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유수의 완성품 제조업체인 A사의 해외 판매법인. 이 곳은 매년 괄목할 만한 매출신장세를 기록해 본사로부터 우수 현지법인으로 선정되기도 했다. 하지만 화려한 외형과 달리 속사정을 들여다보면 부실하기 짝이 없다.
매년 현지 매출의 상당 부분이 악성재고로 처리되는가 하면 반품처리되는 사례도 적지 않았기 때문이다. 연초에 본사로 신규 물량을 주문해 판매실적으로 잡았다가도 회계결산이 다가오는 연말이면 꼭 반품물량이 생겨나곤 한다.
회사로서는 당연히 골머리를 앓을 수밖에 없다. 그렇다면 이같은 현상이 발생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모 제조업체 관계자는 『실적이 곧 생명인 해외 판매법인으로서는 온갖 편법을 동원해서라도 외형을 유지해야 한다』는 것을 주 원인으로 지적한다. 제품의 거래와 대금결제 기간의 차이, 수작업에 의존하는 업무 프로세스, 체질개선을 수반하지 않는 조직관리 등이 빚어낸 「글로벌 오퍼레이션」의 허상이라는 얘기다.
하지만 부품구매에서 완성품 마케팅, 판매에 이르기까지 거래망의 세계화를 추구하는 글로벌 오퍼레이션 전략은 인터넷과 만나면서 새로운 국면에 접어들게 됐다. 개방성·보편성이 속성인 인터넷을 기반으로 투명하고 효율적인 전자거래 환경을 지구촌 전역에 구축할 수 있는 단계에 들어선 것이다.
이를 통해 얻어지는 효과는 가히 혁명적이다. 우선 각종 거래절차의 감축으로 인력·비용을 크게 절감할 수 있으며 제품 납기는 거의 「실시간」으로 단축할 수 있다. 새로운 유통채널로 인터넷이 활용되는 것은 물론 일일이 사람을 보내지 않고도 국내외 영업점에 사이버 마케팅을 지원할 수 있다.
물론 종전에도 부가가치통신망(VAN)으로 해외 부품조달업체와 전자거래를 구현한 사례는 있었다. 하지만 그 범위는 극히 제한적이었다. 우선 VAN 기반의 EDI는 비용이 만만치 않아 다수 업체들이 쉽게 접근할 수 없었다. 해외 각국의 통신인프라 수준이 천차만별인 데다 EDI 기술규격과 문서양식이 제각각인 점도 전자거래 광역화의 커다란 장애물이었다.
국내 기업 가운데 삼성전자·현대자동차 등 대기업 제조업체들이 인터넷을 내세워 글로벌 오퍼레이션에 바짝 다가서고 있다.
삼성전자는 지난해부터 「글로넷」 프로젝트를 본격화하면서 전자거래의 지구촌화를 추진중이다. 지금은 57개 국내외 사업장·현지법인을 연계, 전체 거래의 40%를 소화하고 있지만 내년까지는 90%대까지 끌어올릴 계획이다.
현대자동차도 국내 영업소·협력업체, 해외대리점을 인터넷으로 엮고 있다. 해외대리점의 경우 아직 일부지역에 국한되고 서비스도 부품구매·정비 등으로 제한적이지만 점차 확대한다는 계획이다.
하지만 인터넷이 열어 젖힌 글로벌 오퍼레이션 환경은 결코 모든 이에게 「꿈」을 주지는 않는다. 기술·마케팅·정보 경쟁력을 갖춘 강자만이 살아남을 수 있는 냉정한 공간이기 때문이다.
우선 인터넷은 조달과 판매의 정점에 있는 대형 제조·유통업체들이 강력한 바잉파워를 구사하도록 환경을 조성한다. 결국 거래관계의 헤게모니를 이들이 쥐게 되는 것이다.
전 지구촌으로 경쟁공간이 넓어지면서 자재 공급업체들은 남다른 경쟁력을 확보해야 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종전의 닫혀진 공간에서 안주했던 업체들은 인터넷 시대에 도태되기 십상이고 독보적인 경쟁력을 갖춘 기업은 거래망을 전세계로 넓히면서 덩치를 키울 수 있게 됐다. 국내외 판매망 조직들도 사이버공간이 대체하면서 조직내 핵심 역량 재배치가 예상된다.
그러나 인터넷 글로벌 환경의 발목을 붙잡고 있는 요인은 아직도 적지 않다. 삼성전자 정보전략그룹 관계자는 『모든 업무 플로를 인터넷 환경에 접목시키기 위해서는 시스템적인 구비조건이 필요하지만 면대면접촉, 수작업에 연연하는 전통적 관행도 불식돼야 한다』면서 구조개혁의 중요성을 지적했다. 이는 곧 내부 구성원들의 의식변화가 필수적이라는 뜻이기도 하다.
제도적인 걸림돌도 적지 않다. 밀수가 성행하던 시기에 만들어진 복잡한 국내 수출입 통관절차가 글로벌 인터넷거래에 걸림돌이 되고 있는 것은 단적인 사례다.
<서한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