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유산 디지털에 도전하는 업체들

21세기는 문화전쟁시대다. 전세계가 인터넷이라는 단일망으로 묶이면서 어느 한 국가의 문화가 그 나라에만 적용되는 것이 아니라 전세계로 퍼져나가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선조들이 남긴 우리 문화를 제대로 보존, 발전시키지 못하면 어쩔 수없이 외세의 문화침투를 당할 수밖에 없는 게 현실이다.

 따라서 우리 문화유산의 우수성을 알리고 이를 디지털로 가공해 전세계로 확산시키는 것은 우리 세대가 짊어져야 할 짐인지도 모른다.

 지금 정보통신업계에는 우리의 전통문화를 디지털로 가공해 많은 국민들에게 우리 문화의 우수성을 알리려는 기업들이 있다.

 비록 당장은 큰돈은 벌지 못해도 후대에 물려줄 우리문화를 계승 발전시키기 위해 앞장선다는 점에서 이들의 자부심은 대단하다.

 우리 문화유산의 디지털화를 선도해 온 대표적인 업체로는 서울시스템(대표 임승택)을 꼽을 수 있다. 이 회사 직원들은 문서표준 DB부터 디지털 서체, 한국학 DB, 한자와 고문서 입력시스템 등에 이르기까지 업계 최고의 기술력을 지녔다는 자부심으로 일하고 있다.

 서울시스템은 우리의 역사와 문학 등 지적문화유산과 정보기술을 접목시켜 한국학 전산화에 앞장서 온 공로로 지난해 제11회 정보문화 대상을 수상했다. 「국역 조선왕조실록 데이터베이스 CD롬」으로 우리의 문화유산을 세계에 알리고 역사학 DB의 새로운 지평을 열었다는 점에서 특히 후한 점수를 받았다.

 이 회사는 또 지난 45년 이후 국립중앙도서관이 소장하고 있는 단행본 및 석박사 학위정보를 묶은 「한국 문헌목록」을 비롯해 우리나라 민속자료를 모은 「국립 민속박물관」, 국가지정 문화재 총람과 영문판 한국의 민속자료 등이 포함된 「문화유적 총람」에 이르기까지 수십 편의 전자책을 펴내며 문화유산의 디지털화 작업을 꾸준히 추진해 오고 있다.

 서울시스템은 또 총 6만5000여자에 달하는 방대한 학술용 한자의 컴퓨터 코드화와 이를 입력하기 위한 전자서체 개발로 국학 연구자료의 전산화기반을 조성했다.

 그 과정에서 「뿌리 입력법」이라고 불리는 고속 입력법을 개발, 한문 원문자료를 효율적으로 전자 부호화할 수 있는 체제를 구축했다.

 이 회사는 지난해 부도로 85년 7월 설립후 최대 위기를 맞았지만 그동안 축적한 기술력을 인정받아 법원과 채권단으로부터 화의인가를 받고 과감한 구조조정을 거쳐 올해 초 재도약의 발판을 마련했다.

 앞으로 차세대 문서변환시스템인 PDF솔루션, 새로운 신문제작전산시스템인 뉴스2000, 조선왕조실록 CD롬 특별보급판 판매 등에 주력할 계획이다.

 누리미디어(대표 최순일)는 가장 한국적인 데이터베이스를 꿈꾸는 벤처업체다. 창업 2년이 채 안됐지만 「고려사」 「팔만대장경」 「발해사」를 잇따라 출시하면서 한국학 DB 분야의 전문업체로 뿌리내렸다. 이미 하버드대, 컬럼비아대, UCLA대 등이 누리미디어의 전자책을 소장하고 있을 만큼 해외의 한국학 연구기관에도 이름이 알려져 있다.

 한국학 DB 개발업체들은 대부분 소명감 때문에 이 비즈니스에 뛰어들었다고 말한다. 하지만 최순일 사장은 『돈 되는 한국학 데이터베이스 사업을 하겠다』고 당당히 밝힌다.

 돈이 돼야 뛰어난 인재들이 모이고 경쟁업체들이 늘어나고, 그래야 한국학 데이터베이스 시장이 꽃필 수 있다는 게 최 사장의 소신이다.

 누리미디어 직원들은 모두 이 분야의 전문가들이다.

 이들은 꽤 괜찮은 중견기업에 다니다가 그만두고 새롭게 출발했다. 산고 끝에 첫 제품인 「고려사」가 나오던 날 모두 자기 일처럼 기뻐했다.

 『고려사가 나오던 날은 집에 못 들어간 직원들이 있는가 하면 지갑과 차열쇠, 핸드폰까지 잃어버린 사람도 있었습니다. 뭔가 해냈다는 기쁨에 들떠 정신을 차릴 수 없을 만큼 술을 마셨기 때문이죠.』

 최순일 사장은 누리미디어가 고생도 함께 하고 성공의 열매도 함께 나누는 젊은 업체라는 점을 강조한다.

리미디어는 큰 회사가 아니라 전문회사를 지향한다. 소량 다품종 생산, 때때로 주문생산 형태의 제품도 취급해야 하는 시장의 특성상 기동성 있고 부대비용을 최소화할 수 있는 전문회사가 유리하기 때문이다.

 잔손이 많이 가는 데이터베이스 개발의 특성을 감안해 기획과 개발을 제외한 교정, 스캐닝 등 외주 가능한 작업은 철저히 아웃소싱하고 있다.

