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름콘덴서업계에 심상찮은 분위기가 감지되고 있다.
업체들이 암묵적으로(?) 동의해온 「수요처 분할」이 붕괴될 조짐을 보이고 있는 것. 필름콘덴서업체들은 대부분 특정 가전업체를 대상으로 제품을 공급해왔다. 「A전자 부품공급업체는 C·D, B전자 협력업체는 E·F」라는 식의 영역구분은 필름콘덴서업체들이 열악한 시장상황 속에서도 살아남을 수 있는 여지를 마련해줬다. 일종의 공조체제였던 셈이다. 필름콘덴서업체들은 물론 가전업체들 역시 영역구분에 큰 이의를 달지 않았다.
최근들어 이러한 틀에 금이 가기 시작했다. 부품업체들 사이에 상대방 거래업체를 뚫고 들어가겠다는 강경입장이 대두되고 있다. 전면전도 불사할 태세다. 그러나 아직까지 혼전양상은 벌어지지 않고 있다. 가뜩이나 불안한 필름콘덴서 시장질서가 이로 인해 회복 불가능한 상태로 빠져들 것이 우려되기 때문인 것으로 분석된다.
△원인= 업체들이 묵시적으로 지켜온 불가침 원칙이 깨지게 된 것은 필름콘덴서 가격의 차이에서 비롯됐다는 것이 업계 관계자들의 설명이다. 현재 가전업체인 A전자와 B전자의 필름콘덴서 수급가에는 차이가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필름콘덴서업계의 한 관계자는 『이번 사건은 B전자보다 높은 가격에 제품을 납품받아온 A전자가 이번에 B전자의 협력업체들과 거래를 트려는 데서 비롯된 것 같다』고 말했다. A전자가 저렴한 가격으로 필름콘덴서를 공급받기 위해 B전자 거래업체들과 접촉하면서부터 사건이 크게 확대됐다는 것이 지배적인 시각인 것이다.
물론 가전업체들과 부품업체들이 지금까지 상대방 영역을 넘보지 않았던 것은 아니다. 크고 작은 몇개의 사건들이 있었지만 업체들 사이의 전면전으로까지는 발전하지 않았다.
그러나 올해는 그 양상이 사뭇 다르게 나타나고 있다. 지난해에 이어 올해 필름콘덴서 가격은 떨어질 대로 떨어졌으며 부품업체들은 대부분 경영압박에 직면했다. 가전업체들 역시 제품의 대외경쟁력을 위해 부품단가를 낮추는 데 최선의 노력을 기울여야 했다.
이같은 환경에서 비롯된 A전자와 B전자 공급업체들의 접촉은 필름콘덴서업계를 일촉즉발의 전면전 상황으로까지 몰게 된 것이다.
△전망=필름콘덴서업계에는 아직까지 이렇다할 징후는 나타나지 않고 있다. A전자로부터 제품문의를 받았던 B전자 협력업체들 역시 「결정된 것은 아무것도 없다」고 말했다. 기존 A전자 협력업체들 역시 사태를 관망하고 있는 상태다.
그러나 A전자 협력업체들은 A전자와 B전자 협력업체들이 부품공급 계약을 체결할 경우 「가만 있지 않겠다」는 입장이다. B전자 협력업체들 역시 전의를 수그리지 않고 있다.
지금까지 각 업체들은 서로의 장점과 특징을 살려 시장분할 구도를 유지해왔다. 오랫동안 맺어온 관계에 따라 서로의 영역을 인정해주며 나름대로 활로를 모색해왔다. 이러한 균형이 허물어질 경우 양측 모두 피해를 입을 것임은 자명하다. 상처뿐인 영광이 될 수도 있다는 얘기다. 업체들 사이에 마구잡이식 제품 수급·공급경쟁이 쉽게 발생하지 않을 것이라는 예상은 이같은 판단 때문이다.
업체 관계자들은 『이번 사태가 원만하게 마무리돼 서로 이익을 보는 방향으로 매듭지어지길 바란다』고 말했다. 지금 필요한 것은 제품의 성능향상과 원가절감 등을 통한 선의의 경쟁이지 단순하게 가격만을 무기로 한 경쟁은 무의미하다는 것이 이들의 주장이다.
<이일주기자 forextra@e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