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크 메일」의 매력은 일상성을 감싸안는 따뜻한 유머에 있다.
쓸쓸하고 소외된 인생을 살아가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과대포장하지 않고 사소한 일상의 엿보기를 통해 풀어가는 감독의 연출력은 재기가 돋보인다. 폴 슬레탄느 감독의 데뷔작인 「정크 메일」의 주된 언어는 단절과 소외다. 남자 주인공을 맡은 우편배달부는 자기와 관련없는 남의 이야기를 전달하는 데 별 관심이 없어 보인다. 여자 주인공 역시 청각장애자다. 주변으로부터 철저히 소외된 듯한 두 사람의 일상사는 쓸쓸함이 묻어나고, 사랑 역시 사람들과의 관계가 익숙하지 않은 두사람에겐 언어 장애를 일으키듯 삐걱거리지만 결국은 서로의 따뜻한 마음을 받아들인다.
가난하고 볼품없는 우편배달부 로이. 자신의 체구만한 가방을 들고 우편물을 돌리는 그는 굼뜬 성격으로 동료들에게조차 놀림감이 된다. 하루에도 수천 통씩 배달되는 우편물들을 기차가 다니는 터널 속에 쏟아버리고 돌아서는 그의 유일한 즐거움은 인스턴트 음식을 먹으면서 가끔씩 남의 편지를 훔쳐 읽는 것. 남의 비밀을 공유하는 것이 그에겐 유일하게 뚫려 있는 세상과의 소통이다.
그러던 어느 날 그는 서점에서 책을 훔치는 금발머리의 리네를 발견하고 그녀에게 호기심을 갖는다. 로이는 서점 주인으로부터 리네가 세탁소에서 일하는 청각장애자란 얘기를 전해 듣고 그녀의 모습을 쫓는다. 우편물을 배달하던 아파트에서 우연히 리네의 우편함에 열쇠가 그대로 꽂혀 있는 것을 발견한 로이는 리네의 방에 불법 침입하게 된다.
하지만 때마침 걸려온 전화로 인해 그는 리네가 게오르그라는 남자로부터 협박을 당하고 있음을 알게 된다. 호기심으로 로이는 리네의 방을 다시 찾게 되고, 수면제를 먹고 자살을 기도하려는 그녀를 간신히 살려낸다. 다소 엉뚱하게 시작된 로이의 사랑은 리네가 많은 돈이 연루된 살인사건의 공모자임이 밝혀지면서 관계의 긴장감을 만들어 낸다. 그러나 이 영화에서 재미를 주는 것은 살인사건이 주는 무게감이 아니라 로이와 리네가 점차 세상과 소통하는 법을 익히게 되면서 조금씩 친해져가는 과정의 따뜻함이다.
로이가 리네와의 정식 만남을 위해 수세미로 몸을 닦거나 머리를 단정하게 빗어넘긴 모습 등은 이 영화의 투박하지만 정감있는 유머를 느끼게 한다. 칸 영화제에서 비평가 주간상을 수상한 노르웨이 영화로, 「정크 메일」이란 특정한 수취인이 없이 다수의 사람들에게 배달되는 우편물들을 말한다.
<엄용주·자유기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