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통문화와 디지털 기술의 화려한 접목

 요즘 신세대들은 뚝배기에 담긴 청국장보다 콜라와 햄버거를 더 즐겨 먹는다. 마이클 조던의 은퇴에 충격을 받고, 전국씨름대회 우승자보다 미국의 마크 맥과이어가 얼마나 홈런을 치고 있는지 더 궁금하다. TV에 국악이 나오면 과감하게 리모컨을 찾지만 힙합과 랩 음악에는 어김없이 열광한다.

 한복 입는 법은 잘 모르면서도 동경의 신주쿠나 뉴욕에서 유행하는 패션에 대해 모르는 것은 부끄럽게 여기는 것이 오늘 우리 젊은이들의 현주소다. 높은 빌딩과 아파트의 숲 속에서 우리는 서양의 문화를 너무나 자연스럽게 향유하고 있다.

 많은 사람들이 우리 나라 사람들이 오랜 역사와 전통문화를 가지고 있으면서도 정작 그 내용에 대해 알려고 하는 노력에는 소홀하다는 지적을 한다. 고려시대의 청자가 왜 화려한지, 조선시대의 백자가 왜 아름다운지에 대해 느끼는 국민들이 얼마나 될까. 석굴암이나 수원의 화성이 왜 중요한 문화재인지 알고 있는 사람들은 몇 명이나 될까.

 전문가들은 우리들이 우리의 것을 외면해온 가장 큰 이유로 오랫동안 우리의 전통문화가 일부 「학자들만의 것」이었다는 점을 든다. 역사에 대해 공부하는 사람들조차 팔만대장경을 공부하기 위해 합천 해인사를 찾아가고 석굴암이나 첨성대를 보기 위해 수시로 경주를 방문하기는 어려운 일. 더구나 생활에 쫓기는 일반인들에게는 어려운 한자와 전문용어로만 이뤄진 문화재나 전통문화는 더욱 멀게만 느껴진다.

 최근 우리 전통문화의 디지털화를 통해 이같은 문제점을 해결하고 우리 고유의 전통문화를 오늘에 되살리려는 노력이 활발하다. 우리의 전통 문화유산을 디지털화하면 직접 그 문화재나 유물이 있는 곳에 가지 않더라도 우리 고유의 향기를 느낄 수 있다. 뿐만 아니라 풍부한 해석과 자료 덕분에 훨씬 쉽게 그 문화재의 가치와 만든 뜻을 알 수 있다.

 민족문화추진위원회와 세종대왕기념사업회가 공동으로 펴낸 「조선왕조실록」, 북한판 「팔만대장경 해제」 열 다섯 권을 디지털 데이터로 바꿔 놓은 「CD롬 팔만대장경」, 500년 고려의 역사를 한 곳에 모아놓은 「CD롬 고려사」, 민족문화추진위원회가 내놓은 CD롬 「동양고전」 등은 학술자료로도 손색이 없는 디지털 문화재다. 「한국의 전통춤」 「한국의 그림」 이외에도 우리 고유의 문화유산을 디지털 자료로 만든 예는 얼마든지 있다.

 이와 함께 최근에는 인터넷으로도 서비스 범위를 넓혀 우리나라는 물론 세계 어디서나 우리의 전통문화 자료를 손쉽게 구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정신문화연구원이 지난 97년부터 인터넷을 통해 서비스하는 「디지털 한국학(http://www.unitel.co.kr/kordb/)」은 그 대표적인 예. 이곳을 이용하면 한국학 논저목록과 삼국사기, 한국문화강좌 등 다양한 자료를 손쉽게 검색할 수 있다. 이밖에 국립중앙박물관은 우리 문화재의 디지털화를 추진하고 있고 각 지방자치단체에서도 해당 지역의 문화유산을 디지털화하려는 시도를 하고 있다. 이밖에 한국지식문화재단은 한국과 관련된 갖가지 정보를 모아놓은 「치우(http://www.chiwoo.net)」란 홈페이지를 구축해 서비스하고 있으며 국악 전문 인터넷 방송을 제공하는 「코리아뮤직(http://www.music­corea.com/)」도 인기 있는 사이트로 부상하고 있다.

 우리 전통문화의 디지털화는 단순히 우리가 가지고 있는 문화유산이나 전통문화를 디지털 정보로 보관하고 쉽게 열람할 수 있도록 한다는 의미만 있는 것은 아니다. 고궁이나 박물관 깊숙한 곳에 보관되어 있는 전통문화와 유물을 오늘 우리의 생활 속으로 다시 끌어 낼 수 있다는 의미가 더 크다.

 『우리가 사는 방식이나 생활하는 관습이 모든 오랜 전통문화에 뿌리를 두고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의 전통문화가 단순히 「옛날 사람들이 살던 방식이나 오래된 유물」로만 존재하고 오늘 우리의 삶과 교류하지 못한다면 훌륭한 문화유산이 어떤 의미가 있겠습니까.』

 우리 역사를 인터넷을 통해 서비스하는 한 역사학도의 말이다. 필요한 사람들이 수시로 보고 새로운 내용을 추가할 수 있는 문화유산이야말로 우리의 생활 속에 살아있는 전통이라는 것.

 역사에 등장하는 장소를 이용해 다양한 관광상품을 개발하고 그 나라를 상징하는 문화상품을 만드는 외국과 달리 우리에게는 이렇다할 문화상품이 없는 것도 우리 전통문화와의 대화가 부족한 탓이다. 인터넷이나 CD롬을 통해 누구나 쉽게 우리의 전통문화를 접할 수 있다면 우수한 우리의 문화유산들을 세계적인 것으로 만들 수 있게 될 것이다. 김치는 고유상품의 세계화에 뒤처져 우리의 것을 다른 나라에 내준 좋은 예다. 그러나 한시라도 빨리 우리 전통문화의 디지털화와 세계화를 추진하지 않으면 제2, 제3의 김치는 얼마든지 나올 수 있다.

 『야마하 등 일본의 전자악기 업체들은 이미 수년 전부터 우리 나라 고유 악기의 음원 샘플을 만들어 세계 시장에 공급해 왔습니다. 우리가 못하고 있는 일을 일본이 먼저 하고 있는 셈이지요.』

 한 전자음악 전문가의 말이다.

 우리 문화의 향기를 보다 많은 사람들이 이해할 수 있는 보편적인 언어로 표현하고 이 씨앗을 세계로 전파하는 것이 오늘 우리들에게 선조들이 남긴 숙제다. 이와 관련해서는 전통문화 유산 원본의 디지털화뿐만 아니라 좀더 대중적으로 활용할 수 있는 다양한 응용상품 개발에도 힘을 써야 할 것이다.

<장윤옥기자 yojang@e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