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웨이브> 채소와 반도체

 지난해 고추 값은 높았다. 한 근에 1만원을 훌쩍 넘겼다. 그렇지만 그 전해는 그렇지 못했다. 한해 가격이 높으면 그 이듬해에는 가격이 곤두박질친다. 대부분 채소 값 사정은 이와 비슷하다. 그것은 마치 과수가 해거리를 하는 것과 흡사하다.

 채소 금새가 한해를 주기로 등락하는 것은 기후와 같은 몇몇 요인도 있지만 시장기능에 둔감한 대부분 농부들의 영농태도 탓이 크다. 어느해 작황이 좋으면 이듬해에는 그 작물 재배를 늘린다. 그러면 공급 초과로 인해 가격이 매우 낮게 형성되고 또 그 다음해에는 될 수 있는대로 재배량을 줄이는데 그러면 어김없이 공급이 달려 가격은 치솟는다. 그래서 현재까지 크건 작건 수급 불일치로 인한 가격 급등락의 악순환은 벌써 수십년째 계속되고 있다.

 올해 들어 반도체 시장이 회복되면서 가격도 많이 상승했다. 물론 일부 제품 가격은 다시 하락하고 있지만 전반적으로 볼 때 지난 2∼3년 전과 비교하면 많이 올랐다. 이같은 조짐 때문에 최근 들어 전세계 반도체업체들은 제품을 증산하기 위해 여념이 없다. 일본 NEC가 메모리 반도체 생산량을 종전보다 2.5배로 늘리는 것을 필두로 미국 마이크론테크놀로지, 한국의 삼성전자 등이 이 대열에 합류, 이들 업체가 증산하려는 규모는 엄청나다. 이같은 모습은 불과 1년 전까지만 해도 감산을 하고 그것도 모자라 생산라인을 축소했으며 심지어 많은 업체들이 반도체 사업을 포기하기까지 한 것과 대조적이다.

 반도체업체들이 3∼4년을 주기로 찾아오는 반도체 호황에 대비, 생산량을 최대한으로 늘림으로써 수익을 극대화하려는 것은 어찌보면 지극히 당연한 일이다. 그런데 데이터퀘스트나 세계반도체무역통계(WSTS) 등 시장조사기관은 올해 반도체 시장이 기껏해야 지난해보다 12% 가량 증가할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내년 이후도 수요가 그 전해보다 2∼3배 증가할 것이라는 전망은 찾아보기 어렵다.

 한정된 수요 속에 너나 없이 반도체를 증산하다 보면 공급초과로 인해 호황을 누리기는커녕 제값조차 받기 어려운 상황을 면치 못하게 되지나 않을지 우려된다. 반도체업체들이 농부들의 채소영농 방식을 닮아가기라도 하는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