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짧은글 긴생각> 신화와 문화잠재력

 요즘 위성TV 방송을 보면 「신드밧드의 모험」 「헤라클레스」 「제너」 같은 신화 속 영웅 드라마가 인기를 끌고 있다. 이는 고대의 대표적인 이야기인 아라비안나이트나 그리스·로마 신화에서 소재를 빌린 것들이 대부분이다.

 주요 내용은 무수한 얘기거리가 커다란 줄거리와 엮여 상상력을 자극하고 있어 소재빈곤에 애를 먹을 필요가 없다. 또 그 안에는 이성이나 논리의 세계를 벗어나 자유분방한 정신의 세계를 종횡무진 누비고 다닐 수 있어서 좀처럼 물리지도 않는다.

 여기에다 다채로운 재미와 교훈적 내용까지 담고 있어 이 두 고전은 인류정신사에 큰 영향을 주어왔기 때문에 이제는 아랍이나 서구사회를 벗어난 세계인의 필독서로까지 자리를 잡고 있다.

 그런데 하필이면 첨단과학이 절정에 서 있는 21세기의 문턱에서 진부한 옛날 신화가 되살아나고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 대표적 이유는 신화가 두뇌혹사에 시달리는 현대인들에게 좀더 자유롭고 감미로우며 한가한 정신적 고향에 대한 갈망을 해소시켜주기 때문이다. 이왕이면 그곳에 불안한 현실을 이겨내고 정신적 피로마저 시원하게 씻어주는 믿음직한 카리스마의 활약상이 추가된다면 금상첨화가 된다.

 최근 들어 성인만화가 유행을 타고 무협영화·무협소설에 SF물이 장안의 인기를 누리는 것은 우연한 일이 아니다. 미래학자들이 21세기를 종교의 시대로 예고하고 있는 것과도 무관하지 않다.

 다음 이유로는 고도의 정보기술이 혼란스런 가상의 세계를 마치 살아숨쉬는 현실처럼 구체화시켜 줌으로써 현실과 꿈의 일치를 실감케 해주었다는 사실이다. 현란한 가상현실 프로그램, 멀티미디어 기술은 인간의 잠재적 욕구를 만족시키는 새로운 환경, 새로운 우상을 창조하고 있고, 아득한 고대사회마저 시간을 뛰어넘어 사실적으로 재현할 수 있는 길을 열어놓고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현상은 앞으로 문화시장의 성장 가능성이 얼마나 커질 것인지를 암시하고 있다.

 또 캐릭터산업이 왜 인기를 끌고 있는지를 단적으로 말해주고 있다. 지난번 우리나라를 방문한 월드 디즈니의 동생인 로이 디즈니는 이런 말을 했다. 『만화영화가 성공하려면 세 가지 요소를 충족해야 한다. 그 첫째도 스토리(Story), 둘째도 스토리, 셋째도 스토리다.』

 디즈니 만화영화의 성공비결은 스토리를 선택함에 있어 국가의 경계를 초월해 세계 어느 나라, 어느 민족에게도 공감을 불러일으키는 주제와 보편적 가치가 내재되어 있어야 한다는 말이다.

 문화란 어느 곳에서나 그 시대 정신적 자산의 총체적 표현으로 나타난다. 문화전쟁을 앞둔 선진국들은 오랜 역사와 전통이 어우러진 문화유산을 고귀한 자산으로 되살리는 운동을 한창 벌이고 있다. 문화인 스스로도 문화산업의 진로를 주도적으로 이끌어가는 핵심세력이 되어 국제 수준의 다양한 창작과제 개발, 건전한 문화상품 발굴에 참여하고 있는 것이 오늘의 추세다.

 이제는 우리도 어린 시절의 꿈과 낭만이 깃든 우리의 신화·전설을 발굴하고 체계화하는 노력이 필요하다. 이를 소재로 하여 상상력이 풍부한 우리의 만화가·동화작가·시나리오 작가 등 다양한 장르의 문화예술인들이 앞다투어 상상의 날개를 펼칠 수 있을 때 한국문화의 세계화도 뿌리를 내릴 수 있을 것이다.

<백석기 한국정보통신대학원대학교 부설 정보통신교육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