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통문화를 위한 컴퓨터 기술

 첨단기술이 전통문화를 되살린다. 3차원 컴퓨터그래픽·가상현실과 같은 기술을 이용하면 우리의 문화유산을 디지털화하고 자연에 의해 훼손된 문화재의 원형을 찾아내는 일도 가능하다. 몇년 전 시스템공학연구소(SERI, 현 한국전자통신연구원 컴퓨터 소프트웨어기술연구소)가 시도했던 「미륵사지 서탑 프로젝트」는 과학기술로 건축문화를 복원한 좋은 예다. 국보 11호인 미륵사지 서탑은 서기 600년경 목탑에서 석탑으로 이행했던 과도기적 건축양식을 보여주는 중요한 문화재다. 한쪽이 반쯤 무너진 채 6층까지 남아 있는 이 탑의 원형을 복원하기 위해 미륵사지팀은 솔리드 모델링(Solid Modeling)기법을 이용했다.

 솔리드 모델링이란 목수나 석공이 작품을 만드는 실제 순서와 똑같이 물체의 형상을 만들어내는 3차원 컴퓨터그래픽 기법이다. 이 방법을 이용하면 각 부분의 치수를 매개변수로 설정하고 집합연산기능을 이용해 튀어나온 부분을 근거로 파여 있는 부분의 형상까지 자동으로 짜 맞출 수 있다.

 미륵사지의 기본구조는 목탑과 비슷하다. 탑의 1층은 정면 3간, 측면 3간으로 이루어졌고 탑 내부 중앙에는 커다란 돌기둥이 서 있다. 2층 이상부터 탑신이 얕아지면서 각 부분의 구조가 간결하게 생략되고 위로 올라갈수록 폭이 줄어든다.

 이같은 구조를 바탕으로 미륵사지팀은 현존하는 부분에 대해서는 문화재연구소에서 작성한 실측도면 데이터를 입력했다. 없어진 부분의 경우 좌우 대칭이라는 가정과 동탑의 복원도면을 참고했다. 이때 자료입력은 오토캐드로, 탑의 질감 유출은 소니사의 비디오카메라와 트루비전사의 2차원 페인팅 소프트웨어를 사용했으며 그래픽 워크스테이션도 동원됐다.

 우리 고유의 소리도 보존돼야 할 문화 유산이다. 최근 에밀레종의 신비한 소리가 원음에 가깝게 재현, 화제가 되고 있다. 숭실대 배명진 교수팀은 6개월의 연구 끝에 모형 에밀레종 내부에 음원모듈을 탑재, 에밀레종 특유의 웅장한 종소리를 만드는 데 성공했다. 배 교수는 지난해 5월 학회 참석차 샌프란시스코에 갔다가 에밀레종 소리를 상품화해야겠다는 아이디어를 얻었다.

 배 교수는 에밀레종 소리의 비밀이 오므라진 주둥이와 두툼한 입술에 있다고 설명한다. 타종을 하면 안에서 휘돌아 치는 공기가 밖으로 새나오지 않기 때문에 여운이 길게 남는다는 것. 에밀레종 소리는 복합적인 음원성분으로 이루어져서 우리의 심금을 울리는 소리가 끊어질듯 이어지면서 맥놀이 현상을 유지하게 된다. 맥놀이 현상이 계속되면서 2.7초의 들숨과 2.7초의 날숨을 교대로 반복해 약 5.4초의 강력한 소리가 이어지는 것이다. 이러한 들숨과 날숨의 주기는 인간이 가장 편안한 상태에서의 호흡하는 간격과도 일치한다. 그래서 에밀레종 소리는 첫 타종시에 나타나는 5.4초간의 강렬한 소리에 마음을 뺏기고 반복되는 맥놀이로 호흡을 가다듬게 되는 것이다.

 배 교수팀은 모형종에 사운드칩을 삽입하는 방법으로 우리 민족의 숨결을 느낄 수 있는 고유의 문화유산인 에밀레종 소리를 재현했다. 앞으로는 에밀레종에 대한 정보를 인터넷을 통하여 다국어로 전세계에 제공하고 관광상품 개발도 추진할 계획이다.

<이선기기자 sklee@e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