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를 상징하는 가야금, 거문고, 대금 등 국악기들은 지금까지 거의 전적으로 장인들의 감각에 의해 만들어졌다. 그 결과 이들 악기는 수 천년동안 우리 조상들의 지혜가 담겨있지만 아직 음 높이의 표준도 마련하지 못하는 등 취약점도 드러나고 있다.
컴퓨터를 이용해 국악기의 이러한 단점을 하나둘씩 해결하고 있는 사람들이 있다. 서울대 음향공학연구실의 성굉모 교수(전기공학부·52)와 그의 제자들로 구성된 20여 명의 연구원들이 바로 그 주인공이다.
지난 80년대 말 설립된 이 연구실은 그동안 컴퓨터를 이용해 가야금과 거문고 등 10여개 국악기의 음 높이를 측정한 후 이를 바탕으로 국악기의 표준화 및 개량작업을 추진, 큰 성과를 거두고 있다.
독일 아헨 공대에서 음향공학 박사 학위를 취득하고 지난 83년 귀국한 성 교수가 국악기의 음 높이 표준화에 관심을 갖게 된 것은 우연한 기회였다. 국악과의 한 동료 교수가 『국악기는 그것을 만든 사람과 연주자에 따라 음의 높이가 조금씩 다르기 때문에 여러 악기가 동시에 연주되는 관현악단 등의 공연에서 화음이 심하게 틀려 공연이 엉망이 될 때도 많다』며 하소연하는 말을 듣고 곧바로 음향공학연구실을 차려 이 문제에 본격 매달리게 됐다는 설명이다.
이 때부터 성 교수는 제자들과 같이 가야금, 거문고, 대금 등 10여 개에 달하는 국악기의 음 높이를 컴퓨터로 측정하는 지루한 작업을 반복하고 있다. 그는 또 이를 바탕으로 가야금과 징, 꽹과리 등 국악기를 현대에 맞게 개량하는 작업도 최근 국립국악원과 공동으로 추진하고 있다.
성 교수는 『장인들만 국악기 제작을 독점하던 시대는 지나갔다』며 『컴퓨터를 비롯한 첨단 과학기술을 이용하면 국악기의 음색 등을 얼마든지 현대적 감각에 맞도록 개량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또 『김덕수 씨가 이끌고 있는 사물놀이 패의 경우 최근 외국 순회공연에서 기대 이상의 성과를 거뒀지만, 유럽의 음악 비평가 중에는 징과 꽹과리 소리가 지나치게 높다고 지적하는 사람도 많았다』며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현재 금속과 교수들과 공동으로 국악 타악기를 개량하고 또 생산공정을 표준화시키는 연구를 수행하고 있다』고 밝혔다.
그렇다고 서울대 음향공학연구실이 모두 국악관련 연구만 수행하는 곳은 아니다. 이 연구실은 초음파 진단기의 개발과 바다 깊숙이 잠행, 침투해 들어오는 적의 잠수함 등을 찾아내는 수중음향 등의 분야에서도 괄목할만한 연구성과를 자랑하고 있다.
음향공학연구실의 조교로 일하고 있는 박경수 씨(박사과정·33)는 『전자공학의 입장에서 이러한 연구는 모두 신호처리라는 공통점을 갖고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또 『국악과 관련된 연구는 소리를 전자적인 신호로 기록·처리하는 작업이 대부분이지만 앞으로 우리나라 국악 현대화에 발판이 될 것이라는 믿음에서 특별한 애정을 갖고 있다』고 덧붙였다.
<서기선기자 kssuh@e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