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항기업계 "내실경영" 관심

 물량 위주로 사업을 꾸려온 저항기업체들이 최근 「내실경영」을 선언하고 나서 업계 내부는 물론 외부로부터도 비상한 관심을 끌고 있다.

 저항기업체들이 얘기하는 내실경영은 더이상 적자경영을 하지 않겠다는 것. 「울며 겨자먹기」로 종종 원가에도 미치지 못하는 가격에 납품해온 그동안의 사업관행을 되풀이하지 않겠다는 의지의 표현이다.

 여기에는 국내 저항기가격을 결정하는 주요업체들이 참여할 것으로 알려졌다. 업체들은 앞으로 물량만을 보고 사업하지 않겠다는 뜻을 분명히 하고 있다. 작은 규모라도 이익이 남는 경우에만 제품을 생산·공급하겠다는 의미다.

 업체들의 단호한 의지는 떨어질대로 떨어진 저항기가격에 대한 불만이 그 시발점이다.

 저항기는 대표적인 장치산업이다. 경험과 설비만 갖출 경우 웬만한 종류의 제품 생산이 가능해 업체들이 속속 등장하기 시작하고 경쟁이 치열해짐에 따라 가격이 급전직하했다. 여기에 대만업체들의 저가공세와 중국업체들의 물량공세가 가세했다. 지난해 불어닥친 IMF 한파는 저항기업체들의 목을 더욱 조였다.

 주요 세트업체들은 완성품의 가격경쟁력을 제고하기 위해 저항기업체들에 허리띠를 졸라맬 것을 요구했다. 가격인하가 대표적인 사례다. 「칼자루 논리」에 따라 저항기가격은 1, 2년 새에 바닥권으로 떨어졌다. 부도에 직면한 업체들이 하나둘 나타났다.

 저항기업체들은 이를 극복하기 위해 원가절감에 나섰다. 채산성을 확보하기 위해 가능한 모든 수단을 동원했다는 것이 업체들의 주장. 그러나 금방 한계에 부닥쳤다. 장치산업의 특성상 원가절감을 위한 획기적인 방법은 찾기 힘들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설명이다.

 벼랑끝에 몰린 저항기업체들이 내실경영을 해법으로 찾은 것은 이같은 이유에서다.

 내실경영은 저항기가격의 정상화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제품의 질이 경쟁력을 갖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공급과다 때문에 제대로 대접을 못받는 상황을 이제는 더이상 방치하지 않겠다는 것이 업체들의 주장이다. 한마디로 「남는 장사」를 하겠다는 것이다.

 이것은 대량판매에 연연하지 않겠다는 것을 뜻한다. 적은 물량이라도 이윤이 있을 때만 거래하겠다는 결연한 의지인 셈이다. 지금까지 해온 것처럼 물량공세로 덩치만 키우지는 않을 것이라는 게 업체 관계자의 설명이다.

 이는 최대 수요처인 가전업체들과의 거래도 조건이 맞지 않는다면 언제든지 끊을 수 있다는 것으로도 해석이 가능하다. 저항기업체들의 내실경영이 초미의 관심사로 부상한 것은 이 때문이다.

 지금까지 가전업체들은 「갑」의 위치에, 부품업체들은 「을」의 위치에 서 있었다. 가전업체들의 주장이 강하게 작용한 것은 당연했다. 저항기업체들이 선언한 내실경영은 이같은 상황을 역전시키겠다는 것으로까지 비쳐지고 있다.

 저항기업체들은 이를 통해 최소한 현재 진행되고 있는 세트업체·가전업체들 사이의 가격협상에서 유리한 위치를 점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저항기업체들의 주장은 단기적으로 현재 진행되고 있는 가격협상에 지대한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일부에서는 저항기업체들의 강경한 제스처가 효과를 보고 있다는 얘기까지 들리는 상황이다.

 그러나 이 또한 문제가 없는 것은 아니라는 게 업계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국내 전자산업은 대외적으로 극심한 가격경쟁의 회오리에 휩싸여 있다.

 그 여파가 부품업체들에까지 미치는 것은 당연한 일. 세트업체들이 살아남지 않고서는 부품업체들 역시 온전할 수 없다는 논리다.

 문제는 누구나 만족할 수 있는 가격수준인 셈이다.

 저항기업체들이 밝힌 내실경영은 다른 부품업계에까지 영향을 미칠 것으로 전망된다. 대부분의 부품업체들이 저항기업체들과 같은 고민을 갖고 있는 상황이기 때문이다. 이번 사건이 국내 전자산업의 발전을 도모하는 방향으로 매듭지어질 수 있을지 관심을 모으고 있다.

<이일주기자 forextra@e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