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전자통신계측기시장이 한국HP 아성의 붕괴조짐에 따라 급격한 시장판도 변화를 예고하고 있다. 올해 최소한 3000억원 규모로 예상되는 이 시장에서 국내 계측기기업계들은 시장점유율을 급속히 확대하면서 70∼80%였던 한국HP의 시장점유율을 50∼60%대까지 끌어내리고 있다.
3일 관련업계에 따르면 전자계측기시장에서 수년간 선두였던 한국HP는 이처럼 후발·국내외 업체들의 집요한 공세로 입지가 크게 흔들리고 있다.
일본 어드밴테스트 등 후발업체가 잇따라 차세대 전자계측기시장을 겨냥한 제품을 내놓고 영토확장에 나서고 있어 올해를 기점으로 한 시장판도의 대변동이 불가피할 전망이다. 더욱이 그동안 이 분야를 등한시했던 토종업체들이 통신분야의 기술개발 및 영업망 확충에 본격 나서고 있다.
경기불황으로 크게 위축됐던 전자계측기시장이 다시 살아나고 있다.
한국통신을 필두로 삼성전자·LG정보통신 등 주요 통신업체가 통신망·단말기·시스템과 연관된 연구개발(R&D) 및 완제품 검사용 계측기·측정장비 구매를 크게 늘리고 있다.
또 벤처기업·학교·중소업체 중심의 첨단계측기 수요와 통신업체들의 차세대 공중통신망(IMT 2000)·무선가입자망(WLL) 등 광대역 코드분할다중접속(WCDMA)방식 단말기 및 시스템 개발용 제품 수요도 급증하고 있다.
업계는 WCDMA 분야를 포함한 올 전자계측기시장의 성장 규모를 지난해 대비 50∼100% 수준으로 보고 있다.
그동안 국내 전자계측기시장을 준독점해 온 한국HP의 아성이 크게 흔들리고 있다. IMF전까지만 해도 70∼80% 정도였던 시장점유율은 최근 50∼60%대까지 떨어졌다.
한국HP의 매출액은 지난해 1억5000만달러를 기록, 97년 매출의 42%에 불과했다. 일본 어드밴테스트, 독일 로드&슈와츠 제품을 국내에 공급하는 동화국제상사, 하나기역의 매출액이 지난해 40∼50%씩 성장한 것에 비교할 때 HP의 고전을 여실히 보여주는 대목이다.
이는 경기불황으로 제품 인지도나 브랜드 이미지보다 가격과 성능을 보고 제품을 구매하는 경향이 자리잡았기 때문이다. 이같은 분위기는 올해까지 이어지면서 「HP 독주체제」가 「경쟁 체제」로 급속히 전환될 것임을 예고하고 있다.
토종 계측기업체들이 잇따라 전자·통신 분야사업 강화에 나섰다. 흥창은 이동통신용 계측기 생산라인을 증설했으며 올해 6, 7종의 신제품을 대거 선보이면서 기존의 범용계측기보다 부가가치가 높은 통신 계측기 분야를 집중 육성한다는 전략이다.
LG정밀도 아날로그 계측기·오실로스코프 등 범용 계측기 분야를 분리하는 대신 2.7㎓ 파장분석기 등 전자통신 계측기 사업에 집중키로 했다.
미국 IFR사와 공동기술 개발에 나서 가격 중심의 중저가 제품보다 성능과 기능상 우위인 고가품 위주의 전략을 펼칠 계획이다. ED도 학교와 실험실을 겨냥한 전자·통신계측기 위주로 사업 품목을 강화하면서 틈새시장 공략에 나섰다.
<강병준기자 bjkang@e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