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빌딩자동제어시스템(BAS)업계에서 벌어지는 제살깎기식 수주경쟁에 대한 「발주처 책임론」도 만만치 않게 일고 있다.
그동안 덤핑의 「주범」으로 몰려온 BAS업체들은 『지난 97년말 외환위기 이후 물량부족에 따른 업계의 과열경쟁이 주 요인이나 발주처의 행태도 덤핑에 한몫했다』는 주장이다.
특히 최근들어 『민·관을 막론한 모든 프로젝트 발주처들이 BAS업계의 물량부족 등을 틈타 설계가에 훨씬 밑도는 예가산정·가격깎기 등에 나서면서 덤핑의 도가 더할 수밖에 없었다』는 게 이들의 하소연이다.
◇덤핑 양상=IMF외환위기를 맞은 지난해 영종도 인천국제공항 BAS입찰에서부터 최근의 센트럴시티 빌딩 프로젝트에 이르기까지 BAS업계는 물량확보를 위해 어느 정도의 덤핑경쟁을 해온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예가의 70%를 밑돌면 덤핑으로 보는 업계 관행상 지난 1년간 나타난 덤핑양상은 정도를 넘었다는 비난을 면키 어렵다.
특히 경쟁사보다 열세에 놓였을 경우 발주처와 가격협상 과정에서 상대편이 상상도 못할 정도로 극단적인 가격을 제시하는 사례가 최근 드러나 심각성을 보여주고 있다.
하반기 이후 물량확보가 어려워지면 이러한 덤핑양상도 더욱 심해질 것이란 전망이다. 이는 결국 BAS시장 위축과 함께 관련업체의 도태 또는 구조재편까지 가져올 것으로 보인다.
◇발주처의 업체 후리기=발주처들은 설계가 기준으로 입찰 당일에 예가를 정해 최저가 입찰 또는 적정가(예정가격의 85%) 입찰을 실시한다.
그러나 IMF 이후 절대물량이 부족, 과열 수주전이 벌어지자 발주처들이 「업체 후리기」에 나서고 있다. 실제로 무역협회는 최소한 90억원선에 이르는 2차 프로젝트 설계가를 예가 60억원의 사업으로 축소시켰다.
센트럴시티의 경우는 더욱 심하다. BAS업체의 한 관계자는 『발주처가 경쟁참여사의 최저가를 흘리면서 무려 5차례나 가격협상을 했다』고 말했다. 이러한 과정을 거쳐 80억원짜리 프로젝트가 25억원대의 프로젝트로 바뀔 수밖에 없었다는 것이다.
물량수주에 급급해 이 「미끼」를 문 업체에 대한 비난과 함께 동정론이 엇갈리는 것도 이 때문이다.
◇대책과 향배=업계 전문가들은 지난 80년대 초 BAS산업의 국내 도입이래 이처럼 극심한 덤핑양상을 보인 유례가 없었다고 지적한다.
이러한 발주과정상의 문제점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업체들의 덤핑자제가 선행돼야 할 것으로 지적된다. 무역협회의 ASEM 1차 프로젝트 설계가가 180억원에서 100억원대까지 들쭉날쭉했다는 점은 업계의 덤핑양상에 발주처조차도 당황했었다는 단적인 증거다.
BAS업계가 공멸하지 않기 위해서는 업계의 덤핑자제와 함께 조달청 등 국가 발주처의 적정가 입찰제도 정착 노력 등이 병행돼야 한다고 전문가들은 지적한다.
다행스러운 일은 덤핑사태가 불거지면서 관련업계가 『손해보면서까지 입찰에 참여할 수는 없다』는 분위기로 바뀌고 있다는 점이다.
<이재구기자 jklee@e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