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래포럼> 소프트웨어 산업이 발전하려면…

이기호 두전컴퓨터 사장

 70년대 중반 필자가 대학에 다니던 시절에는 COBOL이나 FORTRAN 등 컴퓨터언어 관련서적을 가지고 다니면 주위에서 부러운 눈으로 바라봤다.

 컴퓨터 분야의 희소성과, 이 분야가 최첨단 미래산업이라는 전망 때문에 주변에서 무작정 컴퓨터 관련분야를 인정해 주었기 때문이다. 이로 인해 당시에는 자부심도 있었으며 간혹 컴퓨터 관련용어나 내용에 대한 문의, 대화가 있는 곳이면 얕은 지식이나마 설명하면서 곧잘 미래사회에 대해 분홍빛 전망을 제시하기도 했다.

 2000년을 눈앞에 바라보는 지금, 컴퓨터는 우리 주변 어디서나 자동차만큼 흔하게 접할 수 있게 됐다. 그만큼 우리생활 주변에 컴퓨터가 중요한 자리매김을 하고 있으며, 또 앞으로는 컴퓨터가 지금보다 더욱 모든 업무를 대신할 것이라는 점에 대해 어느 누구도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 되었다. 때문에 컴퓨터 문외한이 많은 40대가 가장 배우고 싶어하는 것이 컴퓨터라는 통계가 있듯이 이젠 일상생활에서 컴퓨터를 모르면 소외당할 지경에까지 이르게 되었다.

 그러나 매년 50% 이상의 팽창을 거듭해온 컴퓨터산업이라도 이면에는 컴퓨터 프로그램 개발에 종사하는 많은 사람들의 경우 자신의 직종에 대해 불만이 많았던 게 사실이다.

 특히 컴퓨터 프로그램 개발의 경우 3D업종이니 또는 40세 이전에 단명하는 직업이라는 비관적이고 냉소적이며 스스로 비하하는 경향이 강했다. 어찌 보면 이렇게 자부심이 결여된 상태에서 질 좋은 프로그램이나 경쟁력 있는 소프트웨어(SW)가 나올 수 없다는 것은 당연한 이치인지도 모른다.

 그렇다고 이런 상태로 국내 SW산업을 그대로 방치해 둘 수도 없는 일이다. 이제 이렇게까지 변모된 상황에서 동종업계에 종사하는 사람으로서 몇 가지 문제점을 지적하고, 어떻게 해야 시대적 요구에 부응할 수 있는지 대안을 제시해 보고자 한다.

 먼저, 우리에게 가장 큰 문제는 경영자들의 경영철학 부재를 들 수 있다.

 지난 97년 우리나라에 IMF사태가 초래되었을 때 미국 MIT대 폴 크루그먼 교수는 그 원인 중의 하나로 우리 경영자들의 모럴 헤저드, 즉 도덕성 결여를 지적한 적이 있다. 지금까지 대부분의 SI업체들은 고객의 성공적인 정보시스템 구축보다는 매출실적 확대에만 관심을 두어온 것이 사실이다.

 오랜 기간 이런 일들이 관행처럼 되어오다보니 기업에서는 기술축적보다는 매출 위주의 외형성장을 추구하면서 건설현장에서의 저가 용역하청과 같이 원가 줄이기에 급급한 실정이었다. 이러한 것들이 고객의 신뢰도 및 만족도 저하로 이어졌으며 컴퓨터 관련산업 종사자들에게도 불신과 불만의 요인으로 작용할 수밖에 없었다.

 이제 후발국인 중국·인도·말레이시아 등의 도전을 받고 있는 현 상황에서 우리의 나아갈 길은 기술축적에 의한 고품질의 제품을 고객에게 제공함으로써 고객의 만족을 구하고, 올바른 가치관을 지닌 경영자들이 많이 등장해 업계를 이끌어 나가야 할 것이다.

 다음으로 컴퓨터산업계와 고객 모두 SW를 중시하는 풍토를 조성해야 한다.

 지난 4월 26일 체르노빌 바이러스로 인한 대혼란은 우리 SW업계뿐만 아니라 사회전반에 아주 큰 변화를 가져다 주었다. 이 사건은 비정상적인 유통경로와 비양심적인 불법복제에 대한 준엄한 경고로 SW에 대한 일반 소비자의 인식을 새롭게 바꾸는 계기가 되었다.

 그 결과 SW의 정품사용이 급속히 늘어나고 있는데 이것을 고객들이 정품SW의 중요성을 인지하기 시작했다는 좋은 기회로 받아들여 SW산업을 발전시킬 수 있는 전환점으로 삼아야 할 것이다.

 SW산업을 발전시키기 위해서는 정부의 역할도 빼놓을 수 없다. 그러기 위해서는 먼저 정부는 정책의 혼선을 빚지 말아야 한다. 지금 검찰에서 실시하고 있는 불법복제 SW 단속은 SW시장을 활성화하는 데 매우 큰 역할을 하고 있다.

 불법단속이 SW산업을 살리는 정부정책의 큰 방향은 아니지만 이러한 자그마한 실천의지가 조금씩 모아지면 큰 결과를 가져올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 불법단속이 일과성의 행사로 그칠 것이 아니라 사회 전반에 새로운 인식이 뿌리를 내릴 때까지 꾸준한 계몽을 겸해 지속적으로 이어지기를 바란다.

 이와 병행해 벤처기업 육성, 대형 프로젝트의 조기 집행, 기술인력의 확보 등 SW산업의 성장을 위한 많은 정책들도 정부가 지금 실천해야 할 시점이다.

 마지막으로, 시장의 새로운 변화에 적극적으로 대응하고 또한 고객의 관심을 바람직한 방향으로 유도하여 고객과 더불어 새로운 질서를 구축하는 관계설정도 중요한 과제다.

 오랜 관습과 타성에 익숙해져 있어 변화를 두려워하는 고객집단에 대해서는 흥미를 유발할 수 있는 프로그램을 준비해야 할 것이고, 끊임없이 새로운 신기술을 추구하는 또다른 고객집단에 대해서는 지속적으로 관심을 유지시켜 올바른 방향으로 나갈 수 있도록 관련업계 종사자들이 합심해서 많은 노력을 기울여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