 이 회사는 제품에 사용되는 모든 프로그램을 고집스럽게 자체 개발한다. 시장에 이미 나와 있는 외국 프로그램은 출발부터 우리의 실정을 고려한 제품이 아니라서 불편한 점이 한 두 가지가 아니기 때문이다.

 한국의 정신과 전통을 현대의 최첨단 정보기술로 재현하겠다는 자부심을 갖는다면 이는 당연한 일이라는 설명이다.

 누리미디어는 앞으로 일반인도 쉽게 살 수 있는 보급형 제품을 출시하는 데 역점을 둘 계획이다. 다양한 학력과 경험을 가진 사람들이 어우러져 일한다는 것도 쉬운 일은 아니지만 한국학데이터베이스분야의 간판회사로 발돋움한다는 열정과 목표가 있기 때문에 이 회사 직원들은 고생도 즐겁다고 말한다.

 인천에 둥지를 틀고 있는 PC게임 개발사 트리거소프트(대표 김문규)는 우리 역사를 소재로 한 게임으로 유명하다. 특히 96년 발표한 「충무공전」과 지난해 내놓은 「장보고전」이 대표작. 「장보고전」의 경우 유통업체의 부도로 인해 판로가 막히는 우여곡절을 겪었지만 게이머들의 호응으로 국산게임 히트작이 됐다.

 앞으로 이 회사는 역사 속에서 소재를 얻어 한국적인 냄새가 물씬 풍기는 캐릭터가 등장하는 전략시뮬레이션게임으로 내수는 물론 해외시장까지 공략할 계획이다.

 트리거소프트는 최근 에인절과 손잡고 개발에 전념할 수 있는 자금력을 확보, 후속 버전 출시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넥슨(대표 이민교)은 고구려를 배경으로 한 그래픽 온라인게임 「바람의 나라」로 성공을 거둔 벤처업체.

 대부분의 네트워크 게임들이 끔찍한 살육과 전쟁을 다루고 있는 반면 바람의 나라는 눈에 거슬릴 만한 선정적인 장면이나 폭력적인 내용을 다루지 않는다는 게 특징.

 넥슨은 최근 이 게임이 96년 4월 상용서비스에 착수한 이래 3년 만에 하루 평균 동시접속자 수가 1000명을 넘어섰다고 발표해 꾸준한 인기를 과시했다.

 이 회사는 실리콘밸리에도 진출, 바람의 나라 영문판을 인터넷으로 서비스하고 있다.

 한양시스템(대표 강경수)은 폰트업계의 대부로 잘 알려진 업체. 한글폰트 시장에서 이 회사만큼 탄탄한 기반을 닦은 업체도 드물다.

 국내에서 유통되는 워드프로세서와 프린터 그리고 OS에 가장 많이 쓰이는 한글서체가 바로 한양시스템의 제품이다. 워드프로세서 아래아한글 역시 2.0 버전부터 이 회사의 폰트를 채택했다.

회사는 올해 어떤 한글 문서든 네트워크상에서 자유롭게 주고받을 수 있게 해주는 전자문서 파일포맷 프로그램 젯다큐먼트로 미개척분야인 인터넷 전자도서관 시장에 도전장을 던졌다. 젯다큐먼트는 어떤 문서든 쉽게 읽고 프린트할 수 있도록 만들어 준다는 점에서 전자도서관에 꼭 필요한 프로그램이다.

 젯다큐먼트가 있으면 한글 코드 처리로 원하는 논문제목이나 키워드를 입력하면 찾아주기 때문에 도서관 이용이 한결 편리해진다.

 강경수 사장은 젯다큐먼트가 온라인 문서관리를 위한 최적의 솔루션이라고 장담한다.

 강 사장은 외국제품인 어도비시스템스의 아크로뱃이 시장을 선점하고 있긴 하지만 젯다큐먼트는 파일 크기가 작아 온라인 전송속도가 매우 빠르고 완벽한 한글지원과 검색기능을 갖고 있어 시장성이 밝다고 자신감을 내비친다.

 연세대학교 국학연구원 산하 족보연구회(팀장 설성경 교수)는 최근 홍씨 문중의 족보를 2장의 CD롬 타이틀에 담는 작업을 완료했다.

 연구회는 홍씨 문중에 대한 역사적 사실을 확인하기 위해 고려사와 조선왕조실록을 비롯한 역사서와 다른 문중의 족보를 대조해 족보에 잘못 기재된 사항과 누락된 인물정보를 보충했으며 전문을 한글로 평이하게 번역했다.

 연구회는 고려의 개국공신인 복지겸을 시조로 하는 면천 복씨와 제주도 3성씨 가운데 하나인 제주 양씨 집안의 족보도 CD롬 타이틀로 구축하고 있다.

 한국족보문화도 족보를 CD롬 타이틀로 제작해 주목받는 업체. 최근 남양 방씨 문중의 전자족보인 「남양방씨무인대동보」를 출시했다.

 남양 방씨의 유래와 유적사진, 주요 인물 등을 소개하고 족보에 관련된 참고자료를 담은 뿌리학습, 촌수를 계산하는 계촌법, 제례순서, 과거의 관직과 요즘의 관직서열을 비교해주는 고금관직 대조표까지 함께 수록해 좋은 평가를 얻고 있다.

 이처럼 고전의 디지털화에 도전하는 벤처업체들이 늘어나면서 박물관과 유적지에서만 만날 수 있었던 선조들의 정신적인 문화유산을 더욱 쉽고 편하게 접할 수 있게 될 것으로 보인다.

<이선기기자 sklee@e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