가들의 공통된 지적이다.
<양승욱기자 swyang@e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