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소프트웨어 개발회사와 대학들이 대학의 정품 소프트웨어 공동 구매에 원칙적으로 합의함에 따라 지난 3월부터 시작된 검찰의 대학 불법 소프트웨어 단속 문제는 일단 해결의 실마리를 찾은 것으로 보인다.
소프트웨어 회사를 대표하는 소프트웨어재산권보호위원회(SPC·위원장 김정)와 대학을 대표하는 전국대학정보전산기관협의회(회장 김정선)는 지난 25일 정보통신부 회의실에서 모임을 갖고 대학내 정품 소프트웨어 보급을 위해 공동 노력하기로 합의했다고 밝혔다.
김정선 전국대학정보전산기관협의회장은 『앞으로 대학이 구입하는 소프트웨어에 대해 그동안 행정용과 교육용 두 가지로 구분했던 것을 모두 교육용으로 인정해 저렴하게 구입할 수 있도록 하고 또 당초 SPC가 6월 15일까지로 못박았던 특별 할인혜택 기간을 7월 15일까지 한달간 연장하기로 했다』고 설명했다.
그는 『대학이 이 기간에 공동으로 구입하는 제품에 대해서는 기존 교육용 소프트웨어보다 싼 가격에 공급받고 또 1학기가 끝나는 8월말까지 대학에 대한 검찰의 추가 단속 및 고소를 하지 않기로 합의한 것도 큰 소득』이라고 덧붙였다. SPC도 『대학을 상대로 제기했던 손해배상청구소송의 취하도 적극 검토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그러나 이번 합의를 바라보는 대학 관계자들의 반응은 크게 엇갈린다. 지난 3월부터 본격화된 검찰의 대학내 불법 소프트웨어 단속 문제가 비로소 해결의 실마리를 찾았다는 긍정적인 평가도 있지만 아직 낙관하기 어렵다는 신중론도 만만치 않다.
특히 학교에서 소프트웨어를 구입하는 이해 당사자인 대학 전산원장들로부터 회의적인 반응이 강하게 표출되고 있다. 우선 국민대 원종진 교수는 『지난 25일 정보통신부 회의실에서 열렸던 회의의 분위기는 모든 칼자루를 SPC가 쥐고 있어 전국대학정보전산기관협의회는 마지못해 이에 따라가는 듯한 인상을 받았다』고 말했다. 제품을 판매하는 회사와 그것을 구입하는 고객의 입장이 완전히 뒤집혔다는 하소연이다.
그는 또 『이제 협의회가 앞장서서 정품 소프트웨어 구입을 문서로 결의했으니만큼 SPC도 최근 부산지역 2, 3개 대학을 상대로 제기한 손해배상청구소송부터 취하하는 것이 문제를 원만하게 해결하는 옳은 순서』라고 주장했다.
현재 SPC로부터 약 2억원의 손해배상을 요구받고 있는 부산 S대학 K교수는 더 근본적인 문제를 제기했다. 그는 『대학 등에 판매하는 아카데미판의 할인가격을 합리적으로 제시하는 회사가 의외로 적어 큰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털어놓았다.
일부 회사들이 시장 점유율을 높이기 위해 여러 가지 범용 소프트웨어를 아카데미(학생용) 패키지로 묶어 터무니없이 싼 덤핑가격을 부르기도 하지만 정작 학교 수업에 필수적인 비주얼 베이직이나 # 등 소프트웨어 개발언어, CAD·CAM 등 그래픽 프로그램을 공급하는 외국 회사들은 아직 통일된 가격조차 내놓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대부분 외국 회사의 한국 법인인 이들은 사실 독자적으로 제품가격의 할인을 결정할 권한이 없다는 설명이다.
이러한 문제는 앞으로 협의회가 각 소프트웨어 공급업체들과 가격협상을 벌이는 과정에서 더욱 큰 혼란을 낳을 것이 분명하다. 또 대학마다 사용하는 소프트웨어의 종류가 큰 차이가 나는 상황에서 협의회가 이들 제품을 공급하는 모든 업체와 가격협상을 벌이는 것도 현실적으로 어렵다는 지적마저 대두되고 있다.
그러나 문제점을 정확하게 인식하면 그 해결책도 나오는 법이다. 어렵게 첫 발걸음을 뗀 대학의 정품 소프트웨어 사용 움직임이 정착되려면 우선 칼자루를 쥐고 있는 소프트웨어 공급회사들이 앞장서서 고객인 대학의 어려운 예산사정을 감안, 합리적인 제품 가격을 하루 빨리 제시해야 한다는 주장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이 과정에서 불공정 경쟁 문제도 반드시 극복해야 할 과제로 지적되고 있다. 정보통신부가 「한 회사가 시장 점유율을 높일 목적으로 여러 가지 범용 소프트웨어를 아카데미(학생용) 패키지로 묶어 정상가보다 훨씬 싸게 판매하는 사이트 라이선스」가 명백한 불공정 거래에 해당한다며 앞으로 이러한 행위를 제재하겠다는 입장을 분명히 밝히고 있는 점도 유의해야 할 만한 대목이다.
또 대학 측으로서도 단속만 피하고 보자는 소극적인 자세 대신 정품 소프트웨어의 구입이 이제 거스를 수 없는 대세라는 점을 인식하고 이에 필요한 예산을 책정하는 데 인색하지 말아야 한다.
<서기선기자 kssuh@e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