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이스텍은 흔히 하는 말로 요즘 「뜨는 벤처기업」이다. 이 회사는 탄탄한 기술력과 잘 짜여진 비즈니스 플랜, 시장흐름을 내다보는 경영자의 비전이 맞물려 멀티미디어 보드업계 정상에 올라섰다. 얼마 전에는 벤처스타를 가려내기로 유명한 한국IT벤처투자가 이 회사에 65억원의 투자를 결정, 코스닥 상장도 머지 않았음을 시사했다.
『멀티미디어 보드업계 1위에서 만족하지 않겠습니다. 끊임없이 새로운 도전을 할 겁니다.』
차재원 제이스텍 사장(46)은 컴퓨터와 커뮤니케이션, 가전 분야가 합쳐져 2∼3년 내에 기술의 패러다임을 바꾸게 될 디지털가전 시대를 리드하는 선도업체가 되겠다는 포부를 밝힌다.
차 사장의 경영스타일은 좀 보수적인 편이다. 92년 제이스텍을 설립하면서 그는 절대 빚을 지지 않는다는 원칙을 세웠다. 경쟁사들이 대부분 휘청거렸던 IMF 기간에 제이스텍이 가파른 성장을 계속할 수 있었던 이유도 이 회사가 제조업체로는 드물게 은행 빚이 없었기 때문이다.
『중소업체 사장들은 자금조달에 신경을 쓰느라 정작 중요한 마케팅전략이나 기술개발은 뒷전으로 미루는 경우가 많습니다. 은행 관계자, 사채업자를 만나 돈을 빌리고 어음을 막기 위해 늘 전전긍긍하는 거죠. 그래서 저는 매출 100억원을 올리기 전까진 절대 어음을 발행하지 않기로 마음을 먹었습니다.』
차 사장은 매출 300억원을 눈앞에 둔 지금까지 그 원칙을 지켜왔다.
제이스텍이 IMF를 비켜갈 수 있었던 것은 환율위기를 내다본 혜안 때문이기도 하다. 어부들이 바람의 방향이나 새들의 움직임을 보고 태풍을 짐작하듯 이 회사 경영진들은 환율이 심상치 않음을 미리 감지했다. 그래서 97년 10월 서둘러 체결한 것이 시중은행과의 선물환 계약. 당시의 환율을 고려해 한달 후인 11월 중순, 11월말, 12월 중순에 갚아야 할 돈의 환율을 미리 예약한 것이다. 그 결과 경쟁업체들이 부품수입을 위해 달러당 1700∼1800원의 대금을 지불할 때 제이스텍은 900원대로 결제할 수 있었다.
한때 멀티미디어 보드업체들이 잇단 부도사태를 빚자 일부 언론은 대만업체들이 국내시장을 장악할 것처럼 과민반응을 보였다. 하지만 결과는 제이스텍의 압승이었다. IMF는 오히려 대만업체를 상대로 빈틈없는 수성(守成)을 가능케 한 호재가 됐다.
현재 이 회사는 멀티미디어 업계 최대의 VGA·사운드 카드 생산업체이자 SMT(Surface Mount Technology)부터 매뉴얼 라인까지의 일관 생산설비를 갖춘 유일한 업체로 대기업 OEM 마켓 셰어의 70%를 차지하고 있다.
이제 이 회사는 새로운 비상을 앞두고 있다. 멀티미디어 보드에 이어 대만에 시장을 내주고 있는 주기판 시장에 뛰어들 계획이다. 주변에서는 무리수를 두는 게 아니냐는 우려의 시선도 없지 않다. 대만의 위세에 밀려 지난 15년간 많은 업체들이 손을 들고 나왔기 때문이다. 상공부 시절엔 마더보드 분과위원회까지 만들어져 관세를 올리고 대출을 늘려주는 등 지원을 아끼지 않았지만 결과는 실망스러웠다.
『창투회사의 자금을 유치한 것도 마더보드 생산을 위한 설비투자 때문입니다. 처음부터 저희 경쟁상대는 대만이었습니다.』
차 사장은 실패업체에 대한 분석을 포함해 시장조사가 끝난 상태라며 자신감을 내비친다.
제이스텍의 성공비결은 남보다 한 발 앞서 미래를 준비해 왔다는 것이다. 요즘 이 회사는 웹기반의 전사적자원관리시스템(ERP) 도입을 추진하고 있다. 1∼2년 후를 내다본다면 지금이 투자의 적기라고 믿기 때문이다. 현재에 만족하지 않고 더 멀리 갈 준비가 되어 있는 업체, 벤처투자가들이 제이스텍을 주목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이선기기자 sklee@etnews.co.kr